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은 큰 것 하나와 이번에 새로 장만한 것 하나, 총 두 개였다. 네 사람 3박 4일 옷가지를 넣고 나니, 가방 두 개는 금세 차버렸다. 큰 여행가방 위에 걸쳐서 들고 갈 가방에는 물총이랑 쪼리, 워터슈즈를 넣었다. 자리를 못 찾은 건 책들이었다. 책은 신랑이 백팩에 넣어 매고 가기로 했다.
신랑은 제주도 안내 책자 하나와 [톰 소여의 모험]을 골랐다. 심심해할 딸롱이에게 들이민다며 아르센 뤼팽 시리즈도 야심차게(?) 준비했다.
딸롱이는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를 골랐다.
나는 읽고 있던 [여인들의 백화점 1]과 이어서 읽을 [여인들의 백화점 2]를 골랐다. 그리고 시집도 한 권 꼭 넣어야된다 우겨서 [입 속의 검은 잎]을 챙겼다.
아롱이는 루미큐브를 챙겼다.
물론, 우리가 챙겨간 책들은 모두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알차고, 감동적인 책들이다. 하지만, 책을 읽지는 못 했다. 바닷가에서는 흐린 날씨에도 하늘빛, 물빛이 너무 예뻐 책을 펼친다는게 미안할 정도였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집에 텔레비전 없는 어린이들답게 <아빠! 어디 가!>를 박장대소하며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실적이라면, 공항에서 대기하면서 게임을 할 수 없어 책을 읽었던 내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갔다는 정도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어보니, 책들이 많이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책을 보니,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게, 휴가 가면서 왜 책을 챙겨? 휴가철에 책 읽었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