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부조리, 신에 대한 본격 탐구서. 제목에 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래도 논의 자체를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끈질김에 별 하나를 더 준다. 정확히는 3.5. 

 



마지막 부분에서는 반신론(반유신론)’을 강변한다.

 


그렇다면 신은 도대체 존재하는가? 나는 알지 못한다. 부끄럽지만 나의 철학적 명민함과 지성이 바닥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그러나 만약이라도 내가 신이 존재하는 세계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존재가 눈길을 거두지 않는 이상 우리는 결코 고독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 존재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삶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우리와 그 존재의 관계는 노예와 선량한 주인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을, 신이 아무리 선한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노예일 뿐이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170)

 



강신주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장면이다. 신과의 정면 승부. 신 없이 단독자로 서겠다는 결심. 인문학자로서 당연한 모습일 테다. 신 없는 우주, 신 없는 세상. 그리고 단독자 인간.

 




신이 인간의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고, 따라서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의 삶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는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는 사실 유서가 깊다. 그 견해를 피력한 사상가들도 다양하다. 쇠렌 키르케고르(SörenKierkegaard 1944b, pp. 151-153) 역시 그의 저서 《기독교에서의 훈련 Training in Christianity》에서 인간의 삶이 무가치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그저 공허함이나 무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를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 P155

신앙은 ‘나는 왜 살고,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고, 그 대답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동일할지라도, 표현 방식은 무수히 다양할 수 있습니다. <고백록> 톨스토이 - P156

카뮈는 혹시라도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인간의 삶에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카뮈에게서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고 그에 따라서 신성한 의미와 목적으로 충만한 삶을 것인가 아니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아무런 처벌 없이 나쁜 행위를 할수 있는 삶을 살 것인가 사이의 선택으로 귀결된다. - P160

여기서 비판의 핵심은 단순히 신이 인간들에게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 개연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비판의 핵심은 도대체 신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목적을 부여할 수 있는지 개념적으로 상상하기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 P163

결과적으로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유일신 신앙에서 상정되는 신의 초월적 속성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신이 절대성, 완전성, 탈시간성, 불변성과 같은 초월적 속성들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초월적 속성들을 지니지 않는 존재가 유일신 신앙의 신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 P165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삶의 목적이나 소명을 부여할 수 있는 종류의 존재가 아니라는 신이 우리에게 의미로운 삶을 선사할 수 없다는, 신이 인간의 부조리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신이, 그리고 오직 신만이, 인간을 무의미와 부조리의 수렁에서 구원해줄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근거 없는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66

이 지점에서 네이글은 일인칭적, 주관적, 행위자적 관점에서는 앞서 언급한 종류의 무한퇴행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 관점에서 "왜 당신은 삶을 지속해야 하지요?"와 같은 질문들은 애초 대답할 필요조차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 관점에서 우리가 삶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아무런 부가적 정당화가 필요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 P87

이러한 경험을 네이글(1986, P. 209)은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묘사한다. "저 멀리서 볼 때 나의 탄생은 우연적이었고, 나의 삶에는 아무 이유가 없으며, 나의 죽음은 지극히 사소해보인다. 그러나 나의 내면의 관점에서 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하고, 나의 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나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파국적인 사건에 다름 아니다. - P88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이 세 번째 해결책은 삶에 대한 불교[33]의 가르침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불교의 사상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교리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아는 허구일 뿐이며 실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사상 no self doctrine이고, 다른 하나는 해탈을 통해서 윤회의 사슬을 끊고 열반의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열반사상 nirvana doctrine이다. 이 중 무아사상은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세 번째 해결책과 사실상 동일하다. - P125

이에 대해 네이글은 영원의 관점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진지함을 가지고(그 진지함이 영원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삶에 임하는 우리들의 숙명에 대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응은 그저 아이러니를 머금은 미소일 뿐이라고 술회한다. 마치 외부 세계가 실재한다는 우리의 상식적 믿음이 정당하지 않다고 설파하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자가 그러한 회의주의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가며 세계의 실재를 가정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그저 아이러니를 머금은 미소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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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18 1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무슨 책인지 밝혀주셔야죠!!

단발머리 2023-04-18 14:45   좋아요 3 | URL
앗!!! 반납하려고 밑줄긋기 중입니다. 모르고 공개로 설정했네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4-19 23: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넘 웃겨요😂

2023-04-18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8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8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8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