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의 책 중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책들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들을 읽어보겠다, 도전했던 나. <팬데믹 패닉>은 다르다. 혹 이런 나처럼, 슬라보예 지젝을 읽으려다 실패한 분이 있다면, 지젝은 나랑 안 맞아, 생각했던 분이 있다면, 적어도 ‘이 책은 괜찮습니다’ 소극적으로나마 추천드린다. 지젝을 어려워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이 책은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 공포와 대처 방식에 대해 이미 일정량의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대로 우리는 한 배에 탔다.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고,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과 한국의 독자인 나는 운명 공동체이다.
코로나로 촉발된 뉴노멀 세상에서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코로나 관련 책들은 대부분 경제경영, 구체적으로는 마케팅, 세일즈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카테고리대로 말하면 현대철학, 사회과학, 비평/칼럼, 인문 비평에 속하는 글이라서 혹 ‘현실세계’에서의 구체적인 도움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음도 알려드린다.
우리 모두의 은밀한 소망은, 우리가 내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언제 끝날 것인가, 그저 그것 하나뿐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감염병이 생태주의적 재난의 새로운 단계를 공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77쪽)
점심메뉴의 무게움과 만나기만 하면 인정사정없이 싸워 대는 중딩고딩과의 혈투를 내일로만 미룰 수 없음을 깨달은 건 5월 말. 그 때쯤에야 비로소 알았다. 지젝이 말한 그대로다.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생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가야 할 것이다. 슬프게도. 서둘러.
2.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구립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강좌를 신청했다. 리딩리스트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비대면 강의라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용기가 안 나 신청을 취소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덜컥 단체 카톡방에 초대되었는데, 그 방에 교회 구역식구가 두 명이나 같이 초대된 걸 알게 됐다. 이번에는 단톡방을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덜컥 시작하는 날이 되었고, 설상가상 강의는 일방향 수업이 아니라 실시간 (모니터) 대면 강의라는 걸 알게 됐다. 강의 40분, 쉬는 시간 10분, 토론 60분의 구성 역시 내가 전혀 모르던 바이어서 첫 시간에는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디오도 켜지 않고 수업을 들었다. 두 번째 수업부터는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켜고 비디오를 켰다. 매주 목요일 오전, 2시간이상 수업 참여가 가능한 전업주부들,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쉽지 않은 텍스트를 열심히 읽고 별점을 주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열정적이어서 한 번 더 놀랐다. 감동을 받았다. 알고자 하는, 말하고자 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감동받았다.
이번주의 책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이다. 언론의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성실하고 평범한 한 사람이 어떻게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는지 이 책은 찬찬히 보여준다. 이런 설정은 너무나 흔한 것이어서 정치적으로 읽어야 할 이 책이 오히려 비정치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조국 전 장관과 김경수 도지사에 대한 재판,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채널A 기자의 검언유착 의혹을 통해 확인되듯, 어제도 오늘도 카타리나 블룸은 ‘만들어진다’. 내가 카타리나 블룸이 되지 않는 한, 블룸의 이야기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블룸이 되는 바로 그 순간, 그 때 사람들은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하이에나와 같은 무자비한 언론은 멈추지 않는다. 클릭수를 위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미친 폭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3. midnight sun
트와일라잇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새로 출간된 이 책이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면 대중의 관심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정 정도 성공한 듯 하다. 인간 존재의 심오함이나 부정할 수 없는 교훈, 아름다운 문장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관심이 없을 테지만, 나는 이 시리즈를 읽을 때의 말랑말랑한 감성이 좋아 예약구매를 신청했다. 출간을 알자마자 바로 구입했어야 하는데,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같이 읽을 사람 1인을 확보하고 다음날 아침 교보문고에 들어갔더니 강남점에 6권, 잠실점에 3권이 있지만 인터넷주문은 안 된다는 안내가 뜬다. 그래? 그럼 나 오늘 출동하는 거야? 하면서 <바로드림>을 신청했더니 이번에는 재고부족으로 판매불가라 한다. 결국 10여권이 있었으나 부지런한 독자들에게 모두 판매되었고, 나처럼 게으른 독자는 2차분을 기다려 한다는 말씀. 책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오는지 알라딘도, 그래24도, 교보문고도 모두 8월 26일 출고예정이라 한다. 26일 이라면. 이 여름이 다 지나고 나서야 읽을 수 있겠다. 오늘의 교훈, 사고 싶은 책은 바로바로 사자. 오늘 살 책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4. 한나 아렌트의 말 /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이번주 책을 읽었으니 이제 이달의 책을 읽을 차례다. 준비물 정렬 완료. 책, 커피, 그리고 에이스. 28쪽이라 꼴등이라 한다. 지금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