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독자가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매우 다른 영역을 지향하는데, 그건 바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논리적 함의는 뭘까? '행동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없으며, 징벌로서의 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16쪽)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읽고 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15쪽까지 읽고 나니 괜찮은 거 같아 서둘러 구매했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저자의 파격적인 주장을 확인하자마자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의 소설이 떠올랐다. 윌리엄과 루시가 나눈 대화 부분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후기를 정리해둔다. 리뷰라고 할 수 있고, 페이퍼라고 부를 수 있는 글을 쓰는 일을, 내게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은 나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고, 나는 그 일을 소중히 여긴다. 가끔 생각만큼 글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쓴다기보다는 책을 읽는 도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페이퍼로 정리할 때가 더 많다. 페이퍼를 써야겠다, 할 때에도 생각이 정돈된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마주친 문장이 있고,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고, 뾰족한 반론이 있지만, 그게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글쓰기를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감정과 촉촉한 감상과 불타오르는 반감이 화면 위를 교차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완성된 글들은 내 예상이나 계획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자유의지에 대해 언젠가는 한 번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더란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윌리엄에 대한 내 반감과 루시 편에서의 반증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갈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소설은 『오, 윌리엄!』 이었고, 이번에 다시 그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아!


아니, 인덱스를 이렇게 많이 붙여놓으면 어쩌라고. 어디 있냐고. 어떻게 찾으라고. 라는 말을 중얼거리던 찰나. 아, 과거의 나는 불편했던 것이다. 윌리엄의 질문과 루시의 답변, 루시의 질문과 윌리엄의 답변 사이에서 화가 났던 것이다. 언젠가는 써야지,의 결심을, 나는 빨간색 인덱스를 책 위쪽에 세로로 붙여 놓는 것으로 갈음하였고. 그렇게 그 부분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윌리엄과 루시는 아주 오래 전, 두 사람이 헤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시는 자신이 윌리엄을 떠나기로 선택했고, 그래서 크리시(첫째딸)가 병들었다고 말한다. 계속된 불륜으로 가정을 망친 건 윌리엄이었지만, 가정을 깨뜨린 건 루시였다고, 루시는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신이 나를 떠나기로 선택했다고?" 윌리엄이 나를 돌아보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택이라고, 루시? 사람이 살면서 정말로 뭔가를 선택하는 일이 몇 번이나 될까? 말해봐. 당신이 정말 가족을 떠나기로 선택했어? 아니,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당신은...... 당신은 그냥 떠났어. 그래야만 해서 그러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런 불륜을 저지르기로 선택한 건가? (194쪽)

이 지점에서 나의 발작 포인트는 루시가 가정을 떠난 게 선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윌리엄이 자신의 불륜도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지점이다. 이런 무슨. 뭥미 같은 궤변이란 말인가. 그 모든 순간이, 시간이, 결정이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거야? 이번에는 내가 묻고, 윌리엄이 답한다.

"오, 자유의지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워." 그가 말했다. 그는 말하면서 이리저리 서성였고, 흰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건 뭐랄까 잘은 모르겠지만, 자유의지에 대해 말하는 건 뭔가 쇠로 된 커다란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같아. 나는 지금 뭔가를 선택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거야. ... 우리는 그냥 해. 그냥 한다고, 루시."(195쪽)

교수였던 윌리엄이 과학자이고, 루시가 소설가라는 점이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라우트는 루시이지만 동시에 윌리엄이기도 해서, 루시인 스트라우트와 윌리엄인 스트라우트가 서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논쟁하고, 그래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테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의 내 생각은 루시의 생각과 더 가까웠고.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스트라우트가 누구의 생각에 더 가까운지 알 수 있었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고 나면, 내 생각은 윌리엄의 생각에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한 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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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31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 님이 너무 멋있어서 진짜 미치겠어요!!

단발머리 2026-05-31 20:17   좋아요 0 | URL
아이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트 받아가시구요! ❤️🧡💛💚💙💜💗❣️😘

망고 2026-05-31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의 이번 소설에서도 자유의지에 대한 물음이 주요하게 등장해요 자살을 생각하는 주인공이 계속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소설 끝날즈음 fate를 생각하고요... 저는 결말에서 눈물이 조금 났어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세상 때문에요ㅠㅠ 스트라우트는 계속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