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푸드 한국사 -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외래 음식의 역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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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스키, 아이스크림, 초콜릿, 피자, 커리, 우유, 빵, 차, 향신료, 이 아홉 가지 글로벌 푸드의 한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글로벌 푸드는 처음에는 특정 지역에서만 만들어지고 소비되었지만 사람들의 이동과 교역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지금은 전 세계에서 만들고 먹는 음식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 음식들이 언제 처음 한반도에 들어왔고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얻었는지, 지금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챕터에 한 음식씩, 그 음식의 기원에서부터 그 음식과 관련된 최근의 유행까지 쭉 훑어보는데 역사적 사실들을 가볍고 쉽게 서술하고 있다. 거기에 컬러로 된 사진, 그림 자료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 지루하지 않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하는 K푸드의 미래에 거창한 포부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홉 가지의 글로벌 푸드를 통해 근대 이전부터 현대까지 그 음식과 관련된 세계사와 한국의 생활사를 접할 수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저자가 권하는 방법이다. 독자들도 자신의 글로벌 푸드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과 공동체의 글로벌 푸드 경험사가 많은 이들의 식탁 위에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하니, 나도 나의 글로벌 푸드 경험기를 간단하게나마 써보겠다. 우선 위스키는 입에 대본 적도 없으니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콘 아이스크림이 하나에 500원이었던 시절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콘 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에 달려갔었고, 장미꽃이 새겨진 초콜릿 블랙로즈가 세상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초콜릿인 줄 알았다. 처음 먹어본 피자는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큰맘 먹고 사주셨던 피자였는지, 학교에서 단체로 주문한 피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한국식 카레보다는 철 들고 나서부터 먹게 된 일본식 카레와 인도 커리를 더 좋아하고, 셋 중에선 인도 커리를 제일 좋아한다. 우유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주번이 매일 교실로 들고 오던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 상자와, 학교 한쪽의 우유 창고에서 풍기던 우유 비린내다. 초등학생 때는 설탕이 살짝 입혀진 은방울과 하얀 크림이 든 보름달빵을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 급식을 먹기 귀찮으면 매점에서 파는 옥수수빵으로 저녁을 때우곤 했다. 는 커피를 안 마시는 내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고, 중동에 여행 갔을 때는 향신료를 가리진 않았는데 베트남 음식을 먹을 땐 꼭 고수를 뺀다. 이렇게 각자의 기억에 새겨진 글로벌 푸드를 떠올리며 책을 읽는다면, 책에서 알게 된 역사와 책에는 없는 나만의 역사가 겹쳐 더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두 번째 방법은 내가 생각한 방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 인물이나 역사물 속 캐릭터가 이 책에 실린 아홉 가지 음식 중 어느 음식을 먹어봤고 어느 음식을 못 먹어봤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캐릭터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2년경에 사망했으니 근대가 시작된 이후에 들어온 위스키, 아이스크림, 초콜릿, 피자, 커리, 빵은 당연히 못 먹어봤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온 살균한 대량 생산 우유가 유통되기 이전 한반도에서의 우유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우유는 조선 시대 왕과 왕족들이나 먹을 수 있었으니 못 먹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는 마셔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한반도에 차가 알려진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재위 632년~647년)고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흥덕왕 3년(828년)이라니 살아 있을 당시에는 차도 못 마셔봤을 것이다. 향신료 중에서도 후추는 조선 중기에야 양념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고추는 임진왜란(1592년~1598년)을 전후해서 들어왔으니 두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도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그 인물이 생전에 보냈던 일상을 더 생생하게 떠올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생각보다 늦게 한반도에 들어왔고 한반도에서의 역사가 짧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글로벌 푸드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K푸드에 적용해 만방에 한국을 알리겠다는 결심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음식 하나도 아주 먼 길을 거쳐 우리에게 와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으니,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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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베트남사 처음 읽는 세계사
오민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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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관심 많이 가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남들이 관심 없는 것에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미권보다는 낯선 문화권에 더 끌린다. 이 책도 그런 이유에서 읽었다. 세계사 시간에 중국과 일본, 유럽사는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베트남 역사는 동남아시아를 다루는 짧은 장에서 몇 줄씩 언급됐을 뿐이다. 그나마도 기억을 못 하니 베트남 역사에 대한 내 지식은 전무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낯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했다.


