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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평점 :
나는 내가 평생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박사모’와 같은 레벨로 불리며 살 것을 안다. 충분히 예상한다. 반면에 똑똑하며 사리 분별이 정확한 중도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투표할 것이다. 지난번에는 박원순이, 이번에는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중도의 이러한 ‘현명한’ 결정 때문이다. 나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쪽만을 애정하는 집토끼들의 생각이란 건, 뭐 들어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은 들어볼 필요도 없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그렇다는 걸, 나도 알고 시작한다는 뜻이다.
조국의 시간을 읽었다. 빨리 읽고 싶기도 했고, 읽기 싫기도 해서 천천히 사고, 책이 도착해서도 좀 미루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야 간신히 손에 들었다. 우리나라를 반으로 갈라놓았던 회오리 같던 시간을 돌아보고 다시 돌아본다.
도대체 검찰개혁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세상에, 검찰개혁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나는 큰 죄를 짓기에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 아닌가. 검찰에 불려 가기엔 너무 소심한 사람 아닌가. 검찰개혁이 완수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아니, 검찰을 개혁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김영삼 정부 이후 문민정부이고,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이 시대에, 왜 검찰을 개혁해야 하는가. 왜 검찰이 개혁의 대상인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과 조국의 법무부 장관 취임, 그리고 조국의 법무부 장관 사임의 전 과정에서 보인 검찰의 대대적인 저항은 ‘조국은 안 된다’는 확신에 대한 답이다. 조국이면 절대 안 되는데, 왜냐하면 조국은 평생 ‘검찰개혁’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대중적 지지를 거머쥔 똑똑한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개인사가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이 정도의 압수수색과 이 정도의 전 방위적 신상 털기식 수사라면 어느 한 사람 괜찮을까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모두 다 자신은 조국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검찰개혁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조국은 발기발기 찢어졌고,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운데. <조선일보>는 성매매 기사에 조국과 그의 딸 일러스트를 함께 넣어 패륜적 악행을 일삼고, ‘아, 그래? 미안!’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단군 이래 언론의 최고 먹잇감이었던 조국과 그의 가족은 그렇게 조리돌림 당해도 괜찮은 이유가, 검찰개혁인데. 도대체 검찰개혁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조국과 그의 가족은 검찰과 언론과 야당의 전방위적 공세에 더해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단 말인가.
나는 조국에 대한 검증과 압수수색과 신상털기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임은정 검사는 도를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조국 죽이기’, ‘조국 사냥’이었다고 말한다.
타깃을 향해 신속하게 치고 들어가는 검찰권의 속도와 강도를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찌르니, 죽을 밖에요. 수사가 사냥이 되면, 검사가 사냥꾼과 몰이꾼이 되면, 수사가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더러 보아왔습니다만, 표창장 위조 혐의에조차 사냥꾼들이 저렇게 풀리는 걸 보며 황당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요. (158쪽,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2019년 10월 14일)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의 말도 옮긴다.
