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목요일 밤, 그리고 금요일 밤.

세 번의 밤이 지났다. 긴 밤이었다. 잠을 자기는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도 어제의 일이, 그제의 일이, 수요일의 일이 믿겨지지 않았다.

대학 후배는 T.T. 문자를 보내오고, 아롱이 유치원 친구엄마는 기분 더럽다는 문자를 보내오고, 교회 오빠는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한다.

목요일에는 청소를 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스팀 청소기로 바닥을 닦았다. 청소는, 특히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일은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다. 팔을 움직이면서 청소할 면에 청소기를 가져다 대면 된다. 청소기를 앞으로 밀고, 청소기를 내 쪽으로 당긴다. 청소기를 밀고, 당긴다.

청소기를 밀고 당기며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그런 선택을 했을까?”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차마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혼자 들어가는 기표소 안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를 모든 사람들이 같이 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읽고, 포털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답이 안 나왔다. 나도 살아야하는데, 나도 나름의 이유를 찾아야 내 슬픔과 절망을 다독일 수 있을텐데.

그래서 하게 된 생각이다.

“그래, 5년 중임이라고 생각하자. 이명박근혜니까. 그래, 5년 중임. 이번까지 두 번이니까, 다음에 5년씩 두 번 하면 되지 뭐.”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러면 되겠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아주 쪼금은 편안해졌다.

그래, 그러자. 그렇게 하자.

그렇게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나니, 문재인 후보님 생각이 났다. 얼마나 불편한 밤이었을까. 얼마나 긴 밤이었을까.

제일 속상한 때에,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가 부족했다고 말하고, 역사에 죄를 지었다고 말해야 하는 문재인 후보님. 후보님이 생각났다.

청와대의 주인이 된 친구를 돕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오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당의 끈질긴 요구에 네팔로 트레킹을 떠나고, 탄핵된 친구를 돕기 위해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그리고 다시 청와대에서 일하고. 그리고, 그 소중한 친구를 그렇게 떠나 보내고.

자신에게 던져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그 분이 생각났다. 고맙고, 또 미안했다.

꼭, 말하고 싶었다.

문 후보님, 후보님이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닙니다.

저희는, 우리나라 국민은 아직 문 후보님 같은 분을 대통령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1469만 국민들에게 받았던 성원, 지지자들에게서 받았던 사랑의 기억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저도,

세계 어느 나라의 대통령과 견주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럽고 또 존경스러운 대통령 후보님을 가졌던 것을, 그 분을 응원했던 것을, 그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진 2012-12-2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ㅠㅠ

단발머리 2012-12-24 08:09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아직도 울어요? T.T

오늘 아침에 오마이뉴스 읽다가 이번 선거에서 20대의 좌절과 절망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30대 후반을 살고 있는 저는, 너무 미안한거 있죠? 대학생활의 낭만을 빼앗겨 버린, 취업의 감격을 빼앗겨버린, 결혼이라는 달콤새콤한 감동을 빼앗겨버린, 우리 20대한테요.

소이진님, 울지 마세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잖아요. 하루 하루 이렇게 버티다보면 또 좋은 날 오겠지요. 전 그럴거라 믿어요. 또 좋은 날 올거예요..... 꼭이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