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딸롱이와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다. 

진작에 예매해놓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올해에는 '화려한 외출'이 잦아서 남편에게 조금 눈치보였는데, 철없는 딸롱이는 지하철에서 물었다. 

"엄마, 아빠가 1년에 뮤지컬 몇 번 보래?" 
나는 "홍광호꺼는 다 봐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속으로만 '자막'으로 처리하고, "응, 두 번. 두 번이면 되지."하고 말했다. 홍광호가 일년에 두 작품을 하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2. 부드러운 목소리 '콰지모도'의 절규 

'콰지모도'는 애꾸눈, 꼽추에 절름발이이다. '미치광이들의 교황'으로 뽑힌 것이 당연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홍광호'가 콰지모도로 분해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충분히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망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아, 그러게, 왜 콰지모도를 맡아가지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 난 그를 용서했다.(*^^*) 
난 홍광호를 용서했다.  

안타깝고 절망스러운 콰지모도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국내 아니, 세계 최고의 꿀성대, 미친 가창력의 홍광호는 나름 '거칠게' 노래하려 했지만, 고음의 발성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름다운 소리가 무대 전체를, 관객석 이 쪽에서 저 끝까지 가득 채워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의 '콰지모도'라니. 이렇게 귀여운 홍광호의 '콰지모도'라니. 

 

 

 

 

 

 

 

3. 코스트코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 

난 작품이나 무대, 오리지널 팀이나 아니냐를 보고 뮤지컬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직, 배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뮤지컬을 감상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도 원작이 위고의 작품이라던가, 그 동안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공연을 이어왔다던가, 아름다운 넘버들이 많다던가 하는 이유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 결정의 원인과 목적은 오로지 하나, 오직 홍/광/호/다. 

그런데, 공연장에 가보니, 사실 홍광호의 노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연들의 노래가 무척이나 (특히, 내게는 더욱) 많았다. 오죽하면, 이 뮤지컬에서 제일 유명한 곡 '대성당들의 시대'가 작품 속에서 시인으로 나오는 '그랭구와르'의 곡이겠는가. 아무튼, 여러 조연들의 노래와 댄서들의 화려한 춤을 감상할 시간이 많았다.

그 중에,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라'와 귀족처녀 '플뢰르 드 리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페뷔스'의 심정을 표현한 <괴로워>라는 곡이 있다. '이 고통~~~'을 외치며 노래하는 페뷔스 뒤로 커다란 막이 쳐지고, 켜지고 꺼지는 다섯 개의 조명 아래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거칠고 긴박한 움직임을 통해 페뷔스의 고통을 표현했다. 다섯 명의 남자 무용수들은 짧은 하의 타이즈만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아크로바틱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인간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낙심과 절망을 인간의 육체 그 자체로 여과 없이,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무대였다. 내 사랑하는 '홍광호'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라> 다음으로 감동적인 곡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명 속에서 자신의 몸을 통해, '페뷔스'의 고뇌를 표현해내는 다섯 명의 무용수들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코스트코의 직원들이 생각났다. 

 

코스트코에 두번째 갔을 때, 대형 피자와 베이크를 먹기로 했다. 맛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쟁반보다도 더 큰 대형 피자와 베이크, 그리고 머스타드를 곁들여 양파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맛과 사이즈, 아니면 두 가지 모두에 만족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피자와 베이크를 주문하러 '주문대' 앞에 섰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 뒤로 보이는 은색의 커다란 조리기구들, 내 키보다도 더 큰 오븐들,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피자, 뜨거운 불고기 베이크, 밖까지 훅~~ 몰아치는 열기. 하얀 가운을 입고, 역시 하얀색 빵모자를 쓰고, 쉴새 없이 손을 움직이는 직원들을 쳐다봤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구나. 이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뭘 했나. 

나는 오늘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나. 나는 오늘 내 몫을 잘 담당했나. 남을 돕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내 할 바를 감당 못 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나. 나는 내 맡은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가. 이 사람들처럼 이렇게 열심히,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가. 

피자 구역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은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혹은 저녁에는 코스트코에서 일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상황.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다해도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앞날, 계속되는 경제적 압박, 미래를,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암울한 환경.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이 곳에 취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곳이 직장, 이 곳이 일터인 사람들. 주문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줄어들지 않는 줄, 끝업는 줄. 하얀 까운에 하얀 빵모자를 쓰고, 계속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쉬고 있는 손이 하나도 없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이만교'가 말했듯이, 나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전업주부다. 웬만해선 잘릴 일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이 세상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엄마, ##이 엄마다.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 해야할 일이 있는 나, 그런 나는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내 맡은 바를 잘 해 나가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코스트코 대형 피자는 맛이 없었다. (원래, 맛이 없는 것일수도 있겠다.) 