  낯선 역사를 읽는 것의 장점은 읽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책을 읽을 때는 강감찬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고려에 평화가 올 것을 알고, 2차 세계대전 관련 역사책을 읽을 때는 결국 나치 독일이 패망할 것을 안다. 폭군이나 독재자가 측근한테나 힘을 실어주고 멋대로 정치하면 결국 망하는 등, 익숙한 역사의 패턴이 있긴 하지만, 베트남의 역사는 꽤 드라마틱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근대 이전의 왕조사나 근대 이후의 전쟁사나. 남의 나라 역사를 갖고 이렇게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낯선 것만 나오면 지치기 마련이니, 책을 끝까지 읽으려면 낯익은 내용들도 필요하다. 이 책에 나오는 베트남 역사는 낯선데 묘하게 낯익은 데가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세계에서 내부에서는 스스로를 황제국이라 하고 밖에서는 왕국이라 칭한다. 중국을 지배했던 왕조들의 견제와 침략에 대비하면서 그들의 문물과 정치 체계, 특히 유교 사상과 과거 시험, 지방 행정 체제를 받아들여 나라의 기틀을 세운다. 근대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근대 국가로 자리 잡는 것은 쉽지 않고, 결국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다. 철도, 공장, 군사 시설 등이 세워지지만 결국 식민지가 아니라 본국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독립 운동을 하면서도 사상과 이념의 차이 때문에, 독립 운동의 주도권 때문에 분열하고 갈등하다 결국 독립을 맞는다. 여러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 두 나라로 갈라진다. 이 설명만 들으면 한국사를 쭉 설명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근대 이전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에서 독립국으로 살아남고, 근대 이후에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살아남았다는 점, 그리고 유교와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닮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만큼이나, 우리 못지않게 강인하게 역사의 격랑을 헤쳐왔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에게서, 근대 이후에는 서양에게서 문물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을 배우면서 나라의 역량을 키우려고 애썼다. 베트남전쟁 때문에 우리에게는 베트콩이라는 적군 이미지로 굳어진 북베트남 정부와 정부군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국내외의 정세를 살피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그렇기에 수적으로도 열세이고 무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뤘다. 지금은 자본주의를 일부분 받아들여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들도 물론 과오와 실책이 있고 지금도 자신들의 권력 독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밀림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려운 적군으로 굳어졌던 그들의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역사에서 항상 외세의 가해에 맞서는 피해자이자 저항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 책은 짚고 넘어간다. 17세기 이래로 베트남을 캄보디아를 침략하거나 내정 간섭을 하면서 괴롭혔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 시기에는 베트남인들이 중간 관리인으로 고용되었기 때문에 캄보디아인들에게는 베트남인들이 역사 속 악역이었다. 베트남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 내부에서 벌이는 잔악한 행위들을 못 본 척하기도 했다. 세계사 속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도 가해자가 되기도, 방관자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책이지만 저자는 베트남의 이런 다면성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다면성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쓴 입문서이기에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주요 전쟁의 원인과 전개 과정, 그 과정에서 사용됐던 전략과 무기, 결과와 그 영향까지 다루는 등 생각보다 꽤 깊이 들어간다. 특히 베트남전쟁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 베트남전쟁의 개요를 머릿속에 정리하기 좋을 것이다. 연표와 풍부한 사진 자료, 당시의 세력과 전쟁 진행 상황을 표시한 지도들도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트남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쭉 훑어보고 대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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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역사 -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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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은 소비라는 주제로 역사를 살펴보는가

나는 매주 일요일, 매달 말일, 매년 1월 초에 한 주, 한 달, 1년 치 일기를 읽으면서 그 주, 그 달, 그 해를 돌아본다. 그때 함께 보는 것이 가계부다. 가계부를 읽다 보면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거나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을 이루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왜 이 물건을 샀는지 돌아보면 내가 그때 무엇을 필요로 했고, 무엇을 원했는지 당시의 내 상황과 그때의 내 마음까지 알 수 있다.

이런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 전체도 소비를 통해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소비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이고, 그 욕망이 만들어진 심리를 따라가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한 시대에 유행했던 물건들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과 그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이, 어떤 것의 소비(또는 소비 그 자체)를 규제하거나 장려한 사회의 규범이나 법, 정책에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있다. 한 상품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소비자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는 한 국가, 한 사회를 넘어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어떻게 교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비의 역사』는 소비에 담겨 있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살펴보면서, 인간의 소비 행위와 그 내밀한 동기, 소비 행위가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펴보는 책이다. 그렇게 새로운 차원에서 역사를 바라봄으로써, 소비를 진지한 학문적 주제로 끌어올리고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여성과 소비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젠더의 관점으로 소비를 바라보는 부분들이다. 여성의 소비는 남성의 소비와 어떻게 다를까?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소비는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 여성은 소비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저자는 소비야말로 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분야임을 보여준다.


