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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조선 남자 - 음식으로 널리 이롭게 했던 조선 시대 맛 사냥꾼 이야기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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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먹방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우리 민족만이 먹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SNS에 먹방, 쿡방 영상을 올리고 있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세계 공통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조상들이 음식을 먹고 만들었던 이야기는 흥미롭다. 마냥 엄격, 근엄, 진지할 것 같았던 우리 조상들도 먹는 즐거움 앞에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즐겨먹는 음식이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그런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는 역사책이다. 


  조선시대 남자가 요리를 한다니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궁중 요리는 남자 요리사인 숙수熟手들의 몫이었다. 궁중 밖 민간에서 요리는 여자들이 하는 일이었지만, 음식을 해 줄 아내나 며느리, 딸이 자신보다 일찍 죽었거나 혼자 귀양을 가 있는 신세인 경우에는 남자라도 직접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집권층인 노론 벽파가 천주교도 박해와 함께 남인 등 반대세력을 몰아낸 사건) 때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섬에서 생선밖에 먹을 수 없었던 정약전은 동생 정약용에게 고기가 먹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정약용은 섬에 사는 들개를 잡아먹으라고 하면서 개를 잡는 덫 만드는 방법과 개고리 요리법까지 적어서 보냈다. 그런데 이 개고기 요리법은 박제가가 고안해낸 것이었다. 박제가는 '한 번에 냉면 세 그릇, 만두 백 개를 먹는 먹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다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중시하는 실학자였으니 직접 개고기 요리를 만들 법 했을 것이다.


  박제가의 동료 실학자였던 이덕무는 먹는 것과 식사 예절에 깐깐했지만, 그도 역시 맛있는 것, 특히 단것을 좋아했다. 박제가가 자기가 먹던 단것을 빼앗아 먹었다고 이서구에게 하소연할 정도였다. 이덕무는 자신의 책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카스텔라 레시피를 적어두기까지 했다. 재료는 지금의 카스텔라 재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계란을 거품 내어 공기를 집어넣고 카스텔라의 질감을 폭신폭신하게 한다는 내용이 없으니, 이덕무가 이 레시피대로 만들었다면 카스텔라가 아니라 계란빵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안타까워서 이덕무에게 꿀카스텔라, 녹차카스텔라, 블루베리카스텔라 등등 종류별로 카스텔라를 대접해 주고 싶을 정도다. 이덕무의 학문적 선배인 박지원은 직접 고추장을 쑤어 아들에게 보냈지만, 아들의 답장에 고추장 이야기가 전혀 없자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라고 아들에게 투덜거렸다. 서책만 들여다 봤을 것 같은 선비들이 직접 요리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레시피를 전수하고,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을까 반응을 궁금해 하다니, 귀엽지 않은가.


궁중 음식연구원에서 재현한 '고종 냉면'. 고종은 야식으로 냉면을 즐겨먹었는데, 동치미 국물과 면 위에 편육을 십자 모양으로 가지런히 얹고, 나머지 빈 곳은 배와 잣으로 채웠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먹방하는 조선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먹는 것 자체를 즐겼던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려 말의 유학자 이색은 먹는 것을 좋아해서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감상을 시로 남기기까지 했다. 고려 말 조선 초를 그린 사극들에서 깐깐하고 보수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 이색을 생각해 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학생식당에서 밥 먹은 횟수를 출석 횟수로 쳤기 때문에 억지로 맛없는 성균관 급식을 먹어야 했던 유생들은, 복날 특식으로 나오는 개장국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신분을 가리지 않고 냉면을 끼니나 간식으로 즐겨먹었다. 검소한 태도를 중시했던 성리학도, 지금처럼 냉장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상황도 먹는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책에 실린 조선시대 음식들의 일러스트


참외를 즐겨먹었던 조선 사람들을 그린 책 속 일러스트. 하정우가 영화 <황해>에서 김 먹방하는 장면을 패러디했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의 요리법들도 함께 실려 있다.『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요록要錄』, 『수문사설謏聞事說』등의 조선시대 요리책에서 찾은 요리법들이다.(이 요리책들의 목록은 본문 뒤에 부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지금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어 흥미롭다. 조선시대에도 백숙을 만들었지만, 냄비 대신 항아리에 넣고 항아리 주둥이를 종이로 막고 쪘다. 그리고 찹쌀과 마늘이 들어가는 지금의 삼계탕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찹쌀을 닭고기와 먹으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고 마늘도 닭 요리에 넣지 않았다. 흔히 일본 음식으로 여겨지는 회도 고려 때부터 즐겨먹었는데, 무채 위에 굵게 썬 회를 놓는 지금과 달리 회를 가늘게 썰어 무채와 섞어 먹었다고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지금의 요리법과 비교해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요리법과 함께 조선시대 음식들을 그린 일러스트, 음식과 관련된 풍속화, 풍속화를 패러디해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삽화까지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출판사에서 공을 들여 책을 만든 것이 보인다. 


