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서래 씨 좋아하는지 궁금하죠? 아니, 안 궁금하댔나? 서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이게 서래 씨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질 결심>, 해준의 말)
열흘 전 즈음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다. 택시 자주 타는 편은 아닌데 그날은 또 날이 날인지라 택시를 탔다. 집 앞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는데, 그냥 서 있는 상태에서 뒤에 서 있던 택시가 내가 타고 있던 택시를 박았다. 기사님 말로는 콜을 확인하다 그러셨다는데, 허허허 웃으시며 괜찮냐 물으시길래 조금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레 답했다. “아저씨! 여기 언덕도 아니고 평지인데요!”
그날은 괜찮았는데 그다음 날부터 왼쪽 허리 쪽이 뻐근했다. 병원 가고 연락하고 그러면 막 복잡하니까, 아무 말 않고 있었는데 뒤에 탔던 큰아이가 허리가 아프다고, 왼쪽이라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어? 나도 아픈데!”하고 말해 버렸다. 다시 이틀이 지나 큰애는 괜찮아졌고, 원래부터 멀쩡하던 작은 애는 계속 멀쩡한데, 나는 구부리고 펴는 자세가 불편했다. 나만 안전벨트 하고 있었고, 사고 지점에서 제일 멀리 앉아 있어서 충격을 덜 받은 것도 나인데. 나만 아프니까, 운동 부족이라 그런 거라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병원 가기 싫은데 정말 어쩔 수 없이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맞은편에 앉고 내 왼쪽으로 검은 바탕에 내 허리뼈가 환하게 보였다. 아, 나의 허리뼈! 곧고 꼿꼿하고 하얀 나의 허리뼈!
요즘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더 자주 건반 앞에 앉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역시 일에는 태도, 자세가 중요하고. 나는 똑바로 허리를 펴고 곧게 앉았다. 나는 프로가 아니고 아마추어지만, 자세만큼은 프로답게 할 수 있으니까. 허리를 쭉 펴고 바르게 앉았다. 내가 치는 소리가 아니라 모습만 본 사람들은 당연히 내 전공이 그쪽인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너무 당당하게 꼿꼿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도 그런 말을 종종 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허리를 쭉 펴고, 바르게, 꼿꼿하게. 항상 그렇게 건반 앞에 앉았던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화면 속의 내 허리뼈가 그랬다. 곧고 꼿꼿하고 하얀. 그러니까 화면 속의 나는 그런 나다. 최상의 나, 바른 자세의 나, 건반 앞의 나, 꼿꼿하고 당당한 나. 2초 정도였을까, 나는 내 허리뼈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더란다. 아, 내 허리가 저렇게 꼿꼿하구나. 저리도 바르구나.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
뼈가 부러진 데는 없으시고요. 그 사고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겠네요. 근육이 약간 놀란 정도예요. 그런데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시네요. 네? 네? 허리가 원래 많이 안 좋으세요. 이것 보세요. 허리가 꼿꼿하고 쭉 펴져 있죠. S자 허리여야 하는데, 일자허리에요. 그리고 여기 뼈와 뼈 사이가 좀 좁아요. 이러면 안 되는데... 아니, 왜, 왜 그런 건데요? 뭐, 나쁜 자세를 가졌다거나. 의자 끝에 걸터 앉는다거나. 그럼,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른 자세 하시고. 운동하시고. 근데, 선생님! 저는 허리가 안 아픈데요. 흐음.
그제야 화면 속의 내 허리가 달리 보인다. 하얗게 빛나는 내 허리, 나의 허리뼈, 허리뼈들이 이루는 곡선은, 어쩜 저리도 곧은가. 어쩜 저렇게도 꼿꼿한가. 이제 책상 앞의 내가 보였다. 최악의 나, 의자에 걸터앉는 나, 다리를 꼬고 앉는 나, 엉덩이를 의자 끝에 걸치고 구부정하게 앉는 나.
내가 아무리 꼿꼿해도 해준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나는 탕웨이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바른가. 왜 이렇게 꼿꼿한가. 마음껏 슬퍼하면서, 3일간 물리치료를 다녔다. 어제는 외부 일정으로 병원에 가지 못했고, 아침에 요가소년(에피소드 421)을 만나보니 웬만한 자세를 다 할 수 있어서 괜찮을 듯 싶기는 하다. 통증은 사라지고, 나는 더 많이 걷고 걷고 또 걸어야 하겠지만, 이제 그만 꼿꼿해야겠다. 이제 그만 꼿꼿해야지. 꼿꼿한 건 ‘송서래’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탕웨이에게 맡기고, 나는 문소리를 응원해야지. 수상자도 아니고 시상자이면서, 축제의 자리에 순간적으로 분위기 이상해질 걸 알면서도, 하늘로 올라간 스텝 이름을 불러준, ‘사랑해!’라고 말해준 예쁘고 착한 문소리를 응원해야지.
이렇게 세 권을 읽었다. 마리 루티의 문장 하나만 가지고 와도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요즘 휴지기라 그런가,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여러분, 이 책 세 권 모두 강추합니다. 더 길게 말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책들입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참고도서 읽으려고 했는데, 『제인 에어』도 『교수』도 『빌레뜨』도 모두 제자리다. 월드컵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이렇게 세 권. 다락방님 방에서 잠자냥님의 강추로 시작한 읽기인데, 어머! 저 츠바이크 좋아하면서 지금껏 왜 이랬나요. 『마리 앙투아네트』 읽으신 분들, 제가 엄청 원망합니다. 이 좋은 책, 왜 추천 안 하셨나요! (방금 리뷰 찾아보고 옴) 여러분, 취소합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무지의 소치입니다. 완전 재미나서 멀리 외출 나갈 때도 500쪽 넘는 책을 들고 나갔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도, 내일도 이 책만 읽을 거에요. 엔도 슈사쿠의 책도 읽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 최고의 책은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진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