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점 정리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참회 예식은 행위가 아니었고, 참회자는 여러 특징을 드러내는 하나의 신분 상태(70)일 뿐이며, 엑소몰로게시스는 죽음의 상연과 자기 포기의 극적 상연(75)을 통해 드러난다. 수도원에서의 자기 점검이란 행위보다는 사유를 가리킨다(82).

 



2. 엑소 vs 엑사

 

참회자가 자신의 죄인의 상태를 일종의 공적인 현시 내에서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엑소몰로게시스이고, 영적 아버지의 의지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사유의 분석적이고 계속적인 구두 표현 행위가 엑사고레우시스이다. (92)

 



3. 주제 문장

 

심지어 엑사고레우시스에서 파생된 이 해석학적 기술들 내에서조차도 진실 생산은, 기억하시겠지만 매우 엄격한 조건 없이는 달성될 수 없었습니다. 그 엄격한 조건이란 자기희생을 내포하는 자기해석학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건 심층적인 모순이거나 아니면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자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테크놀로지의 어마어마한 풍부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희생 없이는 진실도 없다는 것입니다. (95)

 



4. 느낀 점

 


1) 자기 희생 없이는 진실도 없다.

 

2) 두 번의 강연과 두 번의 대담을 엮은 책인데, 뒤쪽의 두 대담이 코믹하다. 한 대담의 사회자 이름은 나와 있고 한 인터뷰어의 이름은 못 찾겠는데, 아무튼 두 대담이 흥미진진하다. 좋은 질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라는 푸코의 답이 있기도 하지만, 더 임팩트 있는 시작은, 글쎄요, 그 강연에 (당신이) 참여했던가요, 아니요,  ** (사회자의 언급)이 결코 아닙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 이 정도면 멱살 잡아야 한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내용은 재미없고 머리 위로 잠은 쏟아지는데, 두 분이 나를 살렸다.  

 

3) 잠깐 쉬었다가 다음 책은광기의 역사』로 한다.




그 결과 이 두 실천의 공통 요소로서 다음과 같은 원리, 즉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 두 경험에서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의 폭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의무와 분리될 수 없다는 원리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관한 진실을 발견해내야 합니다. 진실과 희생,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과 우리 자신의 희생, 이것들은 심층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희생을 삶의 양식의 근본적 변화로 간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정식, 요컨대 너는 실제적인 신체와 실제적인 삶으로서의 네가 소멸하는 오직 그 순간, 그런 너를 네 스스로 파괴하는 오직 그 순간에만 너는 진실을 현시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고 하는 정식으로부터 결과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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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2022-06-28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_ 어렵다. 자기희생이라는 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타성과 닿아있다고 여긴다면 고개 끄덕끄덕.

단발머리 2022-06-28 15:12   좋아요 1 | URL
그니까 말이에요. 진실과 희생이 연결되어 있대요.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관한 진실을 발견해야 된다고.
뭐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29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말하는 진실이 어떤 진실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혹은 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진실?ㅋㅋㅋ), 저는 ‘진실‘이라는 단어에 ‘사랑‘을 껴보고 싶습니다!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진실이 사랑에 가까운 무엇이라고 했을 때...) 헌신이나 어느 정도의 희생없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사랑은 매번 어느 만큼의 나를 내주고 그것을 감당할지를 겨루는 시험장인 것 같아요. 그건 말 한마디로 뚝딱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테고, 매일의 현실에 나를 걸어 놓고 어디까지 보호하고 어디까지 희생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협상해야 하는 지난한 노동... 임을 알고(는) 있죠.

그런데 그걸 안하고 그냥 다 바쳐, 그냥 다 내줘! 그게 사랑이야!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그게 쉬울지도 모르겠어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에게 강조되어온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최소한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담론으로 기능해왔을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희생이라는 말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기투(?)라고 한다면, 그걸 매일의 삶에서 감당해온, 인류의 존속을 유지해온, 세상에 존재했던 많은 여성들은 재생산 능력 때문에라도 자신의 (언어화되지 못했지만) 진실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출 수 밖에 없었겠네요. 그럴 의무와 필요가 없었던 남성들은 일부만 계발 할 수 있었던게 사랑의 능력이었을 테고. 또 많은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몰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으면 이렇게 전체 여성 인류 역사에 대해 크게 크게 생각하게 되어버린닼ㅋㅋㅋㅋ 이것이 바로 여자가 사유해내는 대문자 역사다ㅋㅋㅋ)

