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마지막 질문입니다, 프라우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독일에서 출판하지 말라고 충고한 사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인식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 같은 문구를 사용했어요. 그런 부정적인 영향이 정확히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요?
아렌트 글쎄요, 유대인 단체들은 괴상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분명해요. 그들은 사람들이 내 주장을 악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반유대주의자들이 “바로 이거야”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비난받을 사람은 유대인들 자신”이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해요. 반유대주의자들이 그러기는 하죠. 하지만 내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그 안에 반유대주의자들이 이용해먹을 건 없어요. … (109쪽)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출간 즉시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 모두에게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그 책이 독일의 국가적 범죄와 독일인들의 잔인함에 대해 면죄부가 될 거라는 유대인들의 호소가 완전히 설득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몬 베유가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에서 그처럼 한나 아렌트를 강하게 비난할 수 밖에 없는 근거는 어찌 되었든 그 책에 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심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자신들을, 자신의 민족을 절멸하는데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했던 독일 정부와 독일인에 대한 증오가 한 쪽 면이라면, 극한의 상황에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결국 살아남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다른 한쪽이다. 잔인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프레모 레비를 제일 괴롭힌 질문,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 질문은 그 자신의 것이었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를 유대인 카테고리 바깥에 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유대인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한 발자국 떨어져서 판단했기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성주의에 대한 그녀의 입장 역시 그렇게 보면 쉽게 이해된다. 비판적 사유를 추구했던 정치 이론가, 사유하는 것에 대해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실제로 모든 사유는 엄격한 법칙, 일반적인 확신 등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기반을 약화시켜요. 사유하다가 일어나는 모든 일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비판적으로 검토할 대상이 돼요. (179쪽)
『한나 아렌트』를 읽을 차례이고,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을 한 번 더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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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망명하던 해의 한나 아렌트, 1933>
다시 말할게요. 중요한 점은 간단히 말해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출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예요. 이웃들이 나를 감시하느냐 하지 않느냐 여부예요. 자유라는 용어는 항상 ‘반대할 자유‘를 의미해요.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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