장 베로, <무도회>, 1878. 수수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성들의 모습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19세기 유럽의 사교계 풍경을 그린 명화들을 들여다보자. 그림 속 남성들은 검은색과 하얀색 정장을 입고 있는 반면 여성들은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로 몸을 감싸고 있다. 이미 영국에서는 17세기 말부터, 프랑스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대부분의 남성복은 수수한 스리피스 슈트로 굳어졌지만, 여성복은 화려하면서 유행에 민감했다. 수수한 남성과 화려한 여성. 여성이 남성보다 사치스러워서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일까?

저자는 이런 현상이 남성들이 사치를 여성의 몫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치를 여성의 전유물로 보았던 고정관념과 달리, 근대의 정치 혁명들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남성 왕족, 귀족들이 여성들만큼이나, 아니 여성들보다 더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그러나 정치 혁명이라는 진통을 거치면서 사치는 ‘위대한 남성적 금욕’과 대비되는 ‘여성적인’ 악덕으로 낙인찍혔다. 사치를 사회악으로 치부했지만, 국내 소비에 기대고 있던 당시 유럽의 경제 구조에서는 누군가가 넘쳐나는 물건들을 사줘야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근대 여성들이 남성들의 ‘소비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주체로서 직업이나 사업체를 갖고 스스로 이익을 얻지는 못하고, 남성들 대신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뽐내는 과시적 소비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과시적 소비의 대리인에 머물지 않았다. 18세기 전반부터 영국에서 일어났던 노예 무역 반대 운동에도, 노예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설탕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설탕 불매 운동에도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여성들에게 가정의 수호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은 여성들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정의 수호자로서 도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세상의 권력은 남성들이 쥐고 있어도 여성들은 그들에게 도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퍼져 나갔고, 노예 무역 반대 운동이나 설탕 불매 운동은 여성들이 그런 도덕적 영향력을 세상에 미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은 사치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남성들의 과시적 소비의 대리자 노릇을 하던 여성들이, 소비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체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 생활 속의 인종 차별

이 책이 소비를 통해 들여다보는 또 다른 주제는 인종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단일 민족 국가로 살아왔기에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다민족 국가로 변해가는 요즘, 인종 차별은 우리의 일상에도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광고에서도 무심하게 인종 차별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한 여행사 광고에서 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홍보하는데 튀르키예만 한국인 모델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튀르키예 전통 복장을 입고 홍보한 것이 그 예다. 이것이 왜 인종 차별인지 납득되지 않는다면 역지사지를 해보면 어떨까. 이 책에 실린 아래의 두 그림을 보면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다국적 식품 회사 리비히 사의 트레이드 카드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트레이드 카드는 상품이나 상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인쇄물로, 처음에는 상품이나 상점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가 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상품과는 관련이 없는 다양한 그림들도 함께 넣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은 어느 나라 사람을 그린 것일까? 바로 한국인이다. 위의 그림은 조선의 귀부인을 그린 그림이라는데, 한복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의 국적 불명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한국 여성들은 축제가 있을 때 죽마를 타고 뛰는 경기를 즐기며 우승하는 여성은 상을 받는다’는, 한국인도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의 전통 놀이를 묘사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저자는 서구의 회사들이 트레이드 카드에서 실제보다는 자신들의 스테레오타입에 가깝게 비서구권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명권’과 그 상품이 아직 닿지 않은 ‘비문명권’을 대비해 이질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이 대비는 평등한 대비가 아니라 분명한 위계가 있는 대비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정체성을 지닌 타자를 납작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어 버리고, 내려다보는 일을 우리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부분을 읽으며 되돌아보게 된다.

