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엄마 아빠를 모시고 칠순 기념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엄마가 사진 찍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여행에서 그야말로 엄마의 참모습을 보고야 말았는데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다. 같은 장소, 같은 포즈로 4-5컷이면 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시면서 연신 더 찍어!”를 외치시는 거다. 원도 한도 없이 엄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 갔을 때, 나는 남편이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찍고는 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여럿 있었다. 남편은 사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 스팟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선글라스로 얼굴은 가릴 수 있지만 뱃살은 감출 수 없는 관계로, 대부분의 사진은 뒷모습이었다. 노력 없이 그냥 서 있는데도 나중에는 그 일도 귀찮아서 이제 그만 찍어!’를 외치곤 했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저리 가 보라, 이리 서 보라, 를 세세히도 주문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사진을 갖게 되었고.


 


 







큰애와 싱가포르에 갔을 때는 가면서부터 네 사진은 내가 책임진다고 장담하기는 했는데. , 나의 각오는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으니. 큰애는 엄마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찍어도 그 스팟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시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행 목적이 콘서트 관람이었기에 다른 일정은 그리 많지 않았고, 보통 싱가포르 여행에서 추천한 관광지들은 예전에 남동생이랑 같이 갔던 곳이라 모조리 패쓰했다







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슈퍼트리를 보는 게 좋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뒤로 하고, 인간이 조성한 공원에, 전기의 힘을 빌려 펼쳐지는 쇼에 감탄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여겨졌다. 우리가 열광하는 그 무엇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작품인 그 무엇일까, 하는 생각.

 



 





가기 전부터 다락방님이 카야 토스트를 꼭 먹고 오라 신신당부하셨는데, 세상에그걸 먹으러 갈 시간이 없어 먹지 못했다. 가능하면 카야쨈을 사오고 싶었는데 그것도 실패. 대신 대형 쇼핑몰의 커피숍에서 카야 크로아상을 먹을 수 있어서 아쉬움을 간신히 달래기는 했다.




 


유재석씨가 다녀갔다는 현지 맛집 누들은 새우가 듬쁙 들어가서 그런가 감칠맛이 특별했고, 싱가포르 가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크랩도 맛있었다. 칠리크랩, 시리얼 새우, 볶음밥, 프라이드 번보다 나는, 저 코코넛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그립기는 하다.


 






제일 좋았던 건, 호텔 앞 동네맛집에서 먹었던 아침이다.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먹는 집이었는데, 아주 작은 가게가 내내 북적북적했다. 예쁜 연두색의 판단(Pandan) 팬케이크도 신기했고, Shakshouka Eggs도 맛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환한 미소로 맞아준 젊은 남자 직원. <알라딘>의 알라딘을 닮았는데, 정확히는 알라딘보다 더 잘생겨서 확실히 기억이 난다.

 






가포르 여행 후기 : 카야 토스트를 먹지 못했지만, 알라딘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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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6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지금 배고픈데…. 😿😿😿

단발머리 2024-03-27 08:45   좋아요 2 | URL
큰 기쁨 드리고 싶었는데 큰 실망 드렸나요....

잠자냥 2024-03-26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밉다 미워… 배고파 🙀😹😹😹

단발머리 2024-03-27 08:45   좋아요 2 | URL
앞으로 음식 페이퍼는 꼭! 이 시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자냥님 우는 모습에 기쁨 느끼는 나는 무엇?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27 08:58   좋아요 1 | URL
지금도 배고파요!!!!!🤣🤣😿😿😿
누구처럼 아침에 장칼국수 끓여먹지 않는 사람 올림.

단발머리 2024-03-27 09:00   좋아요 1 | URL
아…. 빈 속이시구나😢😢😢😢😢 이건 놀릴 수가 없네요. 아… 어쩌나…
아침에 장칼국수 끓여먹는 게 역시나 불가능한 사람 올림.

잠자냥 2024-03-27 09:43   좋아요 0 | URL
삶은 달걀 먹었어요...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에 소보루빵을 먹겠읍니다~!!
근데 지금 먹을 수 있다면 저는 저 새우 둥둥 떠 있는 누들이 좀 땡기네요. ㅋㅋㅋ
그림의 떡..아니 그림의 누들.

