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원시사회들이 원하지 않는 것(원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그래서 원시사회의 우두머리들은 권력이 없고, 바로 그래서 권력은 하나의 몸체로서의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불평등의 거부, 분리된 권력의 거부, 바로 이것이 원시사회들의 동일한 그리고 부단한 염려(念慮, souci)이다. 원시사회들은 매우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투쟁을 포기한다면, 권력의 욕망 그리고 복종의 욕망이라고 명명되는 은밀한 힘들- 지배와 복종은 바로 이 힘들의 해방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 을 가로막는 것을 그친다면, 자신들의 자유를 잃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128)

 



원시 사회(백인들이 말하는 원시 사회’)를 처음 목격했을 때, 백인들은 그들의 미개함의 증거로 강력한 권력 구조의 부재를 들었다. , 사제집단, 관료체제의 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그들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다르게 본다. 불평등의 거부야말로 가장 고도의 정치 행위로서, 우두머리를 두되, ‘권력 없는우두머리만을 허락한 원시 사회보다, 강력한 왕권의 발현과 근대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진 현대 우리의 문명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과 자유를 억압해 왔는지를 논증한다.

 

 


부족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모두 동등하다, 너희들 가운데 그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잘나지 않았고 또 못나지도 않다, 불평등은 거짓된 것이고 나쁜 것이므로 금지되었다, 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원시적 법의 기억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법을 전수 받은 젊은이들의 몸에 그것을 새겨 준다. 고통과 함께 받아들여진 동등한 표식으로, 성인식 때 법이 기입되는 표면인 개인의 몸은 사회 전체에 의한 집합적 투자의 대상이다. 이는 언젠가 법의 언표를 위반하는 개인적 욕망이 사회적 장()에 침투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다. (141)

 



너희들은 모두 동등하다. 는 이런 말은 대한민국 헌법, 미국 헌법, 유엔 헌장에서도 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원시 사회는, 그러한 이상의 실현에 잠시나마성공했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온전히 이뤄냈다.



















 

인종 말살이 "인종"이라는 관념 및 인종적 소수자를 멸절시키겠다는 의지와 관계된다면, 민족말살은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고 하기보다는(그러한 상황은 인종말살적인 것이다) 그 사람들의 문화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 말살은 말살의 집행자들과 상이한 다른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려는 것이다. 결국 인종말살은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죽이지만, 민족 말살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죽인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죽음이 문제가 되지만, 결코 같은 죽음은 아니다.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제거는, 억눌리는 소수 민족의 저항 능력에 따라 시간 속에서 오래 연기되는 효과를 갖는 문화적 탄압과는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관건은이 두 가지 악(惡) 중에서 좀 더 덜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야만보다는 더 작은 야만이 낫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찰해야 하는 것은 민족 말살의 진정한 의미이다. - P61

타자들은 절대적으로 나쁜 자들이기 때문에 멸절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민족 말살은 차이 속에서 악의 상대성을 인정한다. 타자들은 나쁘기는 한데, 우리가 제안하고 부과하는 모델에 가능하다면 동화될 수 있도록 그들을 변화시키면서 개선시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민족 말살적 부정이란 자기에 대한 동화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인종 말살과 민족 말살을 각각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의 도착적(倒錯的) 형태들인 것으로 대립시킬 수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인디언들의 살해자들은 차이로서의 타자의 위치를 그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야만적 인디언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디언살해는 따라서 범죄가 아니다. 이 경우 인종주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데, 왜냐하면 인종주의가 행해지기 위해서는 타자에게서 최소한의 인간성이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해지는 것은 매우 오래된 모욕의 단조로운 반복이다. - P62

다시 말해 이러한 모든 "신"들은 흔히 명사에 불과하다. 즉 인칭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이며, 그 자체로서 사회를 초월하는 문화의 타자(I‘Autre dela culture)의 표시이자 지표이다. 즉 그것은 하늘과 천체의 우주적인 타자성이자 인접한 자연의 지상적인 타자성이다. 특히 그것은 문화 그 자체의 근원적인 타자성이다. 사회적인 것(또는 문화적인 것)의 제도화로서의 법질서는 인간과 동시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이전의 시간과 동시대적이다. - P80

그 누구도 다른 자보다 어떤 것을 더 많이 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원시사회에 부재하는 불평등은 사람들을 권력의 소유자와 권력에의 예속자로 분할하는 것이고, 사회적 몸체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분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족장 제도는 부족의 분화의 지표일 수 없다. 족장은 명령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공동체의다른 구성원들보다 더 많이 할 수 있는 자가 아니기(ne peut pas plus) 때문이다. - P135

오스트레일리아인들과 부시맨들은 식량 자원을 충분히 모았다고 생각되면, 사냥과 채집을 중단한다. 소비할수 있는 것 이상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피곤하게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살린스가 말하듯이, "자연 그 자체가 저장고"인데, 유목민들이 무거운 비축물들을 들고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힘을 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야만인들"은 형식주의 경제학자들처럼 미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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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2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인들이 말하는 원시부족사회의 권력구조를 이런 식으로 본 사람도 있군요. 그런데 그 분포가 얼마나 될지는 좀 궁금하네요. 실제 북미 인디언 사회가 좀 떠오르고, 그 외는 잘...... 아프리카의 부족사회도 권력에 의한 지배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고 그렇네요.

단발머리 2022-09-22 15:10   좋아요 2 | URL
이 책의 저자가 모델로 삼는 ‘원시 사회‘는 브라질 내부, 깊은 숲 속의 인디언들입니다. 저자가 방문했을 때는 백인을 처음 본 인디언들도 있었고요. 소개 소개 받아서 강 건너 깊은 숲 속으로 그들을 만나러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