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파벳 ‘e’는 입모양은 가벼운 ‘위’에 가깝고 소리는 ‘으’에 가깝게 내야 되는 건가 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영어발음도 별로였다. 열정을 주고 받고, 책과 선물을 주고 받고, 넉넉히 5,000보를 완료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도서관에 들려 상호대차한 책을 받아왔다. 서문부터 마음에 든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끼는 책이 있다. 아마도 가슴에 끌어안고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이야기한 책일 것이다. 어쩌면 세상 보는 눈을 영영 바꾸어버린 책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책을 몇 권씩 갖고 있다. 책장 선반에 가지런히 그려 넣으면 이 책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의 신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9쪽)
가슴에 끌어안고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이야기한 책은 『제인 에어』였던 것 같다. 세상 보는 눈을 영영 바꾸어버린 책은 아마도 페미니즘 책이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책은 <성경>이고, 아끼는 책이라면 한참 동안 필립 로스의 책이었지만 요 며칠은 확실히 애트우드의 책이다.
<가보고 싶은 도서관> 중에서는 건축에 대한 심미안이 없는 나이지만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이 근사해 보인다.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에 멕시코의 전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삼우종합건축사무소에서 디자인했다는 세종시 국립중앙도서관은 다른 도서관에 비하면 나름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기회가 된다면 한 번 가보고 싶다.
<소설 속 요리> 부분이 재미있다. 퀴즈처럼 요리들이 등장한 책제목을 맞추는 것인데, 4번 '엄마의 마들렌과 차'와 7번 '버터맥주와 버티부트 젤리', 두 개를 맞췄다. 책 제목을 눈으로 간단히 훑어보니 못 맞춘 게 당연하다. 한 권은 반절, 한 권은 읽지도 않았는데 2개 요리를 맞춘 게 오히려 신기하다.
<페미니즘>에 읽지 못한, 정확히는 제목도 처음 듣는 책이 많아 조금 놀랐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착한 결심을 하기에는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 적잖이 기운이 빠진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참 많다.
나는 베스트셀러에 좀 약한 사람이라 <역대 베스트셀러>도 주의해서 보았다. 10개 중에 7개를 안 읽었다. 나는 베스트셀러에 연연해 하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홍루몽』을 보며 고미숙 선생님을 생각한다.
조국 장관 청문회가 있던 날에는 친정엘 갔다. 엄마가 만두를 만드신다고 해서, 어차피 그 만두들은 우리집으로 오게 될 운명이니 조금이라도 도와야지 혹은 돕는 시늉이라도 해야지,하는 생각에 편한 바지를 준비해 가서는 털썩 편하게 앉았다.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이 다정히 만두를 빚는 그 순간에도 청문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큰애가 좋아하는 야채만두,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맛있는 손만두를 빚는 그 정겨운 시간에도 청문회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청문회 때문인지, 자한당 의원들 때문인지 내 만두는 완전 엉망진창이라 참하고 예쁜 아빠 만두 옆에 두기에 조금 민망했다. 카톡이 왔다. 우리의 조국…
만두 빚던 날, 우리의 조국,을 말하던 친구이자 후배, 제자이자 동생인 R선생과 토요일에는 서초동에 간다. 70군데를 압수수색하고도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안방까지 들어가 11시간 압수수색에 상자 두 개 들고 나온 검찰. 법무부 장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루종일 장관 아들 컴퓨터 포렌식한 검찰. 온 동네를 들쑤셔 놓고, 기자들에게 검찰 마크 찍힌 파란색 박스 들고 나오는 사진 찍으라는 건데, 검찰의 이러한 무리수를 검찰이 모를 리 없다. 대통령이 출국한 후, 조국 장관이 출근한 후 압수수색을 시작한 것이 배려라는 검찰의 변명을 받아써주는 기자들이 있어서 한국 검찰은 참 좋겠다.
아무렴, 나는 윤석열을 응원한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윤석열은, 윤석열 검찰은 자신들의 억지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임은정 부장검사의 말처럼, 오히려 그간의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왜 검찰개혁이 필요한지를 알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법무부 장관도, 그 가족도 검찰에게 찍히면 끝이다. 의혹제기에 언론 흘리기를 계속하면 없던 죄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한국 검찰이다. 오늘은 조국이었지만, 내일은 누가 될지 모른다. 대통령은 5년에 한 번, 국회의원은 4년에 한 번, 심판 받고 선택 받는다. 미쳐 날뛰는 검찰은 누구의 승인도, 누구의 선택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공동체로서의 검찰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최고 권력은 청와대가 아니라 검찰이다. 날씨도 선선하니 적당하다.
작은 촛불을 그 앞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