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역사책들과 같은 시각으로 지난 천 년을 바라본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현대의 업적이 가장 중요한 변화이며 현대 이전의 시대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통념에 반박한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사건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적 진보 때문에 20세기를 인류의 역사 중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세기로 꼽지만,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세기 동안 기술적인 진보가 얼마나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다. 그 세기에 일어난 변화가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필요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었느냐이다.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지기에 각 사람의 필요가 모여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필요가 된다. 각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식량, 물, 공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무기나 법, 정신적인 허기를 채워주는 문화 예술까지 다양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요소인 농업, 의학,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관련된 변화인 사적 폭력의 감소, 법체계의 확립, 자아실현과 관련된 변화인 자의식의 발견, 지식의 확산, 여성의 권리 신장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각 세기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보게 될 역사는 몇몇 역사적 인물들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온 과정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됐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성이 종교로부터 독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변화는 이전의 것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역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17세기에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입증했으며 의학에서도 혁명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그런 발전을 이룩한 학자들조차도 독실한 신앙인이었음을 지적한다. 당시 사람들은 과학과 의학이 신의 섭리를 밝히고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오직 발전을 향해 단방향으로 직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17세기는 과학과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세계를 이성적으로 관찰하게 된 시기였지만, 동시에 수만 명이 마녀사냥으로 죽어간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기존의 세계사 책들에 정리된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이라기보다, 세계사 속에서 인간의 삶이, 그들이 사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저자와 함께 아주 느린 호흡으로 지켜보는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