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젠더의 관점으로 소비를 바라보는 부분들이다. 여성의 소비는 남성의 소비와 어떻게 다를까?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소비는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 여성은 소비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저자는 소비야말로 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분야임을 보여준다.
장 베로, <무도회>, 1878. 수수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성들의 모습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19세기 유럽의 사교계 풍경을 그린 명화들을 들여다보자. 그림 속 남성들은 검은색과 하얀색 정장을 입고 있는 반면 여성들은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로 몸을 감싸고 있다. 이미 영국에서는 17세기 말부터, 프랑스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대부분의 남성복은 수수한 스리피스 슈트로 굳어졌지만, 여성복은 화려하면서 유행에 민감했다. 수수한 남성과 화려한 여성. 여성이 남성보다 사치스러워서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일까?
저자는 이런 현상이 남성들이 사치를 여성의 몫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치를 여성의 전유물로 보았던 고정관념과 달리, 근대의 정치 혁명들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남성 왕족, 귀족들이 여성들만큼이나, 아니 여성들보다 더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그러나 정치 혁명이라는 진통을 거치면서 사치는 ‘위대한 남성적 금욕’과 대비되는 ‘여성적인’ 악덕으로 낙인찍혔다. 사치를 사회악으로 치부했지만, 국내 소비에 기대고 있던 당시 유럽의 경제 구조에서는 누군가가 넘쳐나는 물건들을 사줘야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근대 여성들이 남성들의 ‘소비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주체로서 직업이나 사업체를 갖고 스스로 이익을 얻지는 못하고, 남성들 대신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뽐내는 과시적 소비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과시적 소비의 대리인에 머물지 않았다. 18세기 전반부터 영국에서 일어났던 노예 무역 반대 운동에도, 노예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설탕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설탕 불매 운동에도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여성들에게 가정의 수호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은 여성들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정의 수호자로서 도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세상의 권력은 남성들이 쥐고 있어도 여성들은 그들에게 도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퍼져 나갔고, 노예 무역 반대 운동이나 설탕 불매 운동은 여성들이 그런 도덕적 영향력을 세상에 미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은 사치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남성들의 과시적 소비의 대리자 노릇을 하던 여성들이, 소비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체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 생활 속의 인종 차별
이 책이 소비를 통해 들여다보는 또 다른 주제는 인종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단일 민족 국가로 살아왔기에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다민족 국가로 변해가는 요즘, 인종 차별은 우리의 일상에도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광고에서도 무심하게 인종 차별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한 여행사 광고에서 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홍보하는데 튀르키예만 한국인 모델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튀르키예 전통 복장을 입고 홍보한 것이 그 예다. 이것이 왜 인종 차별인지 납득되지 않는다면 역지사지를 해보면 어떨까. 이 책에 실린 아래의 두 그림을 보면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다국적 식품 회사 리비히 사의 트레이드 카드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트레이드 카드는 상품이나 상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인쇄물로, 처음에는 상품이나 상점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가 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상품과는 관련이 없는 다양한 그림들도 함께 넣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은 어느 나라 사람을 그린 것일까? 바로 한국인이다. 위의 그림은 조선의 귀부인을 그린 그림이라는데, 한복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의 국적 불명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한국 여성들은 축제가 있을 때 죽마를 타고 뛰는 경기를 즐기며 우승하는 여성은 상을 받는다’는, 한국인도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의 전통 놀이를 묘사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저자는 서구의 회사들이 트레이드 카드에서 실제보다는 자신들의 스테레오타입에 가깝게 비서구권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명권’과 그 상품이 아직 닿지 않은 ‘비문명권’을 대비해 이질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이 대비는 평등한 대비가 아니라 분명한 위계가 있는 대비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정체성을 지닌 타자를 납작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어 버리고, 내려다보는 일을 우리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부분을 읽으며 되돌아보게 된다.
어제의 소비, 오늘날의 소비
저자는 서양사학자이기에 이 책에서 주로 근대와 현대 서양사 속 소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멀게는 수백 년 전, 가깝게는 수십 년 전 유럽이나 미국에서 일어난 소비의 양상이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중 하나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노동 계급 사람들의 과시적 소비다. 이 시대의 노동 계급 영국인들은 아이들이 집안 사정을 남에게 얘기하지 못하게 했지만, 아주 가끔씩 뽐낼 만한 것(달걀, 채소, 과일 등)을 먹었을 때는 예외였다고 한다. 저자는 그런 빅토리아 시대 노동 계급 아이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들을 떠올린다. 자신이 소비한 것을 드러내는 방법은 다르지만 둘 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해 명예를 획득하는 과시적 소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 계급은 하층민들에게는 과시적 소비가 불필요하다고 보았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노동 계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는지 신경 쓰면서 일요일에는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갔고, 거리에서 바로 보이는 현관문과 창문은 화분이나 광택 나는 돌, 독특한 색깔의 페인트로 예쁘게 꾸몄다. 그러면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남루한 생활 모습은 숨겼다. SNS에 일상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만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같은 결은 아닐까.
