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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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이동식민이민의 세계사라는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아주 장대한 규모의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수백만 년 전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을 떠났던 선사시대 인류부터 지금의 난민 문제까지 수백만 년의 세월과 전 세계를 이야기하는 데 이야기가 방대하지 않을 리 없다그래서 실제로 이 책을 봤을 때 생각보다 작고 얇아 의외였다.


  이 책은 불과 200여 페이지그것도 손바닥 두 개를 합친 정도의 작은 크기에 수백만 년 동안의 인류의 역사를 이동이라는 키워드로 압축한다.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중 일부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라시아 대륙까지 진출한 것을 인류의 첫 이동으로 간주하고그 이후 세계인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다른 대륙으로 이동이주이민해 활동 영역을 넓혔는지 살펴보고 현재의 난민 문제로 마무리한다그렇기에 적은 페이지 수와 작은 판형 안에 정보량이 의외로 많다.


  유럽강대국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고그동안 주목을 끌지 않았던 세계사의 주체들을 주목하려는 시도도 돋보인다벨기에의 역사학자 앙리 피렌 Henri Pirenne 은 11~12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서서히 지중해에서 물러나면서 북이탈리아 상인들의 동방 무역이 활발해졌던 현상을 상업의 부활이라고 명명했다저자는 피렌이 말한 상업의 부활은 서유럽 내부의 상업 활동이 활발해진 현상일 뿐이고유럽은 당시 이슬람 상업권에 큰 영향을 받았고 그 일부에 불과했다고 말한다신항로 개척 시대에 영국에게 패해서 몰락한 것으로 흔히 생각되는 포르투갈도 그 이후로 전 세계에서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치며 세계사에서 한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에서나 포르투갈인들과의 교역에서나 활발하게 활동했고, 17세기에 전 세계의 설탕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에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업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흑인 노예들과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농장을 운영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사탕수수 재배법을 전파했던 세파르딤 유대인(15세기 말 스페인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이야기한다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사적으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자의로든 강제로든 이주해 역사를 움직였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스케치 정도로 간략하게만 서술하는 것이 아쉽다더 많은 자료를 찾아서 더 깊이 고찰했다면 지금 분량보다 네다섯 배는 많은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단순히 누가 어디로 이동해서 어떤 활동을 펼쳤다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활동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풍습언어를 어떻게 바꾸었는지까지 살펴보면 좋았을 텐데저자는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설탕 얘기만 하더라도 흑인 노예들과 세파르딤 유대인들 덕분에 폭발적으로 생산량이 늘어난 설탕이 어떻게 유럽인들의 식생활과 식습관영양 상태를 바꾸었는지까지 살펴보면 더 이야기가 풍성해지지 않았을까현대인들이 지금 당분을 과잉일 정도로 섭취할 수 있게 된 것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저자는 이 책이 사람의 이동을 통해 장기적인 시야에서 현재의 사회를 세계사로 생각해 보는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실마리만 던지고 있다. ‘이동이라는 키워드로 세계사를 가볍게 훑어보아서 얕고 넓은 지식을 쌓기는 좋지만좀 더 깊게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살펴보기에는 아쉬운 책이다독자들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던지는 것도 좋지만이렇게 세계사를 깊고 넓게 살펴볼 수 있는 키워드로 가볍게 스케치만 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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