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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평점 :
카를로 로벨리의 네 번째 책이다. 라고 쓰고 찾아보니 다섯 번째였다. 로벨리의 다섯 번째 책이다.
로벨리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찬찬히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글이 과학자의 글 치고는(?)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의 나열과 단어의 향연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네 삶, 우리의 현실과 그가 말하는 물리학이 기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을, 그는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양자론은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이론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99쪽) 양자론에 대한 이런 설명을, 천생 문과인 단발머리는 환영합니다.
이 책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신의 이야기로 모든 것이 설명되던 시대에, 신 없이 세상을 설명하려 했던 아낙시만드로스를 추적한다. 신에 대한 절대적 신념에 맞서고,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주장조차 비판하는 아낙시만드로스. 그는 자신 앞에 커다란 벽처럼 존재하는 확고한 세계를 거부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무, 그로 인한 무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무에서 시작해 새로운 이론과 주장, 지식을 쌓아나간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주창한 우주론의 핵심은 '지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92쪽)'라는 개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 이미 눈으로도 확인한 바이지만, 측정 기술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가설이고 주장이었다. 이게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포함된 동시성 개념이 우리에게 그토록 난해한 이유는 고대인들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에서 위아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와 매우 비슷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위아래가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성이 상대적이라는 말은 물리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다. (103쪽)
그렇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이 어려운 그렇게나 어려웠던 것이다.
후반부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과학자로서 내내 관찰하고 연구했던 과학적 실험의 결과와 그 결과에서 도출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과학자의 자기주장이 나온다. "과학의 목표는 정량적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과학의 목표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다."(174쪽) 저자는 이전 역사에서 확증되었던 고정된 개념과 사고에서 벗어나는 과학적 지식이 세계를 이해하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세계관의 구축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던 시대에,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아낙시만드로스. 세상의 작동 원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인식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구축되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과학자 역시 특정 세계의 이해와 지식, 사회적 통념과 문화의 일부임은 당연하다. (왜, 당연한 이야기를 쓰는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은 수만 년 동안 문화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거의 즉각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물론 오해와 착각이 있었고, 그 결과 콜럼버스 이전의 문화가 붕괴하는 비극도 뒤따랐다). 흔히 말하듯 문화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다면 아메리카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은 어떻게 말을 나누고, 교역하고, 함께 자녀를 낳고, 군사적 동맹을 맺고, 경제적 협력을 유지하고, 종교를 교류할 수 있었을까? (209쪽)
209쪽의 문장들은 과학 분야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편협한 이해 혹은 편협한 해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스파냐인들의 침공 이후, 에스파냐 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에 말을 나누고, 교역하고, 함께 자녀를 낳고, 경제적 협력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치욕의 시간들 역시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남미의 국가들 중, 많은 국민들이 혼혈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인종 간의 위계와 그러한 차별의 핵심이 '백인성에 대한 추구(whitening)'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천상 문과인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과학책의 믿을 만한 저자로 생각하지만, 이 부분은 많이 아쉬워서 일부러 기록으로 남겨 둔다.
제일 좋아하는 문단을 여기에 쓴다. 마지막 문장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뜻은 뭔지 알 것도 같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 우주에는 1,000억 개의 은하계가 있다. 그리고 각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또 1,000억 개나 있다. ... 부모와 자녀가 닮은 것은 선대의 유전자가 DNA에 담겨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 속에는 약 1,000조개의 시냅스가 있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일으킨다. ...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하나의 조상에서 만난다. 따라서 인간과 무당벌레는 친척이다.(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