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1주년을 맞아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꿈꾸며 대통령과 시민이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우리 시대의 책을 ‘열린 지성인’ 26명이 추천했다.<책소개>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각 제언자가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선정해 선정 이유와 책을 매개로 한 ‘국정 조언’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방식이다. 최근까지 몇년 간 이어지는 ‘인문학 열풍’에 강연과 글을 모은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최근에는 일부러 찾아 읽지 않았는데, 팬심은 이렇게도 발동한다.
정희진이 추천한 책은 정찬의 소설집 『완전한 영혼』에 수록된 단편 <얼음의 집>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배출한 최고의 고문 기술자 하야시와 그의 유일한 후계자 재일 한국인의 이야기다.(123쪽) 고문의 사상을 설파함으로써 인간이 권력과 맺는 관계를 치열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그녀의 평이다.
<얼음의 집>은 소유 대상(object)으로서 권력 개념을 폐기하기 위한 사유의 시작을 보여준다. 정찬의 방법론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춘다. 권력의 메커니즘과 ‘합리성’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분석할 때 더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권력의 속성과 지배의 법칙을 연구한다(대학이 그런 곳이다). 피지배자는 저항을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상대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의식화’ 전에는 ‘적’도 자기처럼 ‘착한 줄 안다’. 이 구조가 약자가 당하는 이유이다. (122쪽)
정희진은 권력의 탈환이 아니라 권력의 개념을 바꾸는 것으로 진정한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유에서 책임감으로 권력의 의미를 바꾸려고 할 때, 그녀가 추천한 책 <얼음의 집>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한 ‘고달픈 노동’으로서의 권력, 소명으로서의 권력이 실현 가능할까. 그것이 옳다고 믿지만 그 일이 정말 가능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인간의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싶지만, 그 일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 복잡한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권력의 변신 혹은 권력의 교체는 단 한 번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촛불혁명은 ‘기적에 가까운’이 아니라 ‘기적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현재 <얼음의 집>이 실린 『완전한 영혼』은 절판된 상태다. 절판된 책이어서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미미하나마 내 ‘권력’이 보태져서 이번 기회에 이 소설집이 재출간되기를 소망한다. (118쪽)
그녀의 소망대로 정찬 소설집 『완전한 영혼』은 2018년 5월 재출간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기가 있다. 그 공기가 바로 권력이다 … 권력은 모든 인간의 관심사이자 매일의 실천이다. 삶을 권력 외부에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실 정치’는 권력의 표면 혹은 결과일 뿐이다. 반면 가족이나 이성애 제도는 정치의 최종 심급, 정치의 심연이다. 미시적이고 거시적이며, 구조적이면서 개인적이다. 가장 오래된 정치이며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가장 친밀하고 그래서 가장 폭력적인 관계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사상에서 말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라는 의미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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