어제의 소비, 오늘날의 소비

저자는 서양사학자이기에 이 책에서 주로 근대와 현대 서양사 속 소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멀게는 수백 년 전, 가깝게는 수십 년 전 유럽이나 미국에서 일어난 소비의 양상이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중 하나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노동 계급 사람들의 과시적 소비다. 이 시대의 노동 계급 영국인들은 아이들이 집안 사정을 남에게 얘기하지 못하게 했지만, 아주 가끔씩 뽐낼 만한 것(달걀, 채소, 과일 등)을 먹었을 때는 예외였다고 한다. 저자는 그런 빅토리아 시대 노동 계급 아이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들을 떠올린다. 자신이 소비한 것을 드러내는 방법은 다르지만 둘 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해 명예를 획득하는 과시적 소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 계급은 하층민들에게는 과시적 소비가 불필요하다고 보았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노동 계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는지 신경 쓰면서 일요일에는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갔고, 거리에서 바로 보이는 현관문과 창문은 화분이나 광택 나는 돌, 독특한 색깔의 페인트로 예쁘게 꾸몄다. 그러면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남루한 생활 모습은 숨겼다. SNS에 일상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만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같은 결은 아닐까.


노예 노동 설탕 불매 운동의 슬로건이 적힌 설탕 그릇. 1820~1830년경 추정. 영국박물관 소장.

단순히 오늘날의 우리를 닮았다는 점을 넘어서,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의 윤리적 소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제 폐지 운동과 설탕 불매 운동이다. 영국이 노예 무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18세기 전반부터 노예 해방과 노예 무역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설탕은 영국이 노예 무역에서 공급했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생산하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노예 노동을 통해 생산된 설탕의 불매 운동을 벌였다. 윤리적, 도덕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소비 행위의 시초라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명백한 한계점들이 있었다.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설탕은 노예의 피와 땀으로 오염되어 불결한 것이라는 인종 혐오가 깔려 있었고, 대안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동인도제도의 설탕도 사실은 노예 못지않게 열악한 근로 조건 아래서 일하는 인도인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진실은 가려졌다. 오늘날의 윤리적 소비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비윤리적인 요소가 제거되었다는 이유로 그 이면에 놓인 문제들은 은폐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운동은 오늘날의 윤리적 소비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반면교사가 되어줄 역사적 선례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어제의 소비가 오늘날의 소비와 이어지면서 미래의 소비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 설명해 주면 좋았을 것들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들 외에도 저자는 소비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지만, 더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들도 보였다. 우선 아날 학파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칼뱅의 징표교의가 무엇인지 간단하게라도 더 설명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 책은 2017년 1월부터 8개월 동안 네이버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았던 책이라니, 역사학 전공자들보다는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을 것이다. 실제로 책의 전반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아날 학파, 프랑크푸르트 학파, 징표교의를 알지는 않을 것 같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다. 근대 유럽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수집가가 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여성들에게 문화 자본이 더 적었기 때문일까? 여성들이 수집을 하는 데 어떤 것이 걸림돌이 되었는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21장은 ‘쇼핑몰의 이상과 한계’라는 제목이니 쇼핑몰의 한계와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같은 온라인 쇼핑몰을 사용하는 이용객들 사이에 소속감이 생겨난다는 주장의 예시를 한두 가지라도 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온라인 쇼핑몰 홈페이지에 이용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든가, 그 커뮤니티 회원들이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다든가, 아니면 불매 운동 같은 특정한 활동을 함께 했다든가, 하는 실제 사례가 있었던 건지 궁금해진다. 내가 읽은 버전은 이 책의 3판인데 3판을 내면서 좀 더 보완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목표한 바를 달성했을까

저자가 이 책 서문에서 말한 목표는 세 가지였다. 소비를 진지한 학문적 주제로 끌어올리는 것,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내밀한 행위와 동기,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펴보는 것, 이 책이 독자들에게 역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것. 저자는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었을까?

우선 이 책은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였고 25개나 되는 주제를 10~20페이지 정도로 다루기 때문에 각 주제를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대신 대중 독자들에게 소비라는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요소들을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소비사의 흐름과 현황, 전망을 이야기하는 보론을 통해 소비사 연구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보다는 좀 더 난이도가 높지만 대중 독자들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역사 연구자들과 대중 독자 모두에게 소비사가 이런 학문적 주제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보론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소비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니 소비는 이미 진지한 학문적 주제가 된 것 같고, 이 책은 그러한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두 번째 목표는 어떨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 주제를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않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들도 있지만, 이 책에서 펼쳐지는 소비자의 구매 동기와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 이야기는 흥미롭다. 깔끔한 옷차림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데 꼭 필요한 요소였기에 빚을 내서라도 번듯한 옷과 신발을 장만했던 빅토리아 시대 하층민들부터, 은퇴한 후 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나 소비 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현대의 노년층까지, 각기 다양한 배경과 상황에 놓인 개인들이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면 삶의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부분들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세 번째,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일까? 책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 자체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것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다채로운 컬러 사진과 그림 자료들 덕분에 본문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보는 재미도 있다. 명화 속 인물들과 금박 글씨로 화려하게 장식한 표지와 다홍색이라는 하나의 테마 색으로 책 전체를 꾸민 깔끔한 편집 디자인 덕분에 보는 즐거움은 한결 더 커진다.

