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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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10시 13분. 약간 늦었다. 원래 남편과 같이 나가는데 1부 예배 기도를 맡은 날이라 그날은 혼자 가게 되었다. 앞집 이웃분이 나오셔서 둘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교회 가세요? 네~ 어디 나가세요? 볼 일 있으세요? 아니요. ... 좀 만나서 이야기 좀 하려고요. 그래야, 또다시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을 ... 크크 웃고 내가 묻는다. 여자죠? 그러게, 여자한테는 여자가 필요해요. 그렇죠? 네, 맞아요. 근데 남자한테도 여자가 필요한데 말이에요. 네, 맞아요. 대답하시고 이웃분이 환히 웃으신다. 근데 왜 우리 남자랑 살죠?라고는 물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물을 수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 맴돌지만 물을 수 없는 물음.

강제적 이성애에 대한 비판, 그것이 여성을 옥죄고 사회 전체를 경직 상태로 몰아가고 있음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필요한 일이지만, 이 책이 해부하는 문제는 그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랑, 낭만적 사랑은 근대의 발명품 중 하나이다. 인류 문명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결혼과 달리 격정의 과정과 결과로서의 사랑은 역사가 짧고 여전히 실험적이다. 계급 재생산 수단인 결혼은 지위, 명예, 재산의 승계를 위한 것이다. 유사 이래로, 얼마만큼의 지위와 물적 토대를 가진 남성들은 실제 삶에서 애정을 분리했다. 자식을 낳아준 부인에게는 지위를, 애첩에게는 재산을 나누어 주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애정이, 두 남녀(혹은 두 여성 혹은 두 남성)간의 정념이, 불타는 열정이 실제 결혼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결혼은 결혼이라기보다는 결혼 생활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핑크빛 사랑이, 콩닥콩닥 연애가 결혼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실제는 생각과 다른데, 많이도 다르다. 삶이 절망인 이유는 사랑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내가 예상했던 사랑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쯤 다시 한번 등장하는 나의 개똥철학. 참사랑이란 멀리 있는 사랑. 완벽한 사랑이란 머릿속의 사랑. 영원한 사랑이란 결국에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 로테에 대한 괴테의 사랑.

엄밀하게 말해서 페일리 소설의 남녀는 서로와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과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서로에게 투사(投射)이자 자극이다. 언젠가는 (대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결합에서 인간적 문제가 불거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그럴 때가 많다) 사랑이라는 느낌은 증발해버린다. 이 증발에 대한 반응에 페일리는 관심을 갖는다.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우울해하거나 혹은 동요한다. 동요하면 떠나버리고, 우울해지면 마비된 듯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로 동요하는 쪽은 남자이고 우울해지는 쪽은 여자다. (155쪽)

열정과 정념으로서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반드시 '그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이 사랑이라면, 다른 사랑은 사랑이 아닐 테고, 그 사랑이 사랑이라면 다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내 곁에 있어야 해요.

나를 떠나면 안 돼요.

영원히 내 곁을 지켜주세요.

나를 떠나지 말아요.

비극은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널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다. 모든 걸 주고팠던 마음이 사라져 버려 생긴다. 함께해서가 아니라, 떠나지 않아서 생긴다.

사람은 결국 무언가를 찾는다. 내 시간을 소비할 무언가를 찾고, 내 마음을 쏟을 무언가를 찾고, 내 인생을 완성할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은 명예일 수 있고, 행복일 수 있고, 재산일 수도 있다. 삶을 추동하는 그 에너지가 오직 성적 반응과 행위의 원동력으로만 작동할 때, 다르게 말해, 오직 사랑에'만' 집중되었을 때의 위험을 비비언 고닉은 설파한다.

사랑의 종말. 예상된 결말이고, 예정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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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9-21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읽지 못한 소설들의 리뷰를 읽으며 공감못해 마음이 온전히 가닿지 않아 잠깐 책을 덮었었거든요. 근데 단발 님 리뷰 읽으면서 이렇게 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느낌을 받게 되어 참 좋네요.^^ 어쩜 사랑에 대한 종말 그리고 비극! 이 슬픈 단어들을 너무 낭만적으로 풀어내시네요. 사랑의 비극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떠나지 않아서란 통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잠깐 조현아 이름 본 김에 ‘널 사랑하지 않아‘ 노래 검색해서 들어봤거든요. 가사를 다시 음미해보니 쏘쿨한 노래로 들리기도 하군요. 조현아 목소리가 넘 좋아서 그렇게 들리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단발 님의 사랑의 비극 정의에 의해 모든 게 그렇게 들리게 될 것 같네요.ㅋㅋㅋ 책 다시 펼쳐들고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26-09-2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극은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널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다. ‘

크- 사실 대부분 모든 발라드는, 바로 그 지점을 노래하고 있죠. 그래서 날 떠나지 말라고 말하고, 나는 너의 뒷모습만 바라본다고 말하고 말이지요. 왜, 아예 노골적인 가사도 있잖아요.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


그러나 저는 한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어쩌면 좀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볼 수도 잇을 것 같은데요. ‘비극은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날 너무 사랑해서‘ 생긴다. ‘ 고 말이지요.

저는 모든 괴로운 사랑은,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바라는대로 해주길 바라고,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고, 그러나 상대가 하는 말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래서 비극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는 상대가 하는 말만 잘 들어도 대부분의 비극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 ‘너를 좋아하지 않아‘ 라고 말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지 않는가요.

비비언 고닉의 책을 읽을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잃시찾에 발목 잡혔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