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베트남사 처음 읽는 세계사
오민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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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관심 많이 가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남들이 관심 없는 것에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미권보다는 낯선 문화권에 더 끌린다. 이 책도 그런 이유에서 읽었다. 세계사 시간에 중국과 일본, 유럽사는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베트남 역사는 동남아시아를 다루는 짧은 장에서 몇 줄씩 언급됐을 뿐이다. 그나마도 기억을 못 하니 베트남 역사에 대한 내 지식은 전무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낯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했다.


  낯선 역사를 읽는 것의 장점은 읽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책을 읽을 때는 강감찬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고려에 평화가 올 것을 알고, 2차 세계대전 관련 역사책을 읽을 때는 결국 나치 독일이 패망할 것을 안다. 폭군이나 독재자가 측근한테나 힘을 실어주고 멋대로 정치하면 결국 망하는 등, 익숙한 역사의 패턴이 있긴 하지만, 베트남의 역사는 꽤 드라마틱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근대 이전의 왕조사나 근대 이후의 전쟁사나. 남의 나라 역사를 갖고 이렇게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낯선 것만 나오면 지치기 마련이니, 책을 끝까지 읽으려면 낯익은 내용들도 필요하다. 이 책에 나오는 베트남 역사는 낯선데 묘하게 낯익은 데가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세계에서 내부에서는 스스로를 황제국이라 하고 밖에서는 왕국이라 칭한다. 중국을 지배했던 왕조들의 견제와 침략에 대비하면서 그들의 문물과 정치 체계, 특히 유교 사상과 과거 시험, 지방 행정 체제를 받아들여 나라의 기틀을 세운다. 근대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근대 국가로 자리 잡는 것은 쉽지 않고, 결국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다. 철도, 공장, 군사 시설 등이 세워지지만 결국 식민지가 아니라 본국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독립 운동을 하면서도 사상과 이념의 차이 때문에, 독립 운동의 주도권 때문에 분열하고 갈등하다 결국 독립을 맞는다. 여러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 두 나라로 갈라진다. 이 설명만 들으면 한국사를 쭉 설명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근대 이전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에서 독립국으로 살아남고, 근대 이후에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살아남았다는 점, 그리고 유교와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닮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만큼이나, 우리 못지않게 강인하게 역사의 격랑을 헤쳐왔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에게서, 근대 이후에는 서양에게서 문물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을 배우면서 나라의 역량을 키우려고 애썼다. 베트남전쟁 때문에 우리에게는 베트콩이라는 적군 이미지로 굳어진 북베트남 정부와 정부군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국내외의 정세를 살피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그렇기에 수적으로도 열세이고 무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뤘다. 지금은 자본주의를 일부분 받아들여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들도 물론 과오와 실책이 있고 지금도 자신들의 권력 독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밀림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려운 적군으로 굳어졌던 그들의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역사에서 항상 외세의 가해에 맞서는 피해자이자 저항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 책은 짚고 넘어간다. 17세기 이래로 베트남을 캄보디아를 침략하거나 내정 간섭을 하면서 괴롭혔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 시기에는 베트남인들이 중간 관리인으로 고용되었기 때문에 캄보디아인들에게는 베트남인들이 역사 속 악역이었다. 베트남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 내부에서 벌이는 잔악한 행위들을 못 본 척하기도 했다. 세계사 속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도 가해자가 되기도, 방관자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책이지만 저자는 베트남의 이런 다면성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다면성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쓴 입문서이기에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주요 전쟁의 원인과 전개 과정, 그 과정에서 사용됐던 전략과 무기, 결과와 그 영향까지 다루는 등 생각보다 꽤 깊이 들어간다. 특히 베트남전쟁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 베트남전쟁의 개요를 머릿속에 정리하기 좋을 것이다. 연표와 풍부한 사진 자료, 당시의 세력과 전쟁 진행 상황을 표시한 지도들도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트남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쭉 훑어보고 대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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