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오랜 세월입니다. 거뭇거뭇 수염이 웃자라기 시작하던 때부터 만나 지금껏 모임을 이어오는 친구들과 어제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각양각색의 성격을 가진 친구들과 모임을 이어간다는 것은 때론 위태하기도 하고 때론 숨가쁘기도 합니다.
 

세월이 더디 가기만 하던 그 시절과 지금 현재의 속도는 확연히 다릅니다. 빠르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마음,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존재도 형체도 없는 그 마음이 지금껏 우리들 곁을 지키고 섰습니다. 
 

어제는 유독 자주 만나지 못했던 K가 눈에 밟힙니다. K는 다부진 체격에 구리빛으로 그을린 단단한 성격을 가진 친구입니다.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악착같이 달라 붙기도 하지만 외골수의 고집으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런 성격탓에 K는 다른 친구들보다 삶의 진동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좋아 보입니다.
 

호탕하게 웃어 젖히며 세파의 굴곡을 넘나든 K는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삶의 방향추를 단단히 옭아 맺습니다. K에게서는 잃어 버렸던 자신감이 흐려졌던 진정성이 묻어 납니다. K는 ROTC를 임관하고 제대 후 잦은 이직과 이혼 후 현재 용접일을 하는 기술자로 땀 흘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K와 이혼 했던 전처와 화해하고 재결합해서 인생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통감했음을 눈빛으로 전해져 옵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수많은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그 친구들의 이야기에 더위도 잊고 불콰하게 달궈진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합니다. 사는 것이 바빠 만남이 소원했던 모임을 계속 갖자고도 하였고 엉켜 뒹굴던 그 시절처럼 만나자는 기약없는 약속이 오고갑니다. 후덥한 공기를 가르고 피어 오르는 친구의 속 깊은 마음이 청량감을 주듯 유쾌하기만 합니다.     

마음은 그런가 봅니다. 세월의 격랑에 깨지고 구르고 넘어지다 보니 마음이 온전할리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곁에 오롯이 서 있던 그 마음이 닳고 헤어진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잊어 버렸던 웃음을 채워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통한다는 말, 듣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친구는 오래될 수록 좋고 멀리서 찾아 오니 얼마나 기쁘겠냐는 공자의 의중을 조금은 헤아려 봅니다. 

 

 

그 마음을 전 우정이라고

되새겨 봅니다.

 

친구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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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에 깨지고 구르고 넘어지고... 그래서 상처받고... 그런데 요즘은
제가 세월 때문에 좀더 말랑말랑해지고, 각진 곳은 둥글게 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면이 꼭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합니다~

친구 만남... 즐거우셨겠어요. 저두 동기 모임하자고 졸라봐야겠습니다.

穀雨(곡우) 2010-08-19 17:59   좋아요 0 | URL
음, 그러네요. 닳다보면 둥글 둥글해지겠죠.
제 모토가 둥글게 둥글게 거든요...^^

blanca 2010-08-1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그런데 저 헷갈렸어요^^;; 옆지기님이랑 같이 쓰시는 건가요? 저는 여자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케 된 거죠? 제가 완전 잘못 짚었었나요?

우정은....아, 저는 고등동창모임이 있는데 지금 조금 위기 상황이랍니다. 다들 한창 바쁠 때라 그런지 서로 한 번씩 놓치고 그러다 보니 서운함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지...자꾸 고등학교 시절의 그 순수한 우정을 그리워하고 그때만큼 나한테 안해준다고 좁은 마음을 가지게 되니 더 힘들어지는 거겠죠...관계도 세월에 따라 포기할 건 포기하고 배려할 건 배려해야 하는데 수련을 조금 더 쌓아야 겠어요...

穀雨(곡우) 2010-08-19 23:59   좋아요 0 | URL
아....어찌....전 줄곧 남자였고 앞으로도 그럴텐데...^^
제 글이 여성스러웠나요? 아님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킬 대목이라도......


세실 2010-08-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 친구들 넷이서 모임을 하는데 참 편안하더라구요.
이혼한 친구도 있지만 아들과 둘이 잘 살고 있는 모습 보면 다행스럽기도 하고, 전남편과 재결합했으면 하지만 전혀 생각이 없네요.
그렇게 나이들어 가는게 인생인가 보아요^*^

穀雨(곡우) 2010-08-25 20:21   좋아요 0 | URL
사실 그 친구, 이혼하고 한 때 방황하는 통에 재결합했음 했거든요. 물론 지금이야 잘 지내지만 인연이 없음 그것도 억지로 이어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닐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해서 전 늘 둥글게 둥글게 사는 게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둥글게...~~^^
 

밤새 옆지기가 꿈에 시달렸다. 꿈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낯선 어느 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행사가 있었다. 이미 길게 뻗은 줄 사이로 앞 선 아이가 제 키보다 큰 잉어를 품에 안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란다. 이후 아내의 차례가 되어 물 속을 드려다보니 커다란 잉어, 표독스런 뱀, 열대관상어처럼 생긴 노란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았나 보다. 아내는 평소 비린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는 터라 꿈에서도 그 성격이 고스란히 표출되었던 모양이다.

 

징그러운 마음도 잠시, 그렇게 잡아 올린 물고기는 열대관상어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노란 물고기. 그것도 2마리나. 그런데 품은 물고기를 엉겁결에 놓치고 말았다. 아내는 그 와중에도 한 번 더 커다란 뜰채로 물고기를 끌어 올렸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유유히 사라져 버린 물고기. 무엇을 예지하는 것일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꿈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분석하는 작업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프로이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일어났던 실제의 사례를 통해 일정한 가설을 만든다. 그는 해박한 정신분석의 연구를 통해 습득한 경험을 통해 꿈을 꾸는 이유