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푸드 한국사 -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외래 음식의 역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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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스키, 아이스크림, 초콜릿, 피자, 커리, 우유, 빵, 차, 향신료, 이 아홉 가지 글로벌 푸드의 한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글로벌 푸드는 처음에는 특정 지역에서만 만들어지고 소비되었지만 사람들의 이동과 교역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지금은 전 세계에서 만들고 먹는 음식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 음식들이 언제 처음 한반도에 들어왔고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얻었는지, 지금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챕터에 한 음식씩, 그 음식의 기원에서부터 그 음식과 관련된 최근의 유행까지 쭉 훑어보는데 역사적 사실들을 가볍고 쉽게 서술하고 있다. 거기에 컬러로 된 사진, 그림 자료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 지루하지 않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하는 K푸드의 미래에 거창한 포부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홉 가지의 글로벌 푸드를 통해 근대 이전부터 현대까지 그 음식과 관련된 세계사와 한국의 생활사를 접할 수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저자가 권하는 방법이다. 독자들도 자신의 글로벌 푸드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과 공동체의 글로벌 푸드 경험사가 많은 이들의 식탁 위에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하니, 나도 나의 글로벌 푸드 경험기를 간단하게나마 써보겠다. 우선 위스키는 입에 대본 적도 없으니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콘 아이스크림이 하나에 500원이었던 시절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콘 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에 달려갔었고, 장미꽃이 새겨진 초콜릿 블랙로즈가 세상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초콜릿인 줄 알았다. 처음 먹어본 피자는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큰맘 먹고 사주셨던 피자였는지, 학교에서 단체로 주문한 피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한국식 카레보다는 철 들고 나서부터 먹게 된 일본식 카레와 인도 커리를 더 좋아하고, 셋 중에선 인도 커리를 제일 좋아한다. 우유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주번이 매일 교실로 들고 오던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 상자와, 학교 한쪽의 우유 창고에서 풍기던 우유 비린내다. 초등학생 때는 설탕이 살짝 입혀진 은방울과 하얀 크림이 든 보름달빵을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 급식을 먹기 귀찮으면 매점에서 파는 옥수수빵으로 저녁을 때우곤 했다. 는 커피를 안 마시는 내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고, 중동에 여행 갔을 때는 향신료를 가리진 않았는데 베트남 음식을 먹을 땐 꼭 고수를 뺀다. 이렇게 각자의 기억에 새겨진 글로벌 푸드를 떠올리며 책을 읽는다면, 책에서 알게 된 역사와 책에는 없는 나만의 역사가 겹쳐 더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두 번째 방법은 내가 생각한 방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 인물이나 역사물 속 캐릭터가 이 책에 실린 아홉 가지 음식 중 어느 음식을 먹어봤고 어느 음식을 못 먹어봤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캐릭터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2년경에 사망했으니 근대가 시작된 이후에 들어온 위스키, 아이스크림, 초콜릿, 피자, 커리, 빵은 당연히 못 먹어봤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온 살균한 대량 생산 우유가 유통되기 이전 한반도에서의 우유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우유는 조선 시대 왕과 왕족들이나 먹을 수 있었으니 못 먹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는 마셔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한반도에 차가 알려진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재위 632년~647년)고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흥덕왕 3년(828년)이라니 살아 있을 당시에는 차도 못 마셔봤을 것이다. 향신료 중에서도 후추는 조선 중기에야 양념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고추는 임진왜란(1592년~1598년)을 전후해서 들어왔으니 두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도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그 인물이 생전에 보냈던 일상을 더 생생하게 떠올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생각보다 늦게 한반도에 들어왔고 한반도에서의 역사가 짧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글로벌 푸드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K푸드에 적용해 만방에 한국을 알리겠다는 결심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음식 하나도 아주 먼 길을 거쳐 우리에게 와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으니,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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