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어 올리지 말까 하기도 했지만, 아직 2014년 첫 주, 아직 4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괜찮다고 판단, 내가 뽑은 2013년 작년의 책을 골라본다. 2013년의 책이라 함은, 2013년에 출판된 책만으로 한정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뽑은, 2013년 내가 읽은 책 중에 기억하고 싶은 책으로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1. [레 미제라블 1, 2, 3, 4] 그리고 [레 미제라블 5]
권수가 주는 부담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실 두께도 만만치 않았다. 2002년 [토지] 이후로 여러권으로 된 소설들을 자연스레 피해왔지만, [레 미제라블]은 꼭 읽어보고 싶어, 야심차게 도전했다. 자신으로 오인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장발장'임을 밝혀야 하나 고뇌하는 장발장의 모습이 그려졌던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파리의 하수도에 관한 설명 내지 안내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장발장', '코제트'. '마리우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는데, 책을 닫은 후에는 '테나르디에'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당신은 파렴치한이다! 당신은 거짓말쟁이고, 중상자고, 악당이다! 당신은 그분을 고발하러 왔는데, 그분의 무죄를 증명했어. 당신은 그분을 망신시키고자 했는데, 그분을 찬미하는 데밖에 성공하지 못했어. 그리고 도둑놈은 당신이야!... " ([레 미제라블 5], 467쪽)
코제트를 구박했던 사람, 마리우스를 절망으로 빠뜨렸던 사람이 후에는 장발장의 탈출을 도와주고, 마리우스의 생명의 은인이 장발장임을 밝혀주다니, 이런 악인도 쓸모가 있었다. 쓸모라고 쓰고 나니, 웬지 이상하다. 이런 악인도 나름대로 자신의 몫이 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이런 악인도 가끔 착한 일을 할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2.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도중에 읽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스런 부분이 심히 많았다.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가 순화된(?) 쉬운 언어로, 주변의 비근한 예들로 철학과 인문학을 설명하고 있지만, 맨얼굴의 강신주가 말하고 싶은 진짜 철학, 진짜 인문학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란 결국은, '맨얼굴의' 그리고 '당당한' 인문학이다.
이렇게 인문정신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정치가나 자본가, 혹은 멘토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저 자신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정신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우리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용기가 있는가? 당신은 주인으로서의 삶을 감당할 힘이 있는가? (595쪽)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근래에 가장 핫한 책이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지만, 읽어야할, 읽고 싶은 고전의 리스트를 잔뜩 안겨준 책이기도 하다. 끝까지 다 읽었으나, 다시 시작하게 하는 책이다. 다시 말해, 정말 좋은 책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단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이 삶을 향한 의지를 강화시켜 준다면, 다시 말해 내 삶에 경쾌함을 준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반대로 삶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켜 내 삶을 우울하고 무겁게 만든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514쪽)
내 삶에 경쾌함을 주는 '좋은 사람' 강신주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선생님, 존경합니다."로 운을 떼보려 했으나, 어렵쇼? 실제로 만나고 보니, "선생님~"하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12월초 벙커에서 있었던 현악사중주 철학 콘서트에서 찍은 강신주의 모습이다. 세 시간 전에 도착해 앞에서 셋째줄에 앉았음에도 친구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은 생각보다 별로다. 맨 앞줄의 어떤 분, 사진기 좋~은 어떤 분이 찍으신 그 날의 다른 사진도 가져왔다. 겉으로는 "선생님~ 존경합니다." 표현 못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으로는 내 맘을 전하고 왔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3. [패니와 애니]
D.H 로렌스의 심오한 세계를 나는 잘 모르고, 그의 작품도 읽어본게 없어서, 이 작품이 그의 첫번째 작품이다. 찐한 분홍의 책표지가 너무 마음에 든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난 네 어머니뻘이라고 해도 좋을 나이야. 어떤 면에서는 이제껏 네 어머니였어."
"그건 문제가 안 돼요." 그가 말했다. "머틸다 사촌은 내게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결혼해서 캐나다로 나가요. 그게 좋을 거예요. 날 만졌잖아요."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몸이 떨렸다.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너무 망측해!" 그녀가 말했다.
"뭐가요?" 그가 반박했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213쪽)
창비의 세계 문학의 다른 책들에게도 자꾸 눈길이 간다. 창비는 독특한 표기가 특징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말로 내가 처음 듣는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도 특징이지만, 가장 특장점은 눈길을 끄는 표지이다. 색상과 색감이 주는 특별성. 일단은 집에서 자고 있는 [돈 끼호떼]를 깨워봐야겠다.
4.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2013년 알라딘서재를 말 그대로 뜨겁게 달구었던 다락방님 '이유경'씨의 따끈따끈한 책이다. 하루에 두 챕터씩 아껴서 읽다보니, 아직 페이퍼도 쓰지 못 했다. 새 책을 받아들었을 때, 손에서 느껴졌던 묘한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줌파 라히리, 로맹 가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던 상대들도 떠오른다. (26쪽)
위의 아름다운 내용의 연장선장에서, 나도 다락방님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나는 3년 전쯤에 순오기님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울기엔 좀 애매한]을 선물받은 적이 있었음에도, 책선물을 주고 받는 알라딘서재의 모습이 먼 나라 일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다락방님의 리뷰를 보고, '재미있겠다, 이 책을 찜하겠다는' 나의 댓글에 다락방님께서 그 책을 내게 보내주셨다. 정성스럽게 쓴게 분명한 손글씨 연하장에, 향기 그득한 헤즐넛향 원두커피까지 같이 해서 말이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나중에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닌 밤중에 진지한 결심까지 하게 됐다.
다락방님, 진짜 고마워요~~
5. 서재의 달인
이전부터 서재의 달인이셨거나, 서재의 달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은 상관이 없겠다. 나는 제대로 글을 올린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꽤 오랫동안 알라딘서재를 들락거렸다. 자주 들어와 글을 읽고, 책들을 둘러보고 그렇게 한다.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달고 계신분들, 특히나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세 개, 다섯 개 주렁주렁 달고 계신분들이 참 좋아보였고, 또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참, 부러웠다.
올해 순오기님 페이퍼를 통해 나도 '서재의 달인'에 선정된 것을 알고는 너무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일에서, 내가 부러워하던 한 가지를 얻게 되어서 말이다.
이제 나도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갖게 되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겠다는, 초긍정적, 건설적 생각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자였던 '공지영 작가님'의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아닌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대상을 수상했다는 전화를 끊고, 볼에 와닿는 한겨울의 바람이 차갑지 않아, 나는 내가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렇다.
내 볼에 느껴지는 한겨울의 바람이 차갑지 않다.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