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생각을 한다.
내가 읽는 『제2의 성』은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1056쪽 한 권 짜리인데,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구입했을 때는 정가가 15,000원. 10% 할인 되서 13,500원에 구입했다. 현재 가격은 10% 할인가 22,320원. 페미니즘 경전을 미리 구입하는 준비된 마음, 무척이나 흐뭇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지. 북플 피드에 올라오는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된 동서문화사의 2017년도 판형인지라, 나는 고이 모셔둔 한 권짜리가 아니라, 두 권짜리 『제2의 성』 1, 2를 자꾸만 쳐다보고 있다.
책을 읽을 때는 커버를 빼내어 고요한 곳에 조용히 보관해둔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시스티나 성당 들어가기 전에 설명을 들을 때, 찍은 사진을 찾아본다. 예수님 건강하시다. 며칠 전 그림만 훑어보았던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의 설명이 기억난다. 예수님은 아폴론을, 성모 마리아는 비너스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근육질 미남이고, 성모 마리아는 포즈에서 풍기는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예수님 오른쪽 아래, 예수님의 제자로서 화형으로 순교한 바돌로매가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바돌로매의 살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많고 많은 사람들과 그만큼 많은 천군, 천사 중 하나가 아니라, 천국과 지옥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살가죽 위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미켈란젤로.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자기 영혼의 위치를 가식 없이 직시할 수 있는 사람. 미켈란젤로는 천재인가 보다.
부끄러움으로 하늘을 가리고 싶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루에 5,000보 걷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5,000보 이상 걸었을 거라 확신이 드는 밤에는 가족들을 모두 모아 놓고 북플 독보적 서비스를 클릭한다. 어제는 5,084보를 걸어서, 『제2의 성』과 함께 3초간 ‘오늘 독보적 미션 완료’의 불꽃놀이를 즐겼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아무튼 『제2의 성』 페이퍼이니까, 한 문단을 옮겨 본다.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를 ‘우리들’이라고 부른다. 흑인들도 그렇게 부른다. 그들은 자기들을 주체로서 확립하고, 부르주아나 백인들을 ‘타자‘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데 추상적인 시위에 머무르는 몇몇 집회는 예외로 하고, 여자들은 ‘우리들’이라고 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여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 말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가리킬 때 쓴다. 그러나 여자들은 진정한 ‘주체‘로서 자신들을 내세우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러시아에서, 흑인들은 아이티에서 혁명을 일으켰으며, 인도차이나 사람들은 인도차이나에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여자들의 운동은 언제나 상징적인 선동행위에 불과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스스로 양보해 주는 것밖에는 얻지 못했다.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주는 것만 받아 왔을 뿐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스스로 양보해 주는 것밖에는 얻지 못했다. 가끔 선심 쓰는 척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양보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남자들이 스스로 양보하지 않았다면,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단 말인가.
18쪽. 그저 주는 것만 받아 왔을 뿐이다. 오 마이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