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작은아이가 중학생이 되다니. 차곡차곡 준비해 두었던 걱정이 본격적으로 발산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걸어서 10분, 집 앞 학교에 설렁설렁 걸어 다니던 큰아이가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출근길을 헤치며 학교에 간다 생각하니, 맘이 짠하다. 작은아이보다 큰아이 걱정이 더 크다.
비정상적인 이 나라의 교육 현실과 미친 대학 입시 제도. 사교육과 과외, 선행과 재수의 종합 선물세트급 비합리와 모순을 비난하고 비판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공부 잘 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이 미친 광란의 질주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같이 달리지 않는 것, 사람들이 많이 몰려다니는 그 쪽으로 가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설사 이 미친 폭주의 레이스가 마지막이라 할지라도 큰아이는, 그리고 작은 아이는 트랙 안쪽에서 잘 달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러하다. 사회에서 말하는 가치, 평가와 다르게 우뚝 설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단단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달려야 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나를 볼 때. 마음 한 가득 슬픔이 차오른다. 나는 그냥 그런 엄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다른 엄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그냥 그런 엄마, 아이들 성적에 연연해 하는 엄마. 그런 속물적인 엄마다. 게다가 스스로를 속물적인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니까, 사실은 더 나쁜 엄마일 수도.
봄바람이 아니라 봄샘추위가 매서운 3월인데, 입학의 계절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3월앓이’는 하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이런 저런 일로 바쁘기도 했고, 이런 저런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리라 다짐하곤 했는데, 실제는 지지부진했고, 책은 간간히 읽었지만 정리는 제대로 못한 채 3월의 절반을 보냈다.
최근에 <6년전, 단발머리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라는 북플 안내가 자주 올라온다. 6년 전이라면 2013년인데, 2013년의 나는 바쁘면서도 즐거운, 그리고 행복한 독서 생활을 영위했던 듯 싶다. 1년, 2년 혹은 6년 후의 내가 다시 볼 수 있도록 일기인 것 같은 이 글에도 책 한 권을 넣어둔다.
6년 뒤의 나여, 보아라! 2019년의 3월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