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는 몸과 허기에 관한 책이다. 사람들에게 숨겨지지 않는 몸, 숨길 수 없는 몸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어쩌다 록산 게이가 현재의 몸 안에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용기란, 인생이란, 페미니즘이란, 글쓰기의 모범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희진은 썼다. 정확하며 적확하다. 록산 게이는 고통에 맞서는 용기를 가지고 힘들었던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풀어낸다. 진실이 전하는 무게는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녀는 그녀 식대로 풀어간다. 동정이나 공감이나 조언을 바라지 않으면서(57쪽). 그렇게 몸 안에 사는 자신을, 자신의 인생을 보여준다.
나는 이 문단에서 읽기를 잠시 멈췄다. 벌목꾼의 아내,가 나를 사로잡았다.
박사 학위 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다. 작가로서도 조금씩 내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희망이 있다고 느낄 모든 이유가 있었다. 존과 나는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는 내가 이곳에 남아주길 바랐다. 나의 일부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냥 이곳에 눌러앉아 벌목꾼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더 큰 부분은 내가 가는 곳에 그가 따라와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나는 5년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이 이루지 못하는, 특히 흑인 여성이 쉽게 이루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루었다. 나는 우리 러브 스토리의 해피 엔딩을 믿고 싶었다.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가 나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겠다거나 프로포즈를 한다거나 하는 웅장한 제스처를 보여주길 기다렸다. 나도 그런 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134쪽)
박사 학위 과정의 마무리 단계, 작가로서도 조금씩 이름을 알려갈 그 즈음,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계속 함께 하고 싶었다. 그가 프로포즈하기를, 그가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과감한 결정을 해주기 바랬다. 직업적 성취를 목전에 두고 있는 그녀 곁에 있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안녕’이라는 말 없이 담담하게 이별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록산 게이는 자신을 탓했다. 자신의 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내게 반복해서 경고했다. 내 남자 파트너는 내가 자신의 섹시하고 반항적인 후배인 한, 그리고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내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그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정말로 지지를 거둬들였고,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느끼는 등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187쪽)
자신의 파트너가 자신을 추월했을 때, 자신보다 학문적 명성을 더 많이 얻게 되었을 때, 벨 훅스의 남자는 그녀를 떠난다. 벨 훅스에 대한 응원과 격려는 그녀가 자신보다 ‘못 한’ 처지에 있을 때만 주어진다. 자신을 넘어선 여성, 자신보다 능력 있는 여성 옆에는 있어주지 못한다. 응원하지 못 한다. 기나긴 박사과정 내내 학문적 동지였고, 그녀의 성공을 응원했으며, 경제적으로도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했던 남자. 바로 그 남자가 말이다.
『랩 걸』의 호프 자런은 팽나무의 씨를 강화하는 광물질이 오팔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날 밤, 앞으로 과학자로서 살아가게 될 스스로를 인식한다.
But as satisfying as it was, it still stands out as one of the loneliest moments of my life. On some deep level, the realization that I could do good science was accompanies by the knowledge that I had formally and terminally missed my chance to become like any of the women that I had ever known. (91)
물론이다. 호프 자런은 여성일 뿐 아니라, 과학자다. 그녀는 이제 과학자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녀는 자각한다. 이제 나는 보통의 여자들의 삶과는 멀어졌구나, 이제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없겠구나. 호프 자런이 자신과 같은 직업군에 속해 있으면서 크게 성공한 여성을 보지 못 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보아왔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내-어머니-주부’의 규격에 맞춰 살았다는 점이다. 그녀가 확고한 업적을 쌓으면서 동시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빌 덕분이다. 연구 협력자 빌이 연구소에서 그녀의 ‘아내’가 되어 주었기에, ‘아내’의 역할을 감당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고 기억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을 완성한 후 아내에게 보여준다고 했다. 아내가 스토리 혹은 전개 방식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할 때, 처음에는 화도 나고 속상하지만, 나중에는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 작품을 수정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김영하는 <알쓸신잡 시즌 1>에서 아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소설을 쓸 때 아내에게 큰 도움을, 굉장히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내라는 이유로, 아내가 과소평가되어 안타깝다고도 말했다. 스티븐 킹의 아내 테비가 쓰레기통에 처박힌 『캐리』의 원고를 찾아내 스티븐 킹에게 다시 써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나는, 하루키의 아내가, 김영하의 아내가, 스티븐 킹의 아내가 그녀들의 남편과 공동작업을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들의 노력과 수고를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 곁에는 배우자의 성공과 성취를 도와 줄, 혹은 응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록산 게이, 벨 훅스는 그런 남자들을 갖지 못 했다. 직업적 성공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을 때, 꿈꾸던 일,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그 일을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즐거워해줄 사람이 없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야한다는 현실이, 그녀들의 현실이었다.
주인공의 자리에 남자가 위치하고 아내가 그를 보조하고 도와주는 일은 흔하지만, 주인공의 자리에 여자가 위치하고 남편이 그를 보조하고 도와주는 일은, 이렇게나 보기 힘들다. 그 아내가 여왕 쯤이 된다면 모를까.
여왕 정도는 되야 여자도 가운데에 앉을 수 있다.
여왕 정도는 되야 여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여왕이 아니라면.
아, 여왕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