 작가 자신도 책을 즐겁게 썼다고 한다. 수백 년 전의 요리들과 그것을 즐긴 사람들의 이

야기를 찾는 일이 신기하면서도 이채롭고 즐거웠다는 것이다. 독자들 또한 작가가 찾아

낸 조선시대의 음식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책에 나온 음식이나 그 음식에서 

유래한 음식을 먹을 때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현재 속에 남아 

있는 조선과 조선 사람들의 삶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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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의 시대 - 요리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레이철 로던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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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식의 시대』라는 제목만 보면 사람들의 탐식 때문에 지구의 많은 동물들이 대량학살당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책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원제인『요리와 제국-세계사에서의 요리(Cuisune and Empire: Cooking in World History)』 그대로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요리의 세계사를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전 시대와 전 세계의 음식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내용이 꽤 방대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음식의 평등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이다. 


  이 책은 고대 세계에서 요리와 식사를 지배하는 규칙은 세계의 질서에 따라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군주는 인간 세상의 위계질서의 정점이자 우주의 축으로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먹었다.고귀한 신분은 고급 요리를 먹고 미천한 신분은 하급 요리를 먹는 음식의 구별은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19세기 초인 1806년에도 "가난이 없이는 노동도 없고, 노동 없이는 부도, 세련된 문화도, 안락함도,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혜택도 없다."면서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해 세계 각지의 각종 식재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식품 가공, 냉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음식의 평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근대 이전에 가난한 농민들은 멀건 죽 같은 하급 요리로 간신히 연명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부드러운 곡물 음식(흰 빵이나 흰 쌀밥), 고기, 유제품, 달콤한 과자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급 요리만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기름지고 부드러운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중급 요리가 널리 보급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하급 요리로 연명해야 했던 전근대와 비교하면 음식의 평등이 실현되었다고 할 만하다.


  저자는 현대의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권력자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제한하는 세계로 역행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옛날 음식들이 현대의 음식들보다 순수하고 전통적이었다는 낭만적인 환상을 깨뜨리려고 한다. '국민 요리'로 생각되는 음식들은 사실 20세기 중반 강대국들에서 여러 나라들이 독립할 때, 각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두고도 다른 두 나라가 서로 자국의 국민 요리라고 다투기도 한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 것 같은 음식들도 관광객들을 끌기 위해 더 고급스러운 재료를 쓰는 등의 개량 과정을 거쳤다. 현대인의 조상들 대다수가 먹었던 '순수하고 전통적인 음식'은 사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먹는 하급 요리였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음식의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방대한 내용이 나열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읽기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만큼 음식의 역사를 폭넓게 바라보는 책도 드물 것이다. 저자가 서양인이니만큼 서양의 음식사에 더 치중되어 있고, 동양인들의 주식으로서 음식 문화에서 큰 영향을 미친 밥에 대한 내용이 의외로 적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통해 세상이 평등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오랜 전통을 지닌 국민 음식'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는 시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치사, 경제사보다 일상적인 것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 영미권 저자가 쓴 책이라 중국 저자의 이름은 중국어 발음대로, 책은 영문 번역으로 나왔을 텐데도 고대 중국인의 이름, 중국 서적의 이름의 한자를 찾은 수고는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pseudo'(-의 작품이라고 전해졌지만 사실은 아닌 것으로 밝혀진)를 '프세우도'로 번역하고, 세계 인구를 600억이라고 번역한 것은 너무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거나 기본 상식을 떠올렸더라도 이런 오역은 없었을 것이다. 나머지 부분의 번역은 무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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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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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기독교 신자 분에게 기독교의 여호와와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신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그랬더니 그분은 화를 내며 저를 이단 취급 하시더군요그리고 제가 사는 지역에 이슬람 사원이 들어온다고 하자지역 교회들이 연합해서 이슬람의 포교 음모에 맞서는’ 릴레이 기도회를 열기도 했습니다이렇게 당장 주위만 둘러봐도 기독교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적대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더 넓게 살펴보면 세계 곳곳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이슬람교가 서로 갈등하면서 유혈사태를 빚어내기까지 합니다이런 현실 속에서 세 종교의 역사를 총 정리한 책 세 종교 이야기는 세 종교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줍니다서로에 대한 이해는 갈등을 푸는 첫 걸음이니까요.