이 지점에서 출산과 육아를 겪지 않은 프리랜서 엔잡러인 저는 신자유주의를 생각하는데요... (ㅋㅋㅋ 이놈의 신자유주의 타령) 매일 매일 어느 수준에서 나를 내어주고 희생하고 배팅하고 감당하고 또 어디까지는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고 잇속을 차리는 것인지에 대해 (제 경우에 한정에서), 심지어 어떤 소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도요(?) 끊임없이 겨뤄야 하는 나의 피곤함... 이 극도의 심각한 노동...ㅜㅜ 피곤함... 계속 이렇게 불안해하며 머리 굴리며 살아야 하나, 이 상황 속에서 내가 망가지지 않을 수 있나? 이 속에서도 어떤 자존을 지키고 싶은 그런 자기애가 있긴 하거든요. ㅜ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 자체에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게 되네요. 길게 썼는데... 좀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싶어요... 저의 저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회화는 이다지도 험난합니다. 자신에 관한 진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저를 내줘야한다. 아 피곤하다. 그만하고 싶다. 진실 아닌 삶을 살고 싶다.

단발머리 2022-06-29 19:33   좋아요 1 | URL
쟝쟝님... 사실 나도 여기서 말하는 진실을 다 쫓아가지 못했어요. 책도 반납했고요. 그래서 내가 인용해놓고 내가 두 번 읽었다는... 그러나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본 결과라면...

이 문맥에서의 진실이란 ˝자신에 관한 진실˝을 말하는 것 같고요.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죄에 대한 고백‘을 뜻하는 거 같아요. 자신의 진실, 즉 자신의 비밀, 생각 속의 죄를 영적인 스승 앞에서, 구두 행위로써 밝혀야 만이 자신에 관한 진실(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 그렇게 읽었어요. 그런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자기를 포기하고 희생해야만이 얻을 수 있다, 이렇게요. 쟝님이 나중에 읽고 잘 밝혀주세요^^


두번째 문단은 <가부장제의 창조>의 390쪽을 생각나게 하네요. 여성들에게는 여가 시간이 없었죠.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불신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배웠다. 월경 속에 무슨 지혜가 있을 수 있는가? 모유로 가득 찬 젖가슴 속에 무슨 지식의 원천이 있는가? 일상적인 수유와 청소 속에 추상성을 위한 무슨 재료가 있는가? 가부장적 사고는 그와 같은 성별 정의된 경험들을 비초월적인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역에 소속시켰다.
여성의 지식은 단순한 ‘직관‘(intuition)으로 되었고, 여성들의 이야기는‘수다’(gossip)로 되었다. 여성들은 특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특수한 것들을 다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기능(음식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속에서, 끊임없이 방해받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분산된 주의집중 속에서, 매일 매시간 현실을 경험한다. 그 특수한 것들이 자신의 소매를 당기는동안 사실들을 일반법칙으로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상징을 만들고 세계를 설명하는 그와, 그의 신체적.심리적 욕구와 그의 자녀를 돌보는 그녀 - 그 둘간의 간극은 엄청나다. (390쪽)


우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타령과 극도의 심각한 노동,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의료보장제도 확대, 기본 소득 도입으로 그 무게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근데 가능할까요? 특히 이 정부 내에서?


공쟝쟝 2022-07-01 22:42   좋아요 0 | URL
이 정부 내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이 인민들 내에서도 가능하지 않죠. (모든 인민은 그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우리 아렌트 읽기로 했잖아요? ^^? (아닌가? 긴가? 아닌가?)

특정 당, 정치인, 정치 세력에게 개인의 무력감을 의존하는 형태의 메시아주의적 정치로는 그것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이 무한한 반복을 무한히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사유하고, 또 발언하고, 토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고치고, 그러면서 공동의 세계를 짓는 일(모두가 원하면 연결될 수 있는 기술과 과학이 발전한 시대 아니겠습니까? 못할 것도 없는 데... 정치를 잘못배운 인간들이 스피커를 자처하며 정치를 드럽게 하는 세상인 듯 합니다..구시대의 유물로 꺼져버렷!!) 에서의 연대감을 회복하는 게 앞으로의 전체 인민이 배워야할 정치겠죠.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이 먼저 기본소득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긴하네요.

거다러너가 그런 말을 하잖아요.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과정 그 자체는 방법이며 목적이다.˝ 저는 과정 그 자체가 방법이며 목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페미니즘 정치일지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일개 시민이자 영세자영업자로서 힘 닿는한 친구들과 사유하며 공부하고 토론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ㅋㅋㅋ 요는 저 자신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전체 인민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알라딘 서재의 똑똑이 중년 여성들의 공부 만세!

다락방 2022-06-2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의 역사 리뷰 기다립니다..

단발머리 2022-06-29 14:58   좋아요 0 | URL
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