단발머리 2024-03-27 11:02   좋아요 1 | URL
삶은 달걀 : 건강식, 소보루빵 : 저의 최애빵 ㅋㅋㅋㅋㅋㅋㅋㅋ
새우 둥둥 누들은 진짜 국물도 남김 없이 먹었는대요. 그림의 누들 ㅋㅋㅋㅋㅋㅋ 방문 권합니다.
현금으로만 가능합니다. 싱가포르 거의 다 카드 사용가능한데, 이 집은 현금이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3-27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배고파요 으ㅡㅡㅡ

단발머리 2024-03-27 08:44   좋아요 1 | URL
송구합니다. 참고로 저도 배고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3-27 09:19   좋아요 1 | URL
전 이제 배불러서 편하게 보고 있어요 ㅎㅎ
배불러도 먹고 싶네요. 다 넘나 맛있게 생겼어...

단발머리 2024-03-27 09: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댓글입니다 ㅎㅎ
전 저 중에 딱 하나만 다시 먹을 수 있다면 코코넛 주스 먹고 싶어욬ㅋㅋ 빨대로 마시고 숫가락으로 과육을 살살 긁어서 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27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너무 배고프다는 소리만 한 거 같아서 다시 왔읍니다~!!
단발머리 아닌 단발머리 님! 뒷모습이 아름다우십니다~!!

단발머리 2024-03-27 11:04   좋아요 1 | URL
배고프다는 솔직한 말씀이 제일 반갑습니다. 저는 성공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아닌 단발머리의 뒷모습, 많이 부끄럽네요.
5-6번을 올릴까말까 고민하다 올렸는데, 아.... 잠자냥님의 이 댓글 캡처 결정!!
🤪🤪🤪😝😝😝🥰🥰🥰

그레이스 2024-03-27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 동생이 그래요
찍고 나서도 얼굴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손가락을 벌여 확대하면서 여기저기 이상하다고 다시 찍으라고...^^
스마트 폰을 없애든지 저 손가락을 묶어놓든지 해야지 ㅠ
지쳐서 ˝그게 너야!˝ 했네요.
필름카메라 시절이 더 좋아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24-03-27 11: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가끔 그렇게 사진에 진심인 분들 계시더라구요. 옆사람 쪼금 괴롭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님의 동생분이 그런 분이시군요.
저는 고등학교 때도 필름카메라 찍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럴 기회가 없네요. 삭제와 보존의 핸즈폰!!

다락방 2024-03-28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저도 싱가폴 갔을 때 저 크랩 먹었던 사람으로 그 맛을 아는바, 크랩 먹고 싶네요 ㅋㅋㅋㅋ 그런데 말입니다
판단 팬케익도 맛있을 것 같고 새우 둥둥 누들은 새우를 별로 안좋아하지만 넘나 먹고싶네요? 국물까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야토스트 못드신 건 아쉽지만, 아니 다른 맛난걸 드셔서 보는 제 마음이 흡족합니다.
사진 속의 단발머리 님, 너무 흑흑 좋네요. 이런 페이퍼는 천개쯤 써주셔야 할듯합니다. -아침에 장칼구수를 먹기도 하지만 어제 아침엔 삼겹살 먹었던 사람 올림.

단발머리 2024-03-28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크랩이요, 그리고 새우누들, 그리고 코코넛 쥬스, 그리고 판단 팬케이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에는 또 다른 음식에 도전하고 싶지만, 그 때는 카야 토스트! 놓치지 않을 거에요!!!!!!!!!!!!!!!!
싱가폴 여행 준비하면서 보니까,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이라고 많이 광고하더라구요. 안전도 그렇고, 전 무엇보다 지하철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우리나라랑 넘 비슷하기도 하고요. 담에는 또 다른 곳으로 여행가고 싶습니다. 아직 혼자는 쫄리지만 ㅋㅋㅋㅋㅋ

- 아침에 장칼국수를 먹기도 하지만 어제 아침에 삼겹살 드셨던 다락방님을 좋아하는 단발머리 올림.

다락방 2024-04-03 15:2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아무래도 제가 싱가폴 다시 다녀와야겠어요. 카야토스트 싱가폴에서 먹어봐야겠거든요. 제가 다녀올게요. 필! 승!

단발머리 2024-04-03 15: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죠! 아, 저도 마침 카야토스트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근데 지금은 뭐든지 먹고 싶어요. 뭐든지 먹고 싶은 배고픈 오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