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를 다섯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비비언 고닉은 반드시 들어간다. 나는 비비언 고닉을 사랑한다. 그 까탈스러움을, 집요함을, 그리고 짱짱한 기억력을 나는 사랑한다. 다섯 명만 꼽으라면, 흠. 에이드리언 리치랑 마리 루티, 그리고 해 같이 빛나는 정희진쌤을 넣고, 그리고 비비언 고닉 넣으면 벌써 네 명이나 찼네.




나시 입고 털목도리 두르고 무료로 진행하는 패션쇼를 강행하려니 식구들이 곤욕이기는 한데, 나는 상관없다. 나는 안 덥다. 물건을 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오래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든 물건을 건넨다는 것에 대해서. 비비언 고닉과 목도리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앞에 두세 쪽을 읽었는데, 아까워서 얼른 닫았다. 아... 어디 조용한데 가서 조용히. 나 혼자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이다. 조용히,가 어려우면 나 혼자. 나 혼자를 실천하려면 식구들이 나가든지 내가 나가든지.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는 할 이야기가 있으니 동영상을 하나 보고 오라고 했다. 마리 루티가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의 동영상 같은데. 뭐, 거의 이 정도면 만나지 말자는 이야기인가 고민하고 있었더니, 영한대역 학습본이랑 한글 대본을 보내주었다. 이 귀하고 귀한 마리 루티, 이제는 신간을 만날 수도 없게 된, 이 소중한 분의 음성이라도 듣고 싶다며 하는 말이, 이 귀한 분을 소개해 준 사람이 나라고 한다. 그래서 예의상 20분만 들어보자 하고 동영상을 틀었는데, 세상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 마리 루티를 소개한 사람은 내가 맞았다. (번역; 챗지피티 유료 버전)

Are first of all, the fact that he understands human ontology to be based on this sense that we are lacking something, that there is this emptiness or hollowness or nothingness within our being, and as you know, people like Jean-Paul Sartre had the same idea, his famous book is called Being and Nothingness, so Lacan is not the only person to think in those terms, but he had a very good explanation for why we feel like that, why we feel like we have lost something unfathomably precious that we cannot get back.

첫째, 그는 인간 존재론이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감각에 기초한다고 봅니다. 우리 존재의 내부에 비어 있음, 공허, 무가 있다는 감각이죠. 아시다시피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사람도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책 제목이 『존재와 무』니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한 사람이 라캉뿐인 것은 아니지만, 라캉은 우리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왜 되찾을 수 없는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는지 아주 훌륭하게 설명했습니다.

And then the idea is that because of that lack, we have desire, and because of desire, we try to seek all kinds of ways of filling that lack, including things like writing books or creative endeavours or other intellectual endeavours or whatever it is that makes human life meaningful to people.

그 결여 때문에 우리에게 욕망이 생기고, 욕망 때문에 우리는 결여를 채울 온갖 방법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책을 쓰거나 창조적 작업과 지적 작업을 하는 것, 그 밖에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모든 일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But you also have done it in many other ways, like writing a gazillion books, as I have, so we have that in common, but that's definitely... I know that that's my pathology, that's my symptom, writing books is my symptom, it's the only way I can deal with the ontological nothingness.

하지만 당신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쓰는 등 여러 방식으로 삶을 채우기도 했죠. 저도 그랬으니 우리에게는 그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병리이자 제 증상이라는 것을 알아요. 책 쓰기가 제 증상입니다. 존재론적 무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아, 라캉을 세상에서 제일 쉽게 설명한다는 마리 루티의 설명은 얼마나 적확한가. 얼마나 명료한가. 그랬던 것이다. 무언가를 알아서 마리 루티의 말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마리 루티가 설명을 잘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춘기가 될 때쯤 우리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자신이 결코 불굴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뭔가 완전하지 않은 듯한 이 느낌은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고, 알 수 없는 불만감이 일상의 저변을 흐르게 됩니다. … 장 폴 사르트르는 이 공허감을 ‘무 nothingness’라고 불렀고 라캉은 ‘결핍 lack’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부르는 이름은 저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 281/530)

결핍, 무.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

나는 사람들이 이런 감각을 어느 때쯤 느끼는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가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기쯤 이런 감각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중년의 반란, 중년의 위기는 이런 감각, 이런 인식을 한껏 밀어두고 살았던 사람들이 비교적 늦게 이런 감각을 깨달았을 때 찾아오는 혼란이 아닐까 싶다. 더 구체적으로는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이 순간을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살았던 사람일수록, 멈추지 않고 돌진했던 사람일수록 이런 느낌과 감정이 몰려올 때, 더 큰 혼란과 좌절, 그리고 실망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들이 반복하는 '외롭다'는 말은, 그래서 정확하면서도 틀린 말이다. 모든 사람은 외롭다. 왜냐하면 인생의 긴 여정 가운데 사람은 항상 혼자이기 때문이다.

2019년, 마리 루티가 '그것'이라고 명명한 '이것'에 대한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 놀랐던 것 같다. 라캉을 비롯해 그쪽으로는(생각해보니 그 쪽만은 아니고, 이쪽도 그렇겠지만)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것'에 대해 이렇게 명료하게 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 생활을 해왔고, 설교를 들어왔기에 인간 내부에 다른 인간 혹은 사물로써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래서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상당히 근접한 정도의 의미를 가진 이 '그것'에 대한 마리 루티의 설명이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라캉을 읽어야 하는 걸까. 한국의 제일 유명한 라캉주의자는 아니지만, 한국의 라캉주의자 중에 나랑 제일 가까운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좀 물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