재작년 연말에 이미 누적된 ‘조국 기사량’은 100만 건 정도였습니다. 최순실 관련 기사량의 10배나 된 거죠. ‘국정농단’도 아니고 그저 한 가정의 문제임에도 보수, 극우 언론들의 과다한 왜곡, 편파 보도는 거의 ‘테러’ 수준이었습니다. 본인과 특히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그 ‘부담’을 생각하면 절로 ‘동감’을 하게 됩니다. ‘문제에 대한 지적’을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조국 대전’ 국면에서의 ‘융단 폭격식’ 언론 보도들은 인권 침해적 요소들이 대단히 심각했습니다. 이 조리돌림은 한국 언론사의 수치스러운 기억이 될 겁니다.” (180쪽, 박노자 교수 페이스북, 2021년 5월 7일)
『시사인』 고제규 편집장의 말이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을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업무방해, 뇌물수수 등 모두 12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8월 27일 강제 수사에 들어간 지 126일 만에, 100명이 넘는 수사진을 투입한 결과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88일)를 넘어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151일)에 버금가는 기간이고 수사진 규모다. … 수사가 길어질수록 검찰의 목적은 눈에 보였다. 조국 구속. 결과는? 돌팔이 수준의 수사라는 걸 누구보다 검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100여 명이 투입되어 126일을 수사하고, 수사 타깃이었던 조국 전 장관을 구속조차 못 시켰다. 검찰로서도 수치라고 평가할 것이다. (167쪽, 고제규 편집장 페이스북, 2019년 12월 31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이에게 다른 사람이 묻는다. 너는? 너는 어떤데? 나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을 보수보다 진보에 더 엄격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보수는 마음대로 타락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걔네들은 원래 그런 애들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는 뜻인가. 군인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총을 발사하고 국가의 부를 개인적으로 착복해 3대로 이어가는 전직 대통령은 노년에도 마냥 행복하고, 친구에게 후원받은 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던 이는 세상을 등졌다. 매섭게 몰아칠 질타와 위선적이라는 비난과 그리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워서 그래서 세상을 버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사람에게 자격이 필요한가. 물론이다. 지도자에게 그에 맞는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그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비전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언론에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는 조국 국면에서 사람들이 조국에게 완벽을 요구했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으니 안 된다는 것인가. 완벽하지 않으니 죽으라는 말인가. 이 모든 사태는 검찰 때문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자기 생각에’ 부적격하다고 생각한 검찰은 총장부터 말단검사까지 한 몸이 되어 조국과 그의 가족을 죽이려 들었다. 검찰 개혁이 싫어서. 그리고 언론이 한 편이 되었다.
검찰 개혁을 주장하려는 사람은, 그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는, 어처구니없는 중상모략에 시달려야 하고,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를 감당해야 하고, 아버지의 비석이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어야 하고, 이혼했지만 사이좋게 지내는 동생의 개인사가 모두 공개되어야 하고, 자녀의 중2 시절 일기장이 압수당해야 하고, 집에서 나온 쓰레기봉투를 뜯어 그 안을 살피는 기자들에게 아무 말 못 해야 하고, 20대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늦은 밤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깡패 같은 기자들에게 제발 가 달라 부탁해야 하는가. 그것이 온당한 일이었나.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자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완벽해야 하는가.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위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자신의 삶, 가족, 친구와 관련 없는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우리 집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니까, 이 나라의 미친 사교육과 선행 학습은 나와 상관이 없는가. 우리 집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까, 세월호 단원고 아이들을 추모해서는 안 되는가. 우리 부모님들은 건강하고 행복하시니 노인 복지에 대해서는 말하면 안 되는가.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내 새끼들, 내 친구들하고만 행복하게 하하호호 잘 살면 되는가.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나는 검찰에 불려 갈 일은 없을 테니까.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인가.
검찰에 불려갈 주제도 안 되는 나는, 여러 밤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 감히 완벽하지도 않은 인간인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 감히 검찰에 맞서려는 사람은 조국처럼 된다. 그 사람이 우리나라 최고의 형법 전공 법학자여도, 서울대 법대 교수여도.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힌다. 조국처럼 만신창이가 된다. 검찰개혁의 이유와 증거가 바로 조국이다. 조국 전 장관이 그 증거다.
언론이 ‘조국 펀드’라고 대대적으로 떠들던 ‘사모펀드’ 재판건에서 대법원이 정경심 교수의 무죄를 확정했다. 언론에서 다루어 주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게 똑똑한 검사들이 밤낮으로 덤볐는데도 조국을 구속시키지 못 했고, 이제 남은 건 동양대 표창장 하나다. 동양대 표창장 하나가 작은 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동양대 표창장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보다 10배 중요한 일이라고 묻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반으로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 같은 시간 동안 내가 바랬던 건 딱 하나였다. 조국 전 장관이 죽지 않는 것. 검찰의 괴롭힘에 시달려 죽지 않는 것.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는 말을 남기고 죽지 않는 것. 지지 않는 것. 울지 않는 것.
가족 구성원 전체가 ‘도륙’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은 엄청났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의 흠결을 알면서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생환(生還). 그것이면 족했다. (280쪽)
그는 살아남았고, 살아서 이 책을 썼다.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살았다. 그것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