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쾌한 우울증의 세계 / 한낮의 우울
작년에 『한낮의 우울』을 시작했지만 다 읽지 못했다. 300쪽 정도 읽었으니까 3분의 1 정도 읽은 셈이다. 우울에 대한 책을 찾아 읽게 된 건, ‘우울함이 밀려와’라고 자주 말하는 친구 때문이었다. 우리의 삶은 각자 외롭고 쓸쓸하다. 그리고, 종종 우울한 기분이 우리를 사로잡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것과는 다르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난 태생적으로 명랑하고 낙천적이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다. 잘 웃고, 남을 웃기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가끔은 근처에서 내가 제일 웃긴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기 위해 주위 사람들(가족)을 협박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는 건, 내가 처한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남편이 투털이 스머프에 잔소리꾼이라면, 아이들 학교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온다면, 아이들의 감정 롤러코스터가 360도 회전이라면,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내가 직접 그분들을 돌봐야 한다면, 무릎이 시리다면, 일 년 내내 신경성 장염에 시달린다면. 그렇다고 하면, 명랑하고 낙천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 했을 때, 그렇다면 우울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인가. 만약. 남편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다 주면서 친절하고 다정하다면, 아이들이 모범생에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면, 부모님이 때마다 내게 용돈을 주신다면, 수영, 요가, 필라테스 강사급의 실력을 갖출 정도로 건강하다면, 그렇다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그러한 인생에 우울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건 아닐 테다.
그래서 읽는다, 『유쾌한 우울증의 세계』. 미국 최고 인기 팟캐스트의 진행자인 존 모의 책이다. 그 역시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본인의 경험과 출연자들의 경험을 따라가며 우울증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100쪽 정도 읽었는데 흥미롭고 재미있다. 재미있다고 말하기 미안하기는 한데, 저자가 우울을 풀어내는 방식이 그러하다. 재미있다.
트라우마는 늑대고 우리의 정신은 집이다. 우리는 생각한다. '이젠 안전해. 늑대가 날 해치기 전에 집 안에 가뒀으니까.'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안 돼! 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가구가 죄다 박박 긁혔고, 사방에 늑대 똥 천지잖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어어, 내 몸도 찢어발기고 있네.’(24쪽)
문제는 한번 울음보가 터지자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그랬다. 무언가 속상한 일이 일어나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나는 울고 있다는 걸 숨겼다. 눈을 비비는 척 눈물을 닦아 냈고 어디가 간지러워서 긁는 척하며 셔츠에 물기를 닦았다. 물론 눈물은 감정의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나, 내 눈물은 멍청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몸의 배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눈물이 코피처럼 줄줄 흘렀다. 하도 울어서 어지럽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33쪽)
우울증은 병이다. 모든 환자에게서 비슷한 병리적 증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런저런 특징, 사건, 반응들이 많은 이들에게서 거듭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건, 우리가 알고 보면 서로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며 특별하고도 고유한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했다면, 미안하지만 틀렸다. 믿기 어렵겠으나 당신이 겪고 있는 일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없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입증된 치료가 혹은 적어도 동료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41쪽)
2. Book Lovers / People on the vacation / Beach Read
에밀리 헨리의 세 번째 책이다. 욕하면서 읽는 로맨스. 『People on the vacation』이 우정과 사랑 사이라면, 『Beach Read』는 작가들의 삶(쓰기의 괴로움)을 보여준다. 여남 주인공이 편집자와 출판 에이전트이니 이 책 역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여기. 남주(Charlie) 가족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남주의 어머니(Sally)가 우연히 여주를 본다. 현재 여주는 한적한 시골 동네에 휴가를 온 상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컸고, 키가 크다는 건, 곱슬머리나 여드름처럼 그냥 내 일부였다. 키가 커서 좋을 때(만원 버스에서 맨 위 봉 잡을 때)도 있었지만, 나쁠 때(초등학교에서 창문 청소 전담일 때)도 있었다. 오히려 요즘에야 키가 크다는 게 장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시몬 애슐리의 키가 178센티미터라서 키가 180센티미터인 남주(조나단)랑 눈싸움할 때 특히 그랬다. 더 크고 싶은데 그건 안 될 거 같다.
3. 박시백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그려내었던 박시백이 고려사로 돌아왔다. 통일신라 말기에서 후삼국 시대, 그리고 고려 초기까지를 그려내는데, 견훤과 왕건에 대한 평가가 특히 대조적이다.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일으킬 정도의 능력이 오히려 ‘지나친 자신감’으로 변질되었기에 견훤이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자수성가한 지도자가 아니었던 왕건은 장수, 호족들과 협력하면서 오히려 경쟁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친화력이 있었기에 삼국통일의 주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개인적인 매력이라면 견훤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주인공은 왕건이 된 셈이다.
4.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딸로서, 우리는 어머니 자신의 자유와 우리의 자유를 원하는 어머니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여성의 자기 부정과 좌절을 담는 그릇일 필요가 없다. 어머니의 인생이야말로 아무리 곤경에 처하고 보호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 딸에게 물려주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어머니, 투쟁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계속해서 그녀 주위에 살만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는 딸에게 이러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82쪽)
우리 엄마는 그랬다. 엄마는 내게 그런 모델이 되어 주셨다. 아빠랑 동갑이어서 툭하면(정확히는 대부분의 경우) 아빠에게 반말을 하셨고, 아빠가 작은 사업을 하실 때는 직원 중의 한 명이 되어 아빠를 도우셨다. 평생 일을 하셨다. 내 돈, 이라고 말할 만한 돈을 항상 수중에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그랬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러지 못했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큰아이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 내 인생을 아이의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