  저자는 세 종교 중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거나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저자는 세 종교 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 종교의 역사와 기본 교리를 설명한 뒤세 종교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졌는지세 종교가 어떻게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폭넓게 살펴보고 있습니다고대의 수메르 문명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현대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까지 저자는 다양한 시간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세 종교의 역사를 풀어나갑니다덕분에 독자들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세 종교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그리고 세 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교리들과 세 종교의 역사 속 결정적인 순간들을 정리해서세 종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쌓을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저자가 쉽고 간결한 문체로 설명하는 덕분에다소 많은 분량임에도 술술 읽히고 쉽게 이해됩니다.


  하지만 세 종교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분석을 기대하신 분들은 아쉬울 수 있습니다세 종교의 역사와 교리갈등을 400여 페이지의 책 한 권에 담아내다 보니 아주 깊이 있게 분석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사실 각 꼭지의 주제들이 자세히 풀어내면 단행본 한 권심지어 여러 권 분량이 될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주제들이니까요그리고 고대의 블레셋 사람들과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혈연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대의 블레셋 사람들의 후손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아랍인들입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카타콤은 주로 지하묘지로 사용되고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카타콤이 비밀 예배당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하는 등의 오류들도 눈에 보입니다그리고 저자가 유대인 전문가이다 보니 세 종교의 분량이 서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기보다는유대교 쪽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종교 이야기는 세 종교에 대한 심화분석이라기보다는 세 종교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쌓는 입문서의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참고문헌들도 각주와 부록으로 정리되어 있어독자들이 각각의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더 깊이 있게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세 종교 중 한 종교의 신자이든셋 중 어느 종교의 신자도 아닌 사람이든이 책을 읽으면서 세 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것이 세 종교 사이의 화해와 상호존중을 이루는 데 첫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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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파시즘 -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박광순 옮김 / 교양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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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뜻을 따른다는 명분으로 종교가 폭력을 부추길 때가 있다기독교의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이슬람교의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테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그런데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인 불교마저도 부처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폭력을 부추긴 적이 있었다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에 영합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부추겼던 일본 선불교의 어두운 역사를 폭로한다.


자비를 강조하고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와 살생을 할 수밖에 없는 군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는 중세시대에 일본의 무사와 병사들이 선불교의 금욕적이고 극기심을 키우는 수행 방법이 의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선불교를 가까이 하면서 둘이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군국주의가 일본을 지배하기 이전인 17세기에 이미 선사 다쿠안 소호가 "치켜든 칼에도칼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의지는 없고 텅 비어 있다"선불교의 교리를 교묘히 이용해 무사들의 살생을 정당화했었다.


저자는 이어서 일본 선불교가 세계대전 기간 동안 어떻게 일본 군국주의에 영합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해 왔는지를 낱낱이 폭로한다. 자원입대해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적군들을 죽인 제자와, "부처님께서 사회의 화합을 깨뜨리는 자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며 제자의 입대를 말리기는커녕 격려한 스승 선사도 있었다세계대전 당시 선불교의 지도자들은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불교의 교리를 천황과 국가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아를 버릴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해일본의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전쟁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갔다. 교리를 교묘하게 해석하며 살생과 폭력을 정당화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선사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치를 떨리게 한다.


후기에서 저자는 뒤늦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본 선불교 지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것이 선불교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첫 단계라고 말한다일본 선불교 승려로서 일본 선불교의 지도자들의 과오들을 폭로하고 고쳐나가길 바라는 저자의 용기와 객관성은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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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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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 1398년 1차 왕자의 난, 1400년 2차 왕자의 난이 이어지는 등 우리의 15세기는 시작부터 파란만장했다. 피바람을 몰고 온 태종의 왕권 강화 작업 뒤에 온 세종의 치세는 평안했지만, 세종이 승하한 지 불과 3년 뒤인 1453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 김종서, 안평대군 등 정적들을 몰아내고 실권을 잡는다.  한편으로 15세기는 수백 년 뒤인 현대의 한국인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글이 만들어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했으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잡혀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책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복잡하고도 역동적인 시대였던 우리의 15세기를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본다. 또, 세계사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우리의 15세기를 살펴보고 있다.