공연장에서 <괴로워>라는 곡을 들으며, 코스트코 대형 피자가 생각났다. 조명의 움직임을 따라 자신의 육체를 통해 '페뷔스'를 표현해내는 다섯명의 아크로바틱 무용수들.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코스트코 직원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 또는 그 곳이 자신의 일터인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자신의 몫을 다해 내는 사람들. 

만약,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내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고, 잠깐 여유를 내는게 뭐가 어때서?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번 돈이 아닌, 나의 노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찾고 찾아야 비로소 그 연관성을 조금 추측해 볼 수 있는 '돈'을 사용해 표를 끊고, 비싼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공연장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 나는 내 몫을 잘해 내고 있는가. 

혹, 내가 맡은 일에 전문가인 '프로 전업 주부'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항상 낙제점에 간단간당 걸려있는, 말 그대로 '날라리 주부', 내지는 '모양만 주부'이다. 언제나처럼 할 수 아는 것보다 못하는 게 훨씬 많은, 그런 주부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관람하며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를테면, 정념에 사로잡혀 신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프롤로'의 고뇌라던지, 마음 속 타오르는 '에스메랄라'에 대한 사랑과 정숙한 귀족여인 '플뢰르 드 리스' 사이 '페뷔스'의 갈등이라던지, 흉칙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콰지모도'라던지. 이런 것은 생각이 안 나고, 코스트코의 피자가 생각나, 울적한 기분이 들려 했다. 

한 가지 위로는, 
오직 한 가지 위로는 그의 노래였다. 


그의 노래 소리, 
그의 노래, 
그의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4. 책은 진작에 사 두었지만

 

 

 

 

 

 

 

 

 

 

 

 

 

 

 

 

 

그 때 막 <레 미제라블> 5권의 대장정을 마친 터라, '빅토르 위고'의 책을 연거푸 읽기가 조금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책을 읽지 못하고 공연을 보게됐다. 항상 그렇지만, '얼른 읽어야겠다.' 혼자 다짐을 해 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3-10-0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리의 노트르담 읽고 싶어했었는데 그래서 사두었는지 안사두었는지가 기억나질 않네요. 사두고 안읽은건지 아직 안사고 안읽은건지..원.. ㅠㅠ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보면(제목이 정확하게 이게 맞던가요?) 사람들이 '프로'병에 걸렸다고 하는 부분이 나와요. 왜 너도나도 다들 프로가 되어야만 하는건지, 아마추어이면 안되는건지, 언론의 홍보가 사람들을 뭔가 있어보이게 만드는 프로로 이끌었다 뭐 그런식의 말이요. 그렇지만 단발머리님, 프로가 뭘까요? 왜 프로가 아니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야 할까요? 누구나 하루하루 간당간당하게 살고 또 어떤것들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면서 사는거, 그게 삶이 아닐까요? 만약 단발머리님이 프로였다면 피자를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죠?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생각했으니 우리는 그 생각을 하기전과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거에요. 설사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생각은 머릿속에 남아있을테고, 그것은 언제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3-10-08 12:16   좋아요 0 | URL
내가 다락방님 보다 먼저 읽을 수도 있으리라는 ㅋㅎㅎㅎㅎㅎ

나두 저 책 읽었는데, 저 부분은 기억이 안 나요. 가물가물도 아니고, 아예~~요. 책이 없으니 확인도 불가하고.
맞아요, 그럴 수도 있네요.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제 공연관람을 엄청 방해했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생각이 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는 할 텐데요. 사실....................................
이런 불편한 생각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부터 시작된거 같아요. 해보지 않던 집안일이 생각보다 어려웠구요, 아이들이랑 투탁거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전 시집오기 전까지 재미로 청경채 샐러드는 고사하고, 떡볶이 한 번 만들어보지 않던 사람이거든요. 가정사랑 완전 담쌓고 살다가, 이제 주로 하는 일이 이게 되니, 솔직히, 아직도 적응 안 됐는데.

앞으로도 안 될 거 같아요. 그냥 ..... 이렇게...... 살아도............ 되겠지요. 호홍

순오기 2013-10-1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과 친할 수 없는 고장에 살다보니 홍광호 이름도 처음 들어요,
하지만 앞으로 단발머리님이 사랑하는 그 이름을 꼭 기억할게요!^^
다음주에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를 들으러 가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요!^^

단발머리 2013-10-11 09:07   좋아요 0 | URL
아하... 꼭 기억해 주세요. 아름다운 이름, 홍광호... ㅋㅎㅎㅎ

김동규씨가 오시는군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김동규씨 버전이 최고더라구요.
10월에 이 노래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야외무대였으면 더 좋을텐데요.

mira 2013-10-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팬이시군요. 저도 뮤지컬 좋아하는데 시간내기가 참 힘들더라구요. 내용은 아는데 안읽은 고전중 하나이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3-10-14 09:27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mira-da님.
전 시간은 괜찮은데, 지갑이 안 도와줘서요. 많이는 못 가구요.

이렇게 찜만 해놓고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아서 이 책은 순서 많이 기다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