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여름처럼 더운 여름이 있었나 싶다. 어떻게 여름은 매해 더 더워지는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도 방안은 낮의 열기로 후끈하고, 어제는 안방 옆 수납장 있는 곳으로 갔는데, 바닥이 난방을 한 것처럼 뜨듯하기까지 했다. 이열치열로 이겨낼 수 있는 더위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이럴 때는 역시 책읽기를 통해 상상의 세계로 탈출하는 게 최고다. 나는 여름에 읽는 책과 겨울에 읽는 책들을 나름 분류해 놓고 있다.
2. 여름 독서의 특징 : 날도 더운데, 내용이 지루하면 체온 상승의 불운이 찾아 올 수 있다. 재미있는 책이면 좋고, 약간 가벼운 내용의 책도 좋다. 배경이 겨울이면 좋겠지만, 다른 계절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문체는 시원해야 한다.
1) 김훈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모두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남한산성>이다. 사실, 김훈의 작품은 모두 읽어야 함에도, 아직 다 읽지 못 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칼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칼의 노래>를 읽던 중 불편했던 순간이 많아, 그보다는 <남한산성>을 더 좋아한다. 작품의 배경이 겨울이라서 여름 독서에 적합하다기 보다는,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 때문에 시원한 책읽기가 가능하다. 서늘한 문체가 1월의 칼바람을 만나, 가슴 속 깊이 시원하게 해 준다.
2) 에드가 알렌 포 <우울과 몽상>
아직 더워지기 전, 신랑이 이 책을 들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름엔, 이런 거 읽어야지." 2학년 때였나, 변변찮은 영어실력으로 <검은 고양이> 를 읽어가던 중, 마지막 충격반전에, 나의 독해 실력을 다시 한 번 의심하며, 페이지를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등골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좋아한다면, 여름엔 에드가 알렌 포가 최고다.
3. 겨울 독서의 특징 : 겨울의 밤은 여름의 밤보다 길다. 겨울의 밤은 일찍 시작해, 늦게서야 겨우 끝난다. 또 여기저기 놀러가고 싶은 여름보다는 겨울은 실내에 있으면 더 포근한 느낌이 든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기에, 장편소설도 도전해 볼 수 있고, 만연체의 문장도 큰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1)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일단 러시아 소설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작품이 잉태된 곳이 겨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이름 때문에. 이름 때문에 겨울에 읽어야 한다.
로지온 로마노비치/로마니치, 로쟈, 로자까는 라스꼴리니꼬프이고,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소네치까는 소냐이다. 이건 또 어떤가. 아말리야 표도로브나/이바노브나/류드비꼬브나는 립빼베흐젤 부인이다.
더운 여름에 주인공 이름이 헛갈려 책 앞 페이지를 여러번 왕래하다 보면 체온 1~2도 상승한다.
2) 조정래 <태백산맥>
장편을 읽기엔 역시 겨울이다. 긴 겨울,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1권, 2권, 3권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봄이 찾아온다. 약간의 인내심을 더해 3월말까지 장편을 밀어붙여본다면, 10권의 장편소설은 한 해 겨울에 가뿐히 완독할 수 있다.
3) 알베르 카뮈 <이방인>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이 말 그대로 작열한다. 그가 왜 살인을 했던가. 뜨거운 태양 때문 아니었나.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69쪽)
4. 그런데, 지금...
1) 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몇달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반정도 읽고 반납했는데,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서 이 책에 대한 강신주의 애정을 새삼 발견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이다. 내 사랑이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더라도, 나는 내 사랑을 멈추지 않으리라.
2)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이야말로 여름 독서에 적합하다. 유쾌하고, 발랄하다. 그녀가 말한대로 문체가 그녀 자신, 그녀의 몸 자체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작품 속에서, 박지원도 열하의 더위에 헉헉대고 있다는 것.
3)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후반부로 갈수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적나라해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베르테르가 항상 고뇌에 차 있었던 건 아니고, 그도 사랑으로 인한 기쁨을 누렸던 때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한다. 적확히는 외출용이다. 밖에 오래 있을 게 아니고, 잠깐 외출할 때 가방 속에 챙기는 책이다. 근래는 가족들과 함께 외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들고는 다니는데, 읽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여름이 다 지나면, 독서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다. 몇번의 기사를 기억해 보면, 가장 책을 안 읽는 계절 내지는 책구매가 가장 적은 계절이, 바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고들 한다.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메뚜기도 한 철이라, 더위를 식힐 시원한 독서를 해야겠다.
하지만, 하지만...
아~~~ 너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