남편은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데리고 서울 북페스티벌에 간다고 했다. 심통난 나는, 우리 집 귀한 자식들을 데리고 서울 북페스티벌에 가기로 했다. 가서는, 서로 아는 척 하지 말자고 했다.
시청광장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헌책방서점’이었다. 유아용 책들은 새것도 많이 있었지만, 성인용 책들은 대부분 중고서적이었다. 한문으로 쓰여져 있어 판독이 불가능한 고서적을 구경했다.
세월호 합동 분향소를 쳐다보자 딸롱이는 눈치 빠르게 “엄마, 저기 들어갈 거야?”하고 묻는다. 딸롱이에게 “응”이라고 대답하고는, 만약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아롱이 교육에 들어간다.
“**아, 여기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하늘나라에 간 언니, 오빠들을 생각하는 곳이야. 엄마랑 잠깐 들어가서 묵념하고 기도하고 나오자.” 아롱이는 알았다고 한다. 국화꽃을 들고, 분향소 앞에 선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한 명, 한 명 얼굴이 보인다. 저렇게 예쁜 아이들, 저렇게 싱그럽게 웃는 아이들.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조문을 받기 위해 검은 정장을 입고 서 계시던 남자분이, 내가 계속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신 듯하다. 딸롱이도 팔을 흔든다.
“잠깐만. 저 언니, 오빠들 얼굴 좀 잠깐 보고...”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고 자리로 돌아와 기도한다. “억울한 죽음이 꼭 밝혀지게 해 주세요.” 억울하다,는 말이 너무 빨리, 너무 강하게 사무쳐 나 스스로도 놀란다. 기도를 마치고 남자분과 말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딸롱이도 아롱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향소를 나오니, 노란색 리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아주 예쁜 광경인데, 마음이 아프다.
저 쪽으로 걸어가니, 꼭, 그 또래의 아이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각 고등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이다. 영상 미디어 고등학교 아이들은 좋아하는 시 10개를 고른 사람들에게 시집을 만들어주고, 원하는 표지그림을 그 자리에서 그려주었다.
00 고등학교 형아는 ‘추억의 게임’을 준비해, 아롱이와 딱지치기를 해 주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는 책표지 쇼핑백 만들기를 준비했고, 부스를 다니면서 받은 쿠폰으로 무료 커피도 받았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제일 가고 싶던 부스에 도착했다. 저기, 앞에서 두 번째 맨 왼쪽. 남편이 보인다. 남편은 시커먼 남학생들에 둘러싸여 뭐가 재미있는지, 해맑게 웃고 있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아는 척 대신 ‘메~~롱!’을 한다.
임시 천막의 관객석은 이미 꽉 차있어 앉을 자리가 없다. 관객석 쪽은 막혀 있어, 어차피 들어갈 수도 없다. 강사가 서 있는 앞쪽은 아래쪽만 막아 놓아서, 바깥에서도 강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까이 서서 그의 모습을 본다.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물 자체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건 이유가 있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하는 고병권이다.
[살아가겠다]는 책을 읽은 고등학생들과 독서지도 교사들이 고병권씨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이 질문을 하고, 강사가 어려운 질문이라며 머리를 긁적이고, 관객이 웃고, 진지하게 대답을 경청한다. 저 쪽 끝에서 판소리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어, 가끔씩 그의 목소리가 끊겨서 들리기도 하지만, 주의를 집중하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딸롱이와 스티커를 받으러 돌아다녀야 하고, 아롱이와 보드게임도 해야 하고, 나를 만나겠다고 시청광장까지 달려온 친구와 이야기도 해야 해서, 고병권을, 그렇게 보고 싶던 고병권을 뒤로 했다.
그의 책을 골라본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이름을 처음 인식하게 해준 책이고, [철학자와 하녀]는 앞에 네 꼭지 정도 읽었는데, 끝까지 읽지 못 했다. [살아가겠다]는 시작해보려던 책이고,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는 그의 책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인 듯 싶다.
그의 책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어보리라, 눈 앞에서 뒤돌아선 설움을 풀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