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교회 오빠들 가정 네 팀이 가까운 계곡에서 아이들 물장구라도 치고 재미있게 놀리라 했던 계획이 취소됐다. 한 아기가 아팠고, 오늘 밤부터는 비가 많이 내린단다. (여기에서 오늘밤은 이젠 어제밤이다. 14일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으려던 ** 오빠가 말했다.

“그래, 잘 지내고. 내일 태극기 잘 달아라.“

“태극기요? 태극기..... 태극기, 어딨지?”

1. 국가는 내 편인가.

여기 노동자가 있다.

10년, 20년을 몸이 아플 때도, 고단할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내 회사, 우리 회사라 생각하며 열심히 현장을 지켰던 사람들이 있다. 회사를 사랑하는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정리해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쌍용자동차 2,646명의 해고자.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 우편을 통해 해고통지서가 전달되기도 했지만,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순진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퇴직금을 내놓고서라도 회사를 지키고 싶어했다. 회사와 함께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미 회사는 그럴 의지도, 그럴 능력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다.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한다는 회사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며 용역을 동원한다. 경찰이 배치되어 공장을 봉쇄한다.

단수, 단전, 의료진 출입 봉쇄, 볼트 새총, 경찰 헬기, 10년된 최루액 2041.9 리터 살포, 완전무장한 경찰과 용역의 무차별적 진압.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컨테이너)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작가님의 말처럼, 쌍용자동차에 대한 무차별적인 진압과 인권 유린의 현장은 1980년 광주와 꼭 닮았다. 폭력적, 폭압적 국가 권력 앞에 개인은 테이저건 한 방으로 쓰러뜨려야 하는 “외부 세력”, “빨갱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사람들, 평택에서 돈 잘 쓰기로 소문났던 쌍용자동차 조합원들,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볼트 새총에, 최루액에, 테이저건에 그냥 그렇게 쓰러져간다. 회사에서 “이제 나가라!”고 말할 때, “네” 하고 순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회사를 살리고 싶어했던 것이, 일터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박노자 교수의 말이 맞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2. 너희는 참 좋겠구나

오직 서류상으로만 2008년 9월말까지 168%에 불과했던 부채비율은 561%로 증가한다. 또한 당기 순손실 역시 2008년 9월까지 980억 원이었으나 3개월 만에 7,100억 원으로 치솟는다. 이제 누가 봐도 부채비율 600%, 당기 순 손실 7,000억 원의 문제기업이 되는 것이다. (75쪽)

‘먹튀’를 방조한 국가권력, 산업은행, 그리고 기술 유출을 눈감다시피 한 검찰, 엉뚱한 사람이 내놓은 근거로 기술 유출 무죄를 선고한 무성의한 법원,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 (167쪽)

건실한 기업 쌍용자동차가 보고서 하나로 부실기업이 되고,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정리해고다. 다른 방법을 생각지 않는다. 어짜피 외국 자본이 필요로 하는 건 기술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고급 기술이 유출되는데도, 우리의 근로자가 그렇게 정리해고 되는데도, 아무도 돕지 않는다. 국가도,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그리고 언론도.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는다.

3. 지식인의 책무

내가 무력하게 느껴질 때, 어떤 노력도 부질없을 때,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눈물이 터지기 직전, 아마도 그때가 신이 나를 부르는 시간이리라.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그냥 중얼거렸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어떻게든 도와주세요, 제발요, 제발......(62쪽)

어렵게, 어렵게 읽어 나갔다. 중간 중간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답답하고, 먹먹하고, 미안했다. 공지영 작가님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다. 나보다 열배 더, 백배 더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나는 한 번 읽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이 많은 문장들을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치고 했을 그 많은 시간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작가님의 눈물과 수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4. 결심 그리고 용기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처럼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운전을 하고 가다 저 앞에 경찰차가 있으면 안전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무리 정권 말기라 하더라도 이런 글을 써도 괜찮나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하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 생각이 불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누가 날 감시하지는 않는지.

비가 내린다.

마이클 샌덜이, 슬라보예 지젝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 분향소를 찾았을 때, 사진을 보며 반가워하기만 했던 내가 부끄럽다. 시간을 내 찾아가 봐야겠다, 결심을 한다. 결심하지 않으면, 용기내지 않으면 가기가 쉽지 않을테니.

내일은 비가 온단다. 비가 온다니, 다행이다. 차라리 비가 오는게 낫겠다. 어차피 태극기도 못 찾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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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1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우, 좋은 글이예요.
저희 집은 태극기를 달았으려나요...

단발머리 2012-08-16 01: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소이진님. 저흰 끝내 태극기 못 달았는데요, 앞으로도 쭈욱 못 달 것 같네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