노예 노동 설탕 불매 운동의 슬로건이 적힌 설탕 그릇. 1820~1830년경 추정. 영국박물관 소장.
단순히 오늘날의 우리를 닮았다는 점을 넘어서,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의 윤리적 소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제 폐지 운동과 설탕 불매 운동이다. 영국이 노예 무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18세기 전반부터 노예 해방과 노예 무역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설탕은 영국이 노예 무역에서 공급했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생산하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노예 노동을 통해 생산된 설탕의 불매 운동을 벌였다. 윤리적, 도덕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소비 행위의 시초라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명백한 한계점들이 있었다.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설탕은 노예의 피와 땀으로 오염되어 불결한 것이라는 인종 혐오가 깔려 있었고, 대안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동인도제도의 설탕도 사실은 노예 못지않게 열악한 근로 조건 아래서 일하는 인도인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진실은 가려졌다. 오늘날의 윤리적 소비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비윤리적인 요소가 제거되었다는 이유로 그 이면에 놓인 문제들은 은폐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운동은 오늘날의 윤리적 소비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반면교사가 되어줄 역사적 선례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어제의 소비가 오늘날의 소비와 이어지면서 미래의 소비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 설명해 주면 좋았을 것들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들 외에도 저자는 소비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지만, 더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들도 보였다. 우선 아날 학파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칼뱅의 징표교의가 무엇인지 간단하게라도 더 설명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 책은 2017년 1월부터 8개월 동안 네이버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았던 책이라니, 역사학 전공자들보다는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을 것이다. 실제로 책의 전반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아날 학파, 프랑크푸르트 학파, 징표교의를 알지는 않을 것 같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다. 근대 유럽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수집가가 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여성들에게 문화 자본이 더 적었기 때문일까? 여성들이 수집을 하는 데 어떤 것이 걸림돌이 되었는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21장은 ‘쇼핑몰의 이상과 한계’라는 제목이니 쇼핑몰의 한계와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같은 온라인 쇼핑몰을 사용하는 이용객들 사이에 소속감이 생겨난다는 주장의 예시를 한두 가지라도 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온라인 쇼핑몰 홈페이지에 이용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든가, 그 커뮤니티 회원들이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다든가, 아니면 불매 운동 같은 특정한 활동을 함께 했다든가, 하는 실제 사례가 있었던 건지 궁금해진다. 내가 읽은 버전은 이 책의 3판인데 3판을 내면서 좀 더 보완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목표한 바를 달성했을까
저자가 이 책 서문에서 말한 목표는 세 가지였다. 소비를 진지한 학문적 주제로 끌어올리는 것,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내밀한 행위와 동기,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펴보는 것, 이 책이 독자들에게 역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것. 저자는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었을까?
우선 이 책은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였고 25개나 되는 주제를 10~20페이지 정도로 다루기 때문에 각 주제를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대신 대중 독자들에게 소비라는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요소들을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소비사의 흐름과 현황, 전망을 이야기하는 보론을 통해 소비사 연구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보다는 좀 더 난이도가 높지만 대중 독자들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역사 연구자들과 대중 독자 모두에게 소비사가 이런 학문적 주제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보론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소비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니 소비는 이미 진지한 학문적 주제가 된 것 같고, 이 책은 그러한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두 번째 목표는 어떨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 주제를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않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들도 있지만, 이 책에서 펼쳐지는 소비자의 구매 동기와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 이야기는 흥미롭다. 깔끔한 옷차림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데 꼭 필요한 요소였기에 빚을 내서라도 번듯한 옷과 신발을 장만했던 빅토리아 시대 하층민들부터, 은퇴한 후 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나 소비 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현대의 노년층까지, 각기 다양한 배경과 상황에 놓인 개인들이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면 삶의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부분들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세 번째,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일까? 책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 자체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것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다채로운 컬러 사진과 그림 자료들 덕분에 본문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보는 재미도 있다. 명화 속 인물들과 금박 글씨로 화려하게 장식한 표지와 다홍색이라는 하나의 테마 색으로 책 전체를 꾸민 깔끔한 편집 디자인 덕분에 보는 즐거움은 한결 더 커진다.
따라서 이 책은 소기의 목표들을 모두 달성했다고 본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더 자세하고 풍부한 내용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지식을 쌓아가는 재미와 보는 즐거움을 모두 안겨주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