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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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우 매력적이긴 하되, 가감없이 전해지는 부담감 100%의 제목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1) 잘라라.

과거와의 단절, 악습을 끊기로 하는 결단, 썩어 있는 어떤 것을 이제는, 잘라버려라.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전혀 어렵다. 잘라라.

2) 기도하는.

무엇을 자르는가. 기도하는 무엇을.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도한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기도한다. 일어나서, 자기 전에, 그리고 자주자주 기도한다. 틈만 나면 기도한다. 기도하는.

3) 그 손을.

무엇을 자르느냐. 손을.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

여러모로 불편한 제목이다.

2.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무엇인가.

미적인 것에만 관련되는 ‘문학’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굉장히 한정된 용법(57쪽)임을 지적한 저자는 문학이란 “성전을 읽고, 성전을 편찬하고, 또 그것에 대한 주석을, 신학서를 쓰는 기법”임을 밝히고 있다. (59쪽) 이에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하지요.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입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75쪽)

 

책을 읽었다.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을 통해 이미 부패해버린 기독교 사회가 주창하는 여러 질서들은 성서에 근거가 없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루터는 깨닫는다.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근거이자 준거여야 할 텍스트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86쪽)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87쪽) 

 

읽어버린 이상 되돌아갈 수 없다. 보름스 국회의 소환에서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루터는 말한다.

성서의 증언이나 명백한 이유를 가지고 따르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내가 든 성구를 따르겠다. 나의 양심은 신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91쪽)

 

읽어버린 이상 이제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양심이 말하는 것들의 정확한 근거를 찾은 루터는 묵묵히 그 길을 간다. 멜라 출신 농민의 아들이 책을 읽은 후, 성서 박사가 되고, 그리고는 책을 썼다. 그래서 ‘교황의 방해자’가 되고 그리하여 예술, 문학, 정치, 법, 신앙, 종교, 그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104쪽)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읽기’이다. 도대체 그가 한 일이란 무엇인가?

그는 책을 읽었다.

아니, 읽어버렸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취업이 정말 코앞에 닥쳤을 때,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예~~쁜 과친구가 아시아나 항공에 입사하게 되어 그 애 이름이 불릴 때마다, “선생님, 걔는 취업했어요.”를 읊어주던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던 때, 학교게시판 직원 채용 공고를 샅샅히!(는) 아니고, 설렁 설렁 보고 다니던 시절.

그 때, “Understanding of Culture”라는 과목이 있었다. 곰 푸우를 닮은 외모의 교수님. 자기집 둘째 아들은 아직 자기가 아빠인줄 모른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던 그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하~~도 예전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문장은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적인 일”이라는 의미의 문장이었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힐링’ 아닌 ‘힐링’이었다. 세상에서는 스펙을 보여주라고(사실, 이 때는 ‘스펙’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도 않았지만), 네 영어점수를 보여주라고, 네 성적을 보여주라고 했다. 나는 자신있게 내밀만한 게 하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게 ‘그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만한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읽어왔던 시와 소설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필요한지 당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세상은 이미 답을 주고 있었다. 그런 건 필요없다고. 네가 읽은 시와 소설은 우리에게 필요없다고. 우리에게 필요한건 너의 실력이라고 말이다. 실력이요? 전 실력있는 사람은 아닌데.... 실력없는 나는, 내세울만한 게 하나도 없었던 나는, 그 해 가을에 그렇게 쓸쓸했다.

그래서, 더욱 일주일에 두 시간, 그 시간이 좋았다. 내가 배운 문장과 내가 읽은 작품을 통해 난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래도 되는거구나, 나는 안심했다. 읽기만 해도, 읽기만 해도 되는 거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문장들을 통해, 난 ‘힐링’되었다.

3. 그것 자체가 의미이다

즉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생성의 ‘일부이고’ 그 ‘의미인’ 것입니다. 이 방대한 우주의 생성 안에서 이리하여 우리가 말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293쪽)

 

우주의 일부이고, 그 자체로 ‘의미’인 내가, 말을 얻어,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 늦은 밤, 자판을 두드려가며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일들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라고 저자가 말한다.

이것 자체가 의미라고 말한다.

“읽고,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을 통해 ‘나’는 변해갈 것이고, 그 ‘과정’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해준다.(295쪽)

4학년 2학기의 힐링이, 오늘에 되살아난다.

행복하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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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나면 정말
읽는게 단순히 읽는다는게 아니라는 뭐 그런 생각이 잠시 들더군요.
뭔가 무서웠달까요.

단발머리 2014-04-10 14:2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읽는 게 단순히 읽는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무척이나 위대하게 느껴지도록 하지만요,
동시에 부담스럽더라구요.
난, 지금 뭘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맞아요,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