따라서 이 책은 소기의 목표들을 모두 달성했다고 본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더 자세하고 풍부한 내용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지식을 쌓아가는 재미와 보는 즐거움을 모두 안겨주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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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 현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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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라는 키워드로 본 서구 천 년의 역사

1월은 변화를 생각하기에 좋은 시기다. 매해 1월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 전 해와는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 올 한 해는 어떤 것이 달라지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시기라면, 1999년 12월에서 2000년 1월로 넘어가는 시기는 지난 천 년을 돌아보기에 적합한 때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이언 모티머는 1999년 12월 말, TV 뉴스에서 진행자가 ‘20세기는 다른 어떤 세기보다 변화가 많았던 세기’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의문을 품었다. 20세기에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적 진보가 곧 변화일까? 그러한 현대의 업적이 과거의 모든 업적보다 중요할까? 인류의 삶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변화한 시기는 과연 20세기일까? 이 책은 그런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저자 이언 모티머는 ‘변화’라는 키워드로 중세에 해당하는 1000년부터 현대인 2000년이 되기 직전,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저자는 전 세계의 역사가 아닌 서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그가 말하는 서구는 지리적 단위라기보다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뿌리로 한 문화적 연결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난 천 년 동안의 서구의 발전을 고찰하고 그 결과를 종합하고 분석하는 이유는 하나다. 인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색하는 것. 지난 10세기 동안 인류가 해온 것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천 년 동안의 경험들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거기서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떻게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역사관으로 들여다보는 천 년

다른 역사책들과 같은 시각으로 지난 천 년을 바라본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현대의 업적이 가장 중요한 변화이며 현대 이전의 시대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통념에 반박한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사건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적 진보 때문에 20세기를 인류의 역사 중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세기로 꼽지만,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세기 동안 기술적인 진보가 얼마나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다. 그 세기에 일어난 변화가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필요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었느냐이다.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지기에 각 사람의 필요가 모여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필요가 된다. 각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식량, 물, 공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무기나 법, 정신적인 허기를 채워주는 문화 예술까지 다양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요소인 농업, 의학,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관련된 변화인 사적 폭력의 감소, 법체계의 확립, 자아실현과 관련된 변화인 자의식의 발견, 지식의 확산, 여성의 권리 신장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각 세기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보게 될 역사는 몇몇 역사적 인물들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온 과정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됐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성이 종교로부터 독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변화는 이전의 것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역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17세기에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입증했으며 의학에서도 혁명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그런 발전을 이룩한 학자들조차도 독실한 신앙인이었음을 지적한다. 당시 사람들은 과학과 의학이 신의 섭리를 밝히고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오직 발전을 향해 단방향으로 직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17세기는 과학과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세계를 이성적으로 관찰하게 된 시기였지만, 동시에 수만 명이 마녀사냥으로 죽어간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기존의 세계사 책들에 정리된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이라기보다, 세계사 속에서 인간의 삶이, 그들이 사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저자와 함께 아주 느린 호흡으로 지켜보는 것에 가깝다.

탄탄한 통계적 근거와 체계적인 연구 방법

새로운 시각, 새로운 역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해도,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으면 그저 파격으로 그친다. 그는 자신의 입맛에만 맞거나 얼핏 보기에 매력적인 사료들을 취사선택하지 않는다. 1차 사료들, 선배 역사학자들의 연구 자료들을 교차 검증하고 자료들의 수치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는 오차를 좁히거나 평균 수치를 냄으로써 가장 사실에 가까운 수치를 찾아가려고 한다. 통계 자료와 그래프를 실을 때는 어느 시기, 어떤 사람들을 표본으로 한 것인지, 어떻게 해서 그런 수치가 나온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부록으로 근대 이전의 유럽 인구 추정치를 도출해 낸 과정을 실었을 정도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역사학이 과학이나 사회과학 못지않게 치밀한 사실 검증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임을 보여준다.

