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재는 자신이 천재임을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80)


 

천재가 분명해보이는 에이드리언 리치는, 에밀리 디킨슨이 자신이 비범한 사람임을, 무의식에 뿌리 박힌 억압에 맞서 창작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을만한 천재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103)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읽으면서 여성주의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한나 아렌트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평범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는데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걸 비교적 늦게 발견했다고, 그는 말한다. 칸트를 14살에 읽는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다른 과정을 겪는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넌 아들 낳으려고 낳았어), 가족 구성원을 위한 노동을 당연시하는 문화(이따 오빠 저녁 차려줘라) 속에서 자란다. 감정노동을 비롯해 가정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을 직장에서도 강요받는 일이 허다하다. 사회, 문화적 언어로 여성을 구속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성 본질주의, 여성을 성애화된 몸으로서 보편화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성적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반면, 남성은 행위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성애화된 사회는 불평등을 성별화한다. 성 본질주의는 불평등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서 억압을 생산해 낸다. 가부장적 지배는 여성들을 서로간에 구분되지 않는 존재로 만들면서, 남성과는 구별되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도록 만든다. (41)

 

 

여성들은 서로간에 구분되지 않는 존재라는 문단에 눈이 간다. 서로간에 구분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본질은여성이라는 점이다. 그가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소녀이든, 기혼 여성이든, 노인이든 상관 없다. 그녀들을판단하는데 제일 중요한 요소가 성별,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은 한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가부장적 지배하에서 여성들은 서로간에 구분되지 않는다.

 

 


부록: 성 착취 반대 협약 제안서 (1994 1월 초안)

 

성폭력과 매춘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성 착취의 형태들이라는 것을 유의하며,

어떤 여성에 대한 성 착취가 모든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것이며, 활동의 자유를 빼앗고, 여성의 안전과 보안을 위협하여, 성적 테러의 조건을 조장하는 것임을 인식하면서, … (398)

 

 

이 땅, 이 나라, 이 세계에서 매일 낮과 밤에 이루어지는 매춘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성 착취를 지구상의 모든 여성에 대한 멸시와 비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 산업화의 실례로 등장할 정도로 매춘이 산업화된 나라(군대를 위한 매춘 시장 : 한국, 166) 에 사는 여성으로서, 이 책을 읽을 때의 참담함은 슬픔과 분노를 넘어선다. 국가의 이름으로, 군대 매춘과 기생 및 관광 매춘이 여성들에게 강요될 때, 여성에게 조국은 없었다. 없다, 지금도. 이 모든 부조리함, 성의 산업화, 여성 매매, 잔혹한 포주 행위를 가능케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이다. 돈의 문제가 아니면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돈만이, 손정우의 승승장구와 조주빈의 당당함과 15만 유료회원을 설명할 수 있다.

 


5여성 매매는 읽기 힘든 장이다.

 

여성 매매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매춘 알선 형태이다. (211)

 

방글라데시 농촌의 가난하고 젊은 여성, 정확히는 소녀들이 파키스탄으로 매매된다. 인도 소녀들보다 더 하얀 피부색을 가진 네팔 소녀들은 인도로 팔려간다. 버마, 중국, 베트남의 소녀들이 타이의 매춘업소로 팔려간다. 가난한 부모가 이들의 매매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정부일을 찾는다. 가부장제가 지배적인 농촌의 가난한 여성들, 전에 한 번도 매춘부로 일한 적이 없는 여성들, 자신의 집(대부분 부모의 집) 밖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여성들, 10대와 20초반의 어린 여성들 상당수가 가정부가 아닌 매춘으로 알선된다(242). 매춘은 이렇게 속임으로 시작해 강간과 구타, 협박과 위협으로 유지되고, 모욕과 절망으로 피해자인 매춘 여성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도록 이끈다. 시장에서 버려지는 순간까지 상품으로서만 존재한다.

 

 


매춘이, 매춘 여성의 선택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지. 길지 않은 인생 살다 보면 가끔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돈을 받고 성 착취의 대상이 되는 일을 스스로하겠다고 나서는 여성이 존재할거라 믿고 있다는 그 말을, 난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랑과 섹스가 항상 함께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섹스를 생각할 때, 인간이자 동물로서 가장 내밀하고 충만한 경험 중의 하나일 게 분명한 섹스를, 돈을 내고 구매하겠다는 그 발상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그 실천을, 그토록 많은 남자들의 업소 출입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섹스를 원하는 여성은 없다. 단연코, 이 세계에 한 명도 없다. 스스로 매춘을 선택한 여성은 없다. 결단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여성이라는 조건은 곧 계급 조건이기 때문에, 성 권력은 여성의 종속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 전지구적인 이슈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매매춘 문제는 투쟁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 P27

매춘은 남성이 산 섹스이다. 강간은 남성이 강취하는 것이다. 매춘에서 남성이 산 섹스는 그들이 강간으로 강취한 섹스와 같은 것이다. 이 섹스는 탈신체화(disembodiment)된 것이며, 남성을 위해,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몸 위에서 일어난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섹스를 할 것인지, 혹은 강제로 아니면 동의를 받고 할 것인지는 남성이 결정한다. - P59

여러가지 지배 관계들 중에서 오직 여성의 종속만이 계급적 관계인 동시에 사적인 관계이며, 성 관계처럼 은밀한 상호 작용들이 동시에 권력의 관계가 된다. 계급으로서의 남성에 의한 계급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성차별주의는 개인적인 관계들을 통해 작용하는 계급 관계이다. 여성 계급의 종속에 대한 여성주의 권력 이론은 개인적 상호 작용,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차원에서 작용하는 신체적, 정서적 관계들에서의 권력을 밝혀내야만 한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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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5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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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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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5 2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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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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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8-26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별표두개 밑줄, 그리고 괄호! 우린 왜 이다지도!!!!! 이 책은 왜 이다지도!!! 아니 어쩌면 나는 너무 맞는 말이고 당연한 건데 왜 그런 글을 만나기 어려웠나... ㅠㅠ ❤️

단발머리 2020-08-26 09:23   좋아요 1 | URL
여성의 역사 자체가 가려져서 그런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미디어에서도 여성의 역사,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 귀기울이지 않으니까요. 먼저 존재했고 먼저 고민했던 선배들이 참 고마운.... 그런 아침입니다. 쟝쟝님, 굿모닝! 💕

2020-08-26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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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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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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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2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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