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은 톨스토이에 대한 부분을 읽고 싶어 대출했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을 통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의 기구한 삶에 대해 읽었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남편의 성적인 욕구에 자신을 맞추었으며, 끊임없이 남편의 원고를 정서하였다. 수차례에 걸쳐 『전쟁과 평화』를 정서하였으며, 일기 또한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그녀는 그 밖에도 꼼꼼히 교정하였으며, 나중에는 편집자로서 맡게 된 작품들의 출판에도 신경을 썼다. 그녀가 하루에 처리하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녀는 다섯 시간 이상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이런 모든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위안을 삼은 것은 톨스토이가 이와 같은 ‘희생’을 할 가치가 있는 천재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늘 혼란에 빠지곤 했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 107쪽)
『제2의 성』에서도 불행하고 히스테릭하고 불만스러운 어머니의 예로 소피아 톨스토이가 등장한다. 그녀는 무용하고 공허한 자신의 삶에 대해 한탄한다. 그녀를 위로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이들의 ‘필요’다. 열두 번 이상이나 출산한 톨스토이 부인은 1905년 1월 25일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도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단지 아기를 돌보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할 뿐이다. 결국은 이것이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슬퍼지고 어제처럼 울고 싶어진다. (『제2의 성』, 686쪽)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중고등학교 독서 이력에서 『부활』은 오랫동안 요지부동,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원탑이었다. 그랬던 톨스토이를 이제는 예전처럼 좋아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톨스토이와 완벽하게 ‘안녕’하기에는 아쉬워 톨스토이 부분을 일부러 찾아 읽는다. <02. 톨스토이 : 파문당한 성인의 꿈>.
<악처와 양처 사이>에서 저자 임헌영은 까다로운 천재이자 천의 얼굴을 가진 톨스토이라는 사나이의 아내 역할이 쉽지 않았을 거라며, 『전쟁과 평화』를 일곱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도록 정서를 해 준 일만 보아도 소냐는 양처의 금메달급이라고 치하한다(91쪽). 쭉 따라 읽다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문단을 만났다.
이런 와중에도 톨스토이의 욕정은 시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새까만 후배 고리키에게 “남자들에게 최대의 비극은 지금이나 앞으로나 바로 침실이란 이름의 비극”이라고 털어놓았겠는가. 그의 노익장은 가히 세계 정상급이었다. … 1910년 82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도 자제할 수 없었던 성욕으로 고민한 그는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52세 때 은퇴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법하다. (97쪽)
나는 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학자로서, 교수로서 저자는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유럽 문학을 탐구했을 것이고, 그 결과물로서 이 책을 출판했을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이 문장.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법하다.
죽을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는 욕정의 화신 톨스토이가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법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희망의 등불이 무엇인가. 무엇이 희망이고 무엇의 등불인가. 어디에서 희망이 보이고, 어느 지점의 어두움을 밝힌다는 뜻인가.
식욕, 명예욕, 지적 욕구와 마찬가지로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일 뿐이다. 이에 대해 비난할 필요도, 비난한 이유도 없다. 하지만, 밥 많이 먹으면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잠 많이 자면 등불이 될 수 있는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82세 죽기 직전까지 성욕이 충만한 사람으로서 톨스토이가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법 하다니. 모든 노인들은 죽기 직전까지 성욕이 충만한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말인가. 그런 면에서 톨스토이가 부럽다는 말인가. 부러운가. 이게. 이게 부러워할 일인가.
톨스토이와의 소박한 화해를 꿈꾸던 나의 작은 소망은 이렇게 내팽개쳐졌다.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된 톨스토이는 작품이 아니라 성욕을 통해 추앙받고 있지 않은가. 희망의 등불, 희망의 등불이라니.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도망치고자 이 책을 펼친 나의 잘못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