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는 건 아니고. 지은이 이만교가 좀 특별히 기억되는 사람이라, 그의 책을 읽는다.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19쪽)
이만교의 질문은 오랫동안 맴돌았다. 지금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말하는 책들 중에서 『유혹하는 글쓰기』는 좀 다른 포지션을 가진 책이다. 원서로는 『On Writing』이어서 평범한 글쓰기 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한글판은 굳이 도전적인 제목을 달았다. 글쓰기와는 상관이 적어 보이지만 엄청나게 재미있고 한없이 매력적인 책의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추측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끝까지 단 한 권도 읽지 못한 내가 이 책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는 이유도 그와 같다. 이 정도의 특이함, 이 정도의 무모함, 이 정도의 발랄함. 나는 그의 소설을 모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정말 좋아한다.
이와 비슷한 느낌의 글쓰기 책이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창작소』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이렇게 하세요, 혹은 이렇게 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그냥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정면으로 말해 버리는 책. 이만교의 책은 그런 책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펼쳤을 때 나의 관심은 글쓰기의 ‘실전’이 아니라, 글쓰기 공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왜 읽고 싶을까. 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할까. 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쓰는 삶은 쓰지 않는 삶과 무엇이 다를까. 이런 나‘만’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서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서 내게 의미 있는 부분은 <1부 글쓰기 공부를 위하여> 뿐일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벤저민 리벳의 실험에서 시작한다. 벤저민 리벳은 인간이 자신이 움직이기로 결심했다고 느끼기 300-700밀리초 전부터 뇌의 운동피질에서 활동이 나타나는 것을 뇌파검사를 이용해 보여주었다고 한다.(19쪽) 그 다음으로는 개인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의지, 운명, 재능, 노력, 성실 등과 같은 커다란 의미망을 가진 추상적 인성을 지시하는 어휘의 망에서 벗어나, 증세와 체화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절대비법이 공개된다.
아이 둘 다 모두 등교하는 황금주간이라 기대만발이었는데, 기대를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75쪽까지만 읽을 예정이지만, 혹시 모르겠다. 가을에는 예상외로 해가 빨리 지고 생각보다 밤이 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