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파초 화상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너희에게 주장자가 있다면, 너희에게 주장자를 주겠다. 너희에게 주장자가 없다면, 너희에게서 주장자를 빼앗을 것이다. ”
<<무문관>> 44회, ‘파초주장’
주장자가 있다는 오만도, 그리고 주장자가 없다는 절망도 모두 집착일 뿐입니다. 지금 파초 스님이 주장자로 날려 버리려고 했던 것은 바로 무엇인가 있다는 오만과 무엇인가가 없다는 절망이었던 셈입니다. (59쪽)
강신주 책 전용 볼펜을 꺼내들고 아껴가며 읽고 있다. 책이 두꺼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불성’, 혹은 ‘본래면목’을 실현한 사람을 상징하는 큰 지팡이, 주장자. 주장자가 있는 자에게 주장자를 준다는 건, ‘지금 너희에게는 주장자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 이라고 한다. (52쪽) 그렇다면, ‘주장자가 없는 자에게서 주장자를 빼앗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주장자가 없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주장자가 있다는 오만과 주장자가 없다는 절망. 두 가지 다, 깨달음에 대한 열망, 불성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2. [세상물정의 사회학]
어떤 프랜차이즈이든 개개인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독립 가게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표준화된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는 건 더 안전한, 그리고 예측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어이없는 풍경을 빚어낸다. 어느 도시에서나 스타벅스 옆에는 커피빈이, 던킨도너츠 앞에는 미스터도넛이, 둘둘치킨 옆에는 굽네치킨이, 김밥천국 곁에는 김가네김밥이,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나란히 영업을 하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하나하나의 합리성이 모여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순간이다. (51쪽)
다락방님의 페이퍼와 아무개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제목은 약간 딱딱한 면이 없지 않지만, 내용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명품, 럭셔리라는 마법의 수수께끼’가 인상깊었는데, 몇 년간 계속된 나의 명품 애호가 심한 타격을 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 [미국의 목가 1, 2]
형이라는 사람은 늘 온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남의 감정을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타협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자족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상황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예의 바른 사람이지. ... 하긴 뭐, 형 딸이 형 대신 침을 뱉고 있네, 안 그래? 네 사람? 형 딸이 예절을 단단히 혼내줬네.“ (2권, 69쪽)
예의바른 형, 스위드의 하나 뿐인 딸이 괴물로 변해버렸다. 예절을 혼내주고 있다. 2권의 앞부분인데 아직도 그 직접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아 너무 궁금하다. 완벽하게 행복한 가정이 이렇게까지 파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4.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정여울의 책을 좋아한다. 젊은 사람이 (나보다는 많겠지만...) 열심히 쓰고 또 쓰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작년에 출간된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 크게 히트하더니, 최근에는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이 출간됐다. 책으로 묶을 수 있을만한 여행 경험과 그것을 풀어낼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부럽다.
갑자기 한 구절이 생각나, 책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책들이 많은데, 어제 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정여울의 책이, 집에 있어서, 찾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재능의 유일한 비결은 매일매일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조차도, 심지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꿈속에서도,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타오르는 열정 때문에 오직 그것만 생각하는 것. 그리하여 아름다운 재능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무구한 ‘집중’에서 우러나온다. (81쪽)
매일매일 그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재능의 비결이라고 정여울이 말했다. 필요한 것은 ‘매일’과 ‘자리’. 일단 ‘매일’은 금방 찾을 수 있을 듯 하니, ‘자리’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