또한 서문에서 내세운 포부는 거창했으나 저자의 역량이 부족해 용두사미가 되는 책들도 많다.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지난 천 년 동안의 서양 역사를 살펴볼 것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는데, 체계적인 연구 방법을 통해 차근차근 자신의 논지를 풀어나간다. 인구 증가, 전체 인구 대비 군사 사상자의 비율처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들은 각종 통계 결과들을 바탕으로 분석한다. 각 시기, 각 사회 구성원의 애정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처럼 정량적으로는 평가하기 힘든 요소들은 정성적인 평가 방법을 활용해 분석한다. 그를 토대로 근거가 빈약하거나 논리가 비약하는 부분 없이 결론까지 자신의 주장을 착실히 이끌어 간다.

소수자를 잊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

제1세계의 백인 남성 학자들의 저서를 읽을 때는 서구, 백인, 남성 중심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데, 이 책의 저자 이언 모티머도 유럽 선진국의 백인 남성이다. 그럼에도 그는 남성이 여성에게, 백인이 비백인에게 저지른 차별을 적은 분량이지만 분명히 언급한다. 콜럼버스를 그가 살았던 세기에 변화를 가져온 주요 인물로 꼽으면서도 그가 식민지에 벌인 만행도 서술하고 있다. 자국에서 명군으로 칭송받는 엘리자베스 1세도 노예 무역을 지원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식민지 개척을 통해 원래 살던 고국에서의 종교적, 정치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했지만 정작 아프리카인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유는 빼앗았다는 것, 미국 독립 선언서에 평등의 개념이 담겨 있지만 그 평등을 누릴 대상에서 흑인 노예들은 배제되었다는 것도 지적한다. 여성들이 어떻게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는지, 고등 교육 기관에 진학하고 전문 분야에서 활약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는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여성들이 지식과 전문 기술을 습득하고 전문 분야로 진출하고, 자신의 권리를 쟁취했는지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변화의 주체’로 꼽은 역사적 인물 중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다. 하지만 그는 그 이유가 서구 사회가 근본적으로 성차별적이었기에 현대 이전까지 어떤 여성도 서양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사람들이 주목하길 소망한다. 또한 양육과 보호라는 여성의 특성이 우리를 미래로 이끌기에 적합하다고, 인류에게 희망이 있으려면 21세기 변화의 주체는 여성인 편이 모두에게 더 좋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나는 여성의 특성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는 않지만(저자도 여성의 본성이 변화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겪어온 차별을 직시하고 여성이 앞으로의 역사에서 더 활약하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에는 공감한다. 이렇게 소수자를 잊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 덕분에 이 책을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서정성과 유머 감각, 인류에 대한 애정, 그리고 희망

이 책은 많은 통계 자료와 수치를 근거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딱딱한 숫자들과 사실만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미권 저자들이 쓴 논픽션의 장점은 글 중간중간에 드러나는 서정성과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도 그렇다. 저자는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영국 남서부 어느 작은 도시의 오래된 오두막집 이야기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 오두막집의 옛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저자는 독자들을 천 년 전 영국의 한 시골 마을로 이끈다. “18세기는 특별한 거품이 올라간 톡 쏘는 맛이 나는 세기였다. 인간의 비극이 쌓인 진창 위에 현란한 불꽃놀이의 폭죽 소리와 현악 사중주단의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는 맛이라고나 할까.”(p. 306~307.) 이런 감각적인 서술은 논리적으로 사실을 입증하는 문장보다 더 생생하게 그 세기의 이미지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새긴다. “슬프게도 헤어드라이기가 없는 사람이지만”이라며 자신이 탈모인임을 고백하는 등 슬쩍슬쩍 유머 감각을 보이는 부분은 꽤 두꺼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잠깐이나마 휴식을 준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저자의 인류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다. 온갖 통계와 수치를 토대로 그가 예견한 인류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우리가 갖고 있는 화석 연료는 분명 몇 세기도 되지 않아 고갈될 것이다. 태양력, 풍력 등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중 극히 일부만 이런 에너지원에서 생산되고 있고, 이런 에너지원으로 우리가 사용할 모든 에너지, 그것도 앞으로 분명히 더 증가할 인구가 사용할 에너지를 만들어내려면 갈 길이 멀다. 한정된 토지를 놓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생산할 장소로 만들지 사람이 살 집을 세울지 양자택일을 해야 되고, 제한된 자원을 놓고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새로운 계급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처럼 무절제하게 소비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각자의 필요를 줄인다면,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 꿈꿀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들, 값을 매길 수 없는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한국인 독자인 우리에게 이 책이 갖는 의미

