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하긴 할테지만 일단 밑줄긋기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올려둔다.
헌사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니 굳이 미학적 추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도 모르게 감동 포인트를 기대하게 되는데...
이런 헌사 괜찮다. 아주 깔끔하니 담백하다.
전체주의는 간단히 말해 폭민의 정권이다.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전체주의의 시도는 과잉 인구로 시달리는 지구에서 자신들이 별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된 현대 대중의 경험을 반영한다." 전체주의 정권은 이들에게 개인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준다. 그들은 거대한 운동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희생한다. (전체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의미, 옮긴이) - P27
전 세계를 정복하고 총체적 지배를 달성하려는 전체주의적 시도는난국 타개의 파괴적 방식이었다. 전체주의의 승리는 곧 인간성의 파괴와 일치할 수 있다. 전체주의는 지배하는 곳마다 인간의 본질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우리 세기의 이 파괴적인 세력을 애써 무시한다 해도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 P35
19세기 반유대주의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산물은 나치즘이 아니라 오히려 시오니즘이다. 시오니즘은 적어도 서구적 이데올로기의 형태로는 일종의 반대 이데올로기, 즉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이다. 그렇다고 유대인의 자의식이 단순히 반유대주의의 창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으로도―유대인 역사의 주요 관심사는 바빌론 유수 이래 이산의 가능성이 압도적인 상황에 대항하여 민족으로 생존하는 것이었다―이 문제에 관한 최근의 신화를 깨는 데 충분하다. 이 신화는 사르트르가 총칭 유대인은(the Jew)타인들에 의해 유대인으로(a Jew) 간주되고 규정되는 사람이라고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한 이후 지식인층에서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 P44
이처럼 거의 잊혀진 시대와 현재의 사건들과의 불행한 관련성을 강조하는 것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며 우리는 이제 제국주의 정책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제국주의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전체주의의 재앙으로 끝난다는 의미도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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