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다녀왔다. 일 년에 미용실에 두 번 간다. 작년에는 사회생활 한다고 세 번 가는 신기록을 남겼는데, 올해에는 오늘 처음으로 미용실에 갔다. 중단발 길이로 자르고,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고 끝부분에 웨이브를 주는데, 이렇게 해서 산뜻하고 발랄한 단발머리 아닌 ‘C컬 (아줌마 느낌의) 단발머리’ 완성됐다.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아서 원장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는데, 전 우주의 관심사 한국의 저출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그니깐 왜 여자들이 애를 안 낳는 거냐, 다 그렇게 자식 낳고, 키우고 사는 거다, 직원분 말씀에 ‘발끈’ 버튼이 눌러졌다. 나는 웬만한 일에도 놀라거나 발끈하거나 화를 내는 스타일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 자주 안 뵈어도 단골이고, 오늘 손님도 없고 해서 내 맘이 확 풀어졌던가.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내 목소리는 너무 컸고, 원장님도 직원분도 내 말을, 그 쉬운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고. 나오면서 폴더 인사만 정확히 드리고 왔다. 나는 왜 그랬나.
학교에서 저녁 먹는 고3 수험생을 포함해 나머지 식구들도 모두 저녁 약속 있다고 해서 오늘은 밖에 있다 들어가야지 해서 아침에 나오면서 책 챙겨 나왔다. 오늘 처음 펼친 책의 챕터 2가 이렇다. <여성의 눈부신 성장>. 재미 100 보장, 이렇게 쓰면 안 되겠지만, 이런 문단 만나면 흥미도 200% 상승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우리는 잉여를 창출해서 축적을 가능하게 하고 사유 재산을 탄생시킨 농업의 발명과 그 발전이 여성에게 재앙이 된 역사를 살핀다. 농업은 경제적 불평등의 모체이자 더욱이 성별 간 불평등과 여성이 가내 생산 체계로 종속되는 규범의 모체가 되었다. (19쪽)
사유 재산의 발명과 농업의 발전이 이전의 여러 민족의 신화와 결합해 여성 혐오의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듣고 또 듣고 들어도 들을 때마다 새롭다. 타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들, 오리엔탈리즘, 타자화 그리고 여성 혐오.
오늘부터 이달의 여성주의 책 읽으려고 했는데 무거워서 마지막에 탈락됐다. 내가 새 책 읽기 시작한 거 아무도 모르게 해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