이 책은 분명히 전 세계가 아니라 서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인이 아닌 한국인인 우리에게 이 책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우선 남의 역사도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줄 수 있다. 남의 업적은 귀감으로, 과오는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되니까.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20세기에 서구는 엎질러진 잉크처럼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대부분의 국가는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현대 의학과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인권, 자유, 평등, 민주주의, 자본주의처럼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개념들과 사상들까지 서양에서 왔다. 자의식의 발전, 지식의 확산, 법치주의의 확립, 인권의 보편화 등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변화는 서양인들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예측하는 인류의 미래가 서구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좁은 국토, 점점 고갈되어 가는 자원으로 점점 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해야 하기에, 살아남기 위해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식량, 생필품 그 밖의 물품들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서구의 국가들과 한 배를 탄 운명이다. 저자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제시한 대안은 유일한 정답이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 저자는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여러분이 이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자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에게도 분명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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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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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이동식민이민의 세계사라는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아주 장대한 규모의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수백만 년 전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을 떠났던 선사시대 인류부터 지금의 난민 문제까지 수백만 년의 세월과 전 세계를 이야기하는 데 이야기가 방대하지 않을 리 없다그래서 실제로 이 책을 봤을 때 생각보다 작고 얇아 의외였다.


  이 책은 불과 200여 페이지그것도 손바닥 두 개를 합친 정도의 작은 크기에 수백만 년 동안의 인류의 역사를 이동이라는 키워드로 압축한다.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중 일부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라시아 대륙까지 진출한 것을 인류의 첫 이동으로 간주하고그 이후 세계인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다른 대륙으로 이동이주이민해 활동 영역을 넓혔는지 살펴보고 현재의 난민 문제로 마무리한다그렇기에 적은 페이지 수와 작은 판형 안에 정보량이 의외로 많다.


  유럽강대국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고그동안 주목을 끌지 않았던 세계사의 주체들을 주목하려는 시도도 돋보인다벨기에의 역사학자 앙리 피렌 Henri Pirenne 은 11~12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서서히 지중해에서 물러나면서 북이탈리아 상인들의 동방 무역이 활발해졌던 현상을 상업의 부활이라고 명명했다저자는 피렌이 말한 상업의 부활은 서유럽 내부의 상업 활동이 활발해진 현상일 뿐이고유럽은 당시 이슬람 상업권에 큰 영향을 받았고 그 일부에 불과했다고 말한다신항로 개척 시대에 영국에게 패해서 몰락한 것으로 흔히 생각되는 포르투갈도 그 이후로 전 세계에서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치며 세계사에서 한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에서나 포르투갈인들과의 교역에서나 활발하게 활동했고, 17세기에 전 세계의 설탕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에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업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흑인 노예들과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농장을 운영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사탕수수 재배법을 전파했던 세파르딤 유대인(15세기 말 스페인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이야기한다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사적으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자의로든 강제로든 이주해 역사를 움직였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스케치 정도로 간략하게만 서술하는 것이 아쉽다더 많은 자료를 찾아서 더 깊이 고찰했다면 지금 분량보다 네다섯 배는 많은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단순히 누가 어디로 이동해서 어떤 활동을 펼쳤다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활동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풍습언어를 어떻게 바꾸었는지까지 살펴보면 좋았을 텐데저자는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설탕 얘기만 하더라도 흑인 노예들과 세파르딤 유대인들 덕분에 폭발적으로 생산량이 늘어난 설탕이 어떻게 유럽인들의 식생활과 식습관영양 상태를 바꾸었는지까지 살펴보면 더 이야기가 풍성해지지 않았을까현대인들이 지금 당분을 과잉일 정도로 섭취할 수 있게 된 것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저자는 이 책이 사람의 이동을 통해 장기적인 시야에서 현재의 사회를 세계사로 생각해 보는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실마리만 던지고 있다. ‘이동이라는 키워드로 세계사를 가볍게 훑어보아서 얕고 넓은 지식을 쌓기는 좋지만좀 더 깊게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살펴보기에는 아쉬운 책이다독자들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던지는 것도 좋지만이렇게 세계사를 깊고 넓게 살펴볼 수 있는 키워드로 가볍게 스케치만 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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