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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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이해된다고, 그녀의 말이 이해된다고, 말할 때, 나를 비난하지 말기를. 나는 그녀가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바르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녀가 이해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가 이해된다.

몇 년 동안, 나는 가끔씩 늙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한 여성 작가가 쓴 글을 떠올릴 때가 있었다. 비탄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녀는 자기 내면에서 ‘난 자유야’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었음을 시인했다. (113쪽)

 

죽어가는 남편, 비탄에 빠져 있으면서도 내면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

이제, 난 자유야.

그 여성 작가를 이해하는 나.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는 나. 여기의 ‘나’는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뭐라고 말했던가. 아니다. 위의 문장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쓴 게 아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무엇이냐? 리뷰냐? 페이퍼냐? 에세이냐? 아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소설이다. 소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설이다.

소설 속의 ‘내’가 말한다.

나는 그녀가 이해된다. 죽어가는 남편을 보고 있는, 비판에 빠져 있는 한 여성, 그 여성의 내면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

난, 자유다.

 

결혼했다고 해서, 다 사랑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생활이 되었을 때, 더 큰 신뢰와 더 깊은 실망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간이 있다.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내 옆에 있는 사랑을, 사랑의 눈길을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111쪽)

 

눈으로 문장을 읽어가다가 여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30년을 함께 산 아내를 회상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사랑에 빠진 또 한 명의 남자가 떠오른다.

 

 

[김대중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한국사에 정통한 학자가 말하기를, 한국사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주요한 사건은 ‘김대중’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나는야, 김대중 대통령님을 매우 사모하고 사랑하기에 읽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 분을 많이 애정하지 않는다면, 책 곳곳에 그 분의 사심 없는 자랑에 맘 상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 어려운 문제를) 내가 가서 바로 해결했다.” “(미국의 주요한 책임자를) 내가 직접 만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김대중 자서전]의 발행 즈음에 김대중 대통령님의 마지막 일기가 샘플북 형태로 유통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 권 갖고 있었는데, 사진 한 장 올려보려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얇은 샘플북은 잃어버렸는데, 읽었던 글 한 대목은 잊히지 않는다.

 

0월 0일 0요일

오늘은 하루종일 아내와 함께 있었다. 책을 읽고 정원을 둘러보았다. ... 둘만 있으니 정말 좋았다. 아내와 같이 있는게 즐겁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 일기를 쓰실 무렵에 김대중 대통령의 나이가 83세이시다. 결혼 생활 50년 이상이다. 이휘호 여사는 아내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각별한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아내와의 하루, 아내와의 시간을 이렇게도 행복해 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아내를 이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를 이리도 애정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여기, 이 사람을 빼고 말이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랬던 건 내게 행운이자 악운이었다. 일찍이 내 머릿 속에 떠오른 말들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모든 면에서 아내가 그립다.’ 이 말은 내가 어디에 있고,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반복했던 말 중 하나였다. (134쪽)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는,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런 사랑이 있다.

아내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살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러했고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자살하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148쪽)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는 주로 아내와 함게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 혼자서 하길 좋아했던 것에 대해 말하자면, 나중에 아내에게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즐거움이 얼마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것 말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133쪽)

 

30년을 함께 하고도, 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맞다. 슬픈 진실은,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60쪽)라는 것이다.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더 슬픈 건,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일을 그 사람 없이 해내야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가장 외롭고, 슬픈 일을 말이다.

더 힘든 건, 긴 시간을 함께 해왔던 친구들마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들마저,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어서 아픔을 털고 일어서라고 한다.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그를 외면한다. 힘들어하는 그를 채근한다. 일부 친구들과는 절교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라는,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이 쉬운 말들은, 심장을 잃은 그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하다.

아내를 땅에 묻고 돌아온 지 한 주가 지났을 때 받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내게 묻는다.

“그래, 어떻게 지내? 주말 도보여행 떠나나?”

나는 1~2초 정도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지른 후 전화를 끊는다. 그건 안 된다. 주말 도보여행은 내 삶이 평탄했던 시절, 아내와 함께 했던 일이다. (123-4쪽)

 

연애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연애는 많이 못 해봤는데, 그에 비해 연애 편지는 많이 받았다. 사과 한 박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된다고 수줍게 밝혀본다. 15장짜리 연애편지를 받았는데, 읽는데도 한참이 걸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기에, 남의 연애 편지 대하듯, 그래에?? 하면서 성의 없이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아, 나는 그 때 얼마나 철없었는지.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도 내 마음처럼 소중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한 내 감정만 중요한 줄 알았지, 나를 목적으로 한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런 철없는 10대였다.

아무튼 14장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이었다. 15장째 장에는 다른 이야기 없이, 편지지 가운데에 이문열의 문장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략 이런 뜻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는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을 가진 사람도 있다. - 이문열

내가 그런 사람이야.“

나는 허걱, 하고 놀랐고, 어머, 하고 무서웠다. 책에서나 보던 그런 사랑이었다. 이미,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음에도, 나역시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 때문에 몸져 누워 신음했음에도, 또 다른 사랑, 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심장의 사랑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저께 청소기를 돌리는데 그 편지가 생각났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으로 나를 사랑한다던 그 사람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결혼했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서 ‘줄리언 반스가 아내에게 바치는 것과 같은 순정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 .....

그 사람을 무시해서도, 그 사랑을 가벼히 보아서도 아니지만, 난,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지금의 나를, 내 남편처럼 사랑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하나의 심장으로 사랑한다던, 10대의 나는, 피아노 치는 ‘나’이고, 노래 부르는 ‘나’이고, 웃고 있는 ‘나’일 테다. 건강한 ‘나’이고, 정도된 ‘나’일 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이상한 김치찌개를 내놓는 ‘나’이고,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아 영상 9도에 “반팔입고 가세요~” 하는 ‘나’이고, “자기야, 내 생일에 뭐 사줄거야?”라며 아이처럼 채근하는 ‘나’이다. 본능과 욕망이 가감없이 보여지는 ‘나’이다.

2001년에 결혼했으니, 올해로 결혼생활 14년째다. 다시 한 번 굳히 밝히자면, 저기 위의 모든 문장들은 소설 속의 문장이고, 그 문장 속의 ‘나’는 현재의 ‘나’, 지금의 ‘나’가 아니다.

나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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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0-2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편지를 받아 보셨다니... 놀랍군요.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게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저는 말이죠, 결국 부부애밖에 안 남을 거라고 봐요. (나중에 자식들은 다 분가하게 되어 있고요)
제 선배가 남편과 이혼하려 했는데 남편이 이상 증세가 보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니 이혼을 접더라고요.
큰 병 걸린 남편을 버릴 수 없대요. 어떻게 자기 혼자 잘 살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러고 잘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몰라요.
그게 부부라고 봐요.
버리고 싶을 만큼 열정 없고 버리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병에 걸려 누워 있다고 하면 달려가게 만드는 것, 그게 부부라고 봐요. 그 끈끈한 정을 부부애라고 봐요. 연애 시작할 때 느끼는 뜨거운 사랑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랑이죠.

단발머리 2014-10-27 08:31   좋아요 0 | URL
네... 전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을 가진다는게 행복한 일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10대에는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좀 무섭기도... 하구요.

결국 부부애라는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12살, 9살도 벌써 독립을 준비하더라구요.
저는 신랑이 많이 밉지는 않으니까, 미운정 빼고 고운정으로만 해야 되나요? ㅋㅎ
그런 사랑이 더 신뢰할 만한 사랑이라는것에 동의합니다.

2014-10-2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7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6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7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