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막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니까 벌써 2백만년 전, 아이 친구 엄마들, 언니들 및 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이 아이를 내가 키우는데, 내가 직접 키우는데, 왜 나한테 돈을 안 주는 거냐고(질문), 국가가 나한테 돈을 줘야 한다고(대답), 열변을 토했다. 2백만년 전 내 주장을, 유발 하라리의 글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현재 수십억 명의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이웃이 서로를 보살피고, 시민들은 공동체를 조직하는데 이런 가치 있는 활동들이 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사고를 전환해, 단언컨대 아이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컴퓨터와 로봇이 모든 운전사와 은행원과 변호사를 대체하더라도 일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문제는 누가 새롭게 인정된 일을 평가하고 대가를 지불하느냐는 것이다. 6개월 된 아이가 엄마에게 봉급을 지불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부가 이 일을 떠맡아야 할 것이다. 이 급여가 가족의 기본 필요를 모두 충당할 거라고 가정하면 결국에는 보편기본소득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언가가 될 것이다. (72쪽)
어제 읽은 한겨레 기사도 같은 맥락이다. <자녀 성인될 때까지 아동수당 주는 유럽>. 독일 만18살까지 매달 25만원, 네덜란드 27~38만원. 국가에서 30만원 준다고 아이를 낳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아이를 낳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데 국가에서 30만원 정도만 부담해줘도 작은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모든 일의 종착점은 결국 ‘기본 소득’이 될 거라 생각한다. 72쪽이니까. 조금 더 읽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