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하나가 이 찬양이다. 70장, 피난처 있으니.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는 주님이시고, 이 더위의 피난처는... 도서관.
도서관에 갔다. 지난 주 금요일에 청소하고 씻고 나섰더니 자리가 없어서 문간방에서 컴퓨터 켜고 앉아 있느라 고생이 많았다. 곧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하였지만 여전히 문간방이어서 그제는 아침 일찍 나섰다. 9시 16분 도착, 콘센트를 꽂을 수 있는 자리가 딱 하나 있었다.
음료를 들고 들어올 수 있고, 콘센트가 많아 커피숍 부럽지 않은 천혜의 환경인건 참 좋은데, 지나치게 공부 분위기다. 책 읽는 사람들 보다 인강을 듣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수험서가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수험서를 보는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수험서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작년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들이 많다. 슬쩍 봐도 난 못 풀 것 같은 어려운 문제를 중학생이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척척 풀고 있다. 수험서와 수학 문제 사이에 앉아 나도 내 책을 펼친다.
어제는 실패했다. 늦게 나와 자리가 없기도 했고, 뭐를 좀 먹기도 해야 했다. 간단히 먹고 다시 들어가려 했는데 서브웨이, 롯데리아가 모두 만차.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서울은 진짜 인구밀집지역이구나. 어쩔 수 없이 투썸으로 향했다. 샌드위치 다 떨어져서 잉글리쉬 에그 머핀을 라떼랑 묶어서 세트로 시키고 또 책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랑 웬수 진 사람)
잭 리처는 내게 휴식 같은 책이다. 책 읽기 싫을 때 읽어주면, 밥맛 없을 때 먹는 씀바귀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책이고, 휴가 때마다 챙겨 읽는 책이다. 여름에 냉방기기 없으면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이랑 살다 보니 여름 휴가는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남들 휴가 끝나고 돌아오는 8월 15일을 전후해 아주 짧게 다녀오거나 그도 아니면 대형 쇼핑몰에서 맛난거 먹고 커피 마시고 오곤 한다. 작년에는 여름에 냉방기기 없으면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이 군산, 익산등을 돌아보고 오자고 해서 따라나섰다가 제2의 코로나 사태와 마주하여 얼마나 힘들었는지... 올해는 다른 계획이 없다. 큰애는 친구들이랑 놀다 어제밤에 돌아왔고, 작은애는 수험생이 기특하게도 교회 수련회 가겠다고 해서 다녀오라 했더니, 남은 사람은 냉방기기를 사랑하는 1인과 이제 냉방기기에 적응해 버린 1인.
나만의 휴가, 나는 리처를 만난다.
오픈하우스에서 <잭 리처 컬렉션>이 하나하나 새로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친구들이 선물해 준 『출입통제구역』과 『인계철선』은 이번 여름에 읽으려고 아껴두려고 했으나, 했으나... 아주 재미있게 잘 읽어버렸다. 올 휴가에도 잭 리처 하나 읽고 싶은데 했는데, 마침 이 책이 집에 있다고 한다. 오더블 크레딧 하나 써서 오디오북 구입하고, 투썸 음료 마시면서 리처 읽으니, 여기가 바로 호텔이요. 여기가 바로 낙원일세.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나의 이 '잊어버림'을 새삼 칭찬하며, 신나게 리처를 읽는다.
5-6년 전쯤, 대형 쇼핑몰에서 크레마로 잭 리처 읽었던 사진을 알라딘에 올려두었던 거 같은데, 어제 밤부터 찾아봐도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여름휴가, #잭 리처, #리처, 태그를 이리 저리 돌려가며 검색해봐도 도저히 못 찾겠다. 이렇게 못 찾게 된 그 책, 그 사진 속의 그 책 『1030』(개정판은 『코드 1030』)과 지금 읽는 『Bad Luck and Trouble』은 같은 책이다, 이 말을 하려고 했는데... 사진은 끝내 못 찾았다.
나는 괜찮다, 이제.
아닌가? 나 아직도 애도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