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여성>은 여성 종속을 역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여성 종속의 ‘기원’과 관련해서, <가부장제의 창조>의 거다 러너의 생각은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엥겔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유재산이 먼저 발달하고, 이것이 “여성이라는 성의 세계사적 전복”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는 사유재산이 생기게 된 것은 여성교환을 통해서였다고 믿는다. (<가부장제의 창조>, 87쪽)
즉, 재화가 부족했던 신석기 시대에 사유재산의 첫 번째 전유는 재생산이 가능한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전유로서 가능했다고 본 것이다. (<가부장제의 창조>, 91쪽) 이 책 <파묻힌 여성>의 저자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1908~2009)가 여성의 교환을 '긍정적인 거래"라고 불렀다면, 프랑수아즈 에리티에는 남성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고 여성의 가치가 낮게 평가된 것으로 본다.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성격이 서로 다른 집단이, 남성이 여성을 교환한다. 이 때문에 나는 인류의 시작부터, 그리고 구석기시대가 시작했을 때부터 성에 따른 차별적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묻힌 여성>, 35쪽)
<캘리번과 마녀>의 실비아 페데리치는 급격한 출산율 감소로 인한 사회적 불안의 원인으로 일부 여성들이 지목되고, 이들을 ‘마녀’로 규정하면서 진행된 ‘마녀사냥’이 여성을 종속화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분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협동적인 작업이 마녀들의 주술 활동으로 정의되면서, 출산에 대한 여성의 제어권이 박탈당하고, 출산 작업 공간에서 산파들이 쫓겨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의사가 출산 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여성의 신체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도구, 출산 기계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동 저자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제3세계의 여성들뿐 아니라 제1세계의 여성들의 삶도 종속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국제 노동 분업을 통해 유럽과 미국의 여성이 제일 먼저 해고되고, 직장을 잃은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남편의 임금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제1세계 여성들에게는 ‘가정의 천사’로서의 수행이 기대되었다. 한편 제3세계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직장에 나온 ‘가정주부’로 인식되어 비인간적 노동시간과 저임금의 횡포에 시달렸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양 세계에 속한 여성들이 모두 억압받게 된 것이다.
<그림자 노동>에서 이반 일리치는 지위가 박탈되면서 전혀 새로운 계급으로 만들어진 가정주부의 탄생을 1830년대로 특정하고 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음식 가공과 저장, 양초와 비누 제조, 실쌈, 제화, 퀼팅, 양탄자 짜기, 소형 가축 기르기, 텃밭 농사 등이 모두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 … 가정의 자급자족을 유지하는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집에 가져오는 수입은 비슷했다. 경제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 하지만 1830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상업적 영농이 자급농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생활 임금을 버는 일이 상례가 되었으며, 부정기적 임금 노동은 빈곤의 징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정의 안주인에서, 자녀가 일하러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 또는 남편이 휴식을 취하고 수입을 지출하는 장소의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앤 더글러스는 여성의 이러한 변형을 ‘지위 박탈’(disestablishment)이라고 불렀다. (198쪽)
지금은 어떨까. 나는 초소형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이 여성의 종속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몰래 설치된 불법 카메라는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는데 쓰이고, 발각되지 않는 경우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은 야동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일부 무법한 사람들이 회식 예약 장소에 미리 방문해 회사 여직원이 사용하게 될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연인 사이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애정사가 불법으로 촬영되어 이별을 전후에 협박용으로 혹은 복수형태로 악용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리벤지 포르노)의 경우, 당사자들이 심각한 피해를 호소해도 무한 반복되는 가상 세계에서의 추적과 완벽 삭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한다.
역사를 통해 확인되듯이 여성 혐오는 무한 반복된다. 그 시작점을 추적하려는 것이 <파묻힌 여성>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여성 혐오는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가정주부 이상화는 완벽한 워킹우먼에 대한 찬사로 이어진다. 코르셋은 양악 수술로 이어지고......
여성 혐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끝을 내야할지 모르겠다.
여성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