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이르러 몇몇 이탈리아 학자들은 모든 방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골라 그걸 이탈리아어로 삼자고 결정한다. … 지식인 회합이 가장 적절한 이탈리아어라고 결정한 언어는 다름 아닌 플로렌스의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언어였다. (74)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국가의 언어는 대개 대표도시의 언어이다. 오늘날 우리가 프랑스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중세 파리의 방언이고, 포르투갈어는 리스본의 방언, 스페인어는 마드리드의 방언(73)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탈리아어는 특별한 경우다. 개인의 언어가 국가의 언어, 민족의 언어가 되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개인이 군주나 귀족이 아니라, 일개 시인이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평범한 시인도 아니다. 쫓겨난 시인. 국외로 추방되어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시인의 언어, 그게 바로 이탈리아어다. 

















최근에 읽은단테의 신곡』 주요 장면을 위주로 요약본인데다가 산문체여서, 5행마다 압운을 번씩 반복하는 연쇄 압운으로 표현된 플로렌스 방언의 아름다움을 전혀 알아챌 없었다. 물론, 충실한 번역본이어도, 영어로 번역본이어도 그랬을 것이다. <신곡> 진수는 오직 이탈리아어로만 느낄 있을 테다. 




단테가 신의 형상을 직접 마주하는 <신곡> 마지막 줄은 이른바 현대 이탈리아어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있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 단테는 신이 단순히 눈을 멀게 정도의 밝은 빛의 형상이 아니라 무엇보다도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e) ……’이라고 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75) 




현대 이탈리아어에 익숙하지 않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서는 부분이 비교적 전해지는 같다. 마지막 두서너 쪽에는 그림과 시가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있을 있는 일을 

이룰 있는 일을 

구해야 일을 

당신과 함께 


나는 사랑 


나는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오에 겐자부로가 단테의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읽고 싶어서 칠십이 넘는 나이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탈리아를 방문해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 이야기를 하더 그가 신곡의 부분 <지옥편> 일부를 암송했다고 한다. 맥락과 분위기는 전해지지 않아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진행자가당신이 하고 있는 말은 이탈리아어가 아니다라고 했다는데, 발음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 오에 겐자부로가신곡때문에이탈리아어배우기를 시작했다는 . 아름다운 언어를 직접 이해하고 싶어서. 직접 느끼고 싶어서. 







이탈리아어,하면 줌파 라히리를 빼놓을 없다. 그녀에게는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가족, 친척과 함께 있을 사용하는 벵골어와 그녀의 생활에 필수적인, 새어머니 같은 존재인 영어. 영어는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벵골어도 영어도 그녀에게 주어진 언어다. 이탈리아어는 다르다. 이탈리아어는 그녀가 선택한 언어이다.  

 







사람은 사랑에 빠졌을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죽으면 이탈리아어를 새록새록 알아가는 것도 끝나기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았다. 매일 배워야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영원을 꿈꾸나 보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43) 





이탈리아어가 줌파 라히리에게 생존의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언어였다면, 엘리자베스 길버트에게 이탈리아어는 근심과 두통을 날려버리는 섹시함을 가진 언어이다.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너무나 좋았다. 내게는 모든 단어가 지저귀는 참새, 신기한 마술, 송로 버섯과 같았다. 수업이 끝나면 빗속을 찰박거리며 집에 돌아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거품 속에 누워 큰소리로 이탈리아어 사전을 읽었다. 이혼에 대한 근심과 두통을 날려버리기 위해. 심지어 기뻐서 깔깔거리기까지 했다. (43) 





보통의 경우 우리에게 외국어는 영어이며, 대부분 영어이고, 반드시 영어여야 한다. 사실 영어는 외국어라기보다는 중요 과목 중의 하나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직장에서는 점수를 위해 공부한다. 적당한 점수를 얻은 후에는 점수에 걸맞는말하기 능력 얻기 위해 연습하고 훈련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이 즐거움이나 기쁨의 시간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언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두려움과 부끄러움, 낙담과 후회로 변해가는 과정은 너무나 뻔하기는 한데, 그럼에도 극히 개인적인 스토리 또한 존재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외국어에 대한 이런 찐한 사랑 고백을 듣는 일은 언제나 부럽고도 신기한 일이다. 새로운 단어를 발음한다는 , 새로운 언어를 읽는다는 ,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 



섹시하고 매력적인 이탈리아어는 내게 너무나 멀리 있는 언어이고, 올해의 외국어였던 프랑스어와는 이제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남은 외국어는 하나. 오랜 갈망과 구애에도 응답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지 않는, 사랑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한 첫사랑 같은 언어. 실제로 사랑. 언어만 남았다. 애만 남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lobe00 2019-12-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에서 저 이야기 본 것 같아요~ 저는 새해에는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은데 과연..

단발머리 2019-12-27 08:2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책을 생각하기는 했는데 확실하지가 않아서요. 읽는 인간이 맞는군요.
새해에 스페인어 시작하신다고 하니, 외국어 사랑 뿜뿜 이야기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