  '용의 눈물', '왕과 비', '뿌리 깊은 나무' 등 그 동안 보아 왔던 조선시대 사극 덕분에 조선 초기 정치사의 대강의 흐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인과관계, 세부적인 사실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이전의 통설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태도로 사료를 꼼꼼히 검토하려는 필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훈구와 사림은 서로 대립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 책은 그런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 중에서도 『양문양공 외예보(梁文襄公外裔譜)』라는 족보를 통해 훈구와 사림이 서로 적대적인 정치 세력이었는지를 검토해 보는 내용이 인상 깊다. 이 족보는 세조 때의 대신 문양공 양성지의 외손 계열 후손들만을 모아 놓은 독특한 족보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거쳐 간 관원 중 30명이나 양성지의 외손 계열 후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실린 30명 중에는 세도정치의 발원으로 평가되는 김조순도 들어 있다. 중앙의 대지주 출신인 훈구파와 지방의 중소지주 출신인 사림파가 정치적 갈등을 벌인 끝에, 사림파가 훈구파를 몰아내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통설이다.  

  하지만 외예보』에 실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인물들, 사림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은 훈구파의 주요 인물인 양성지의 외손들이었다. 기존의 통설에서는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여겨졌던 사림파였지만, 실제로는 사림파 중에서 새로 등장한 가문 출신은 드물었고, 대부분 기존의 주요한 가문 출신이었다고 이 책은 밝힌다. 성종 대 중앙 정치의 새로운 한 축으로 등장했던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통틀어 일컫는 말. 국왕에게 간언하고 모든 관리들을 감찰하는 역할을 했다.)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대신들과 달리 이상과 원칙에 입각한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하지만 이런 상반된 태도는 훈구와 사림의 대립 때문이라기보다는 각자가 맡은 임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또 성종 대 삼사 출신으로서 주요 관직에 오른 대신들의 수가 많았다는 사실을 통해, 삼사에 근무할 때 탄핵과 간쟁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인물이 대신으로 승진한 후에는 관직에 맞는 현실적인 태도를 나타낼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조선의 지배 세력 풀은 우리의 통념보다도 훨씬 더 폐쇄적이고 한정적이었던 것이다. 꼼꼼한 사료 검토를 통해 도출한 결론은 조선 초기 정치사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사극 '뿌리 깊은 나무' 속 세종(한석규)의 모습. 그는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은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이 평온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국방과 농업, 천문, 예악 등 15세기 조선의 다양한 측면들을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세종이 그 다양한 측면 모두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일을 동시에, 그것도 각각 십여 년이 넘도록 준비하고 수행했다. 그런데 그 모든 분야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속에서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은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은 평온한 것이다."라며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 세종의 모습이 현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세종이 고집했던 한글 표기 방식(받침이 어떻게 발음되든 상관없이 항상 고정된 형태로 표기할 것, 체언이나 용언 어간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나 어미가 붙을 때 어간의 받침으로 고정해 적을 것(예) 숲이( O), 수피(X))이 세종대 당시에는 적용되지 못했지만 현대의 한글 맞춤법의 원칙이 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기서 세종의 혜안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최부의 표류 여정


  이 책은 15세기 조선 내부의 역사도 충실하게 전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더 눈을 넓혀 15세기 세계사도 함께 살펴 보고 있다. 이슬람과 유럽 세계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뻗어가고 있을 때, 거대 제국 원의 부마국으로서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던 고려는 조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와는 무관하게 농업과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안정된 국가 체계를 세워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표류라는 뜻밖의 어려움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 책은 제주도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류당해 중국 남부까지 견문하게 된 표류민 최부의 경험을 8페이지에 걸친 부록으로 전하고 있다. 지도와 사진 자료, 도표가 각자의 자리에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그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8세기 왕의 귀환'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민음 한국사' 시리즈였는데 이 책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때 국사 공부를, 그리고 학부 때 전공 공부를 이 책과 함께 했다면 더 쉽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학부 전공이 역사였는데도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민음 한국사' 시리즈 나머지 책들도 읽으면서 한국사 통사를 머릿속에 정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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