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읽었던 문장/문단 중 몇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구절이 있다. 오래 전, 김훈의 인터뷰 기사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至純하고 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2002.02 월간조선 김훈 인터뷰 中>

<출처> http://blog.naver.com/lemonplanet/120000691648

 

김훈이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읽을 수 밖에 없기에, 또 지금 바로 죽을 수는 없기에, 문학이 인간이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그런 개소리를 집어치운다.

<화장(火葬)>

아내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발작적인 두통에 먹던 것을 뱉어내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놓고 정신을 잃곤 했다(37쪽).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45쪽).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45쪽).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54쪽)

 

그녀의 이름은 ‘추은주’. ‘내’가 상무로 있는 회사에 오년 전에 입사했다.

장맛비가 며칠째 쏟아지던 여름 분기 말의 저녁이었습니다. 당신은 목둘레가 둥글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당신의 목 아래로 당신의 빗장뼈 한 쌍이 드러났습니다. 결재서류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칸막이 너머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의 융기가 시작되려는 그곳에서 당신의 빗장뼈는 당신의 가슴뼈에서 당신의 어깨뼈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빗장뼈 위로 드러난 당신의 푸른 정맥은 희미했고, 그리고 선명했습니다. 내 자리 칸막이 너머로 당신의 빗장뼈를 바라보면서 저는 저의 손으로 저의 빗장뼈를 더듬었지요. (55-6쪽)

 

종양은 살아있는 조직 안에서만 발생한다고 했나. 생명현상의 일부인 종양의 발생과 팽창으로 아내는 괴로워한다. 그렇게 종양과의 끈질긴 2년간의 사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의 육체는 점점 스러져간다. 까맣게 변해간다. 천천히 죽어간다.

아내의 빈소를 혼자서 지키던 새벽에 ‘나’는 다시 추은주를, 추은주의 육체를 생각한다. 참혹한 일이지만(75쪽), 그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당신은 빈 그릇에 당신의 국밥을 덜어서 아기 앞에 놓았습니다. 숟가락질이 서툰 아기는 밥알을 많이 흘렸습니다. 당신은 손수건을 아기의 턱 밑에 걸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밥을 떠서 입으로 후후 불어서 식혔고, 당신이 반쯤 먹고 숟가락 위에 남은 밥을 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아기가 입을 크게 벌렸지요. 아기의 입 속은 분홍색이었고 젖어 있었습니다.... 때때로 당신 가까이서 당신의 생명을 바라보는 일은 무참했습니다. 당신의 아기의 분홍빛 입 속은 깊고 어둡고 젖어 있었는데, 당신의 산도는 당신의 아기의 입 속 같은 것인지요. 그 젖은 분홍빛 어둠 속으로 넘겨지는 밥알과 고등어 토막과 무김치 쪽의 여정을 떠올리면서, 저의 마음은 캄캄히 어두워졌습니다. (78-9쪽)

 

그리고 그 날 저녁, 아픈 아내를 목욕시키던 일을 생각한다.

아내의 두 다리는 해부학 교실에 걸린 뼈처럼, 그야말로 뼈뿐이었습니다.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닦기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똥물을 흘렸습니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악취가 찌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여보᠁᠁미안해᠁᠁” 아내는 또 울었습니다. ... 울면서, 아내는 자꾸만 고개를 돌리면서 두리번거렸습니다. (80쪽)

 

그가 돌봐야하는 여자, 그가 돌봐야하는 여자의 육체,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육체가 겹쳐져 보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가 간절히 원하나 가질 수 없는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그가 숭배하는 여자의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아득하고 깜깜하게 그를 사로잡는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내가 가진 육체는 어떤 육체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입 속이 분홍색이었던 작은 여자아이였고, 5월의 청초함보다 더 푸르른 어린 소녀였고, 목 아래 빗장뼈로 스스로를 가두었던 순결한 처녀였으며, 그리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엷고도 비린 젖냄새를 품기던 젊은 엄마(58쪽)였다. 그가 숭배하는 그 여자가 바로 나다. 그가 숭배하는 육체의 진정한 주인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겹쳐서 보이는 두 여자의 육체 중에, 왜 스스로를 ‘추은주’로 상정하는가. 나는 왜 자신을, 까맣게 변해가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 하얀색 반팔 블라우스의 머리를 틀어올린 ‘추은주’로 상상하는가. 죽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다. 죽음이 두려운가. 아니다.

그건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가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건 내 나이가 추은주와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를 죽음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집념 때문이다. 나 스스로는 오래도록 젊으리라는 고집 때문이다.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아프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내 몸을 맡기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까맣게 죽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젊으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아름다우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마지막 만남에서도 여자이리라.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여자이리라. 여자의 육체이리라.

 

김훈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언제나 똑같다. 참 좋고, 그리고 참 싫다. 방금 읽은 문장을, 지금 읽은 단락을, 어제 읽은 단편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다시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로쟈님의 표현은 정확하다. 때로 전설은 그 자신이 전설임을 알지 못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4-02-11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독으로 읽을 수만은 없는 페이퍼네요 ㅠ)

한때는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가 제 인생의 모토 같은 거 였는데,,, 정말 들여다본 현실은,, '죽음'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죽음'이 가장 실감나게 다가올 때는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의 병을 알았을 때, 그리고 죽음이 뚜벅뚜벅 하며 정면에서 마주 걸어 올 때일까요..
남편은 항상 자기가 치매가 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하면,, 간병할 생각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굉장히 차갑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고,,, 뭔가 달관한 듯 느껴지기도 하고..


아,,, 참 좋고 참 싫다,,, ㅎㅎㅎ 어쩐지 애정과 혐오가 동시에 느껴지네요~ 저도 그런 작가가 있어요.

가오리,, 씨...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쓴 그녀요~

단발머리 2014-02-12 09:27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직, 어리고 (ㅋㅎㅎㅎ 어리고....) 아직 죽음이 저에게서는 멀리 있다고 믿고 있고, 또 믿고 싶기 때문에, 죽음 멀리에 제 자리를 두려하는 이런 글이 써진다는 생각이요.

김훈님은 언제나 참 좋고, 참 싫죠. 아직 [강산무진]도 다 안 읽었고, 김훈님의 산문집은 아직 시작도 못 했어요. 참 좋고, 참 싫어요.

그 유명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아직 못 읽었구요. (저 숙제 너무 많은거 아니예요?) ㅋㅎㅎㅎ

다크아이즈 2014-02-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인터뷰 기사 똑똑히 기억해요. 김훈 식 적나라한 사유, 김훈의 문체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추은주, 가 나오는 김훈의 소설도 똑똑히 기억해요. 처음 화장 말고, 어딘가 문학 잡지에 추은주가 나오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한두 횐가 하다 말고 포기했어요. 어리둥절했는데 나중에 화장이란 작품에서 추은주가 다시 등장하더군요.
추은주에 대한 이미지를 작가는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단발머리 2014-02-12 09:31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은 예전부터 김훈을 주의깊게 보고 계셨나봐요.
저는 워낙에나, 독서력이라는게 없어서요. 김훈은 [칼의노래], [남한산성]으로 온 나라가 들썩들썩할 때부터 알게 됐어요. 이 단편소설집도 김훈 책 다 절판되기 전에 몇 권 사놔야되겠다 해서 구매한거거든요.

추은주에 대한 이미지, 참 놀랐죠.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 주위에 아주 많은 '여자들'에 대한 이미지 중 하나인데, 김훈 손을 거치니까 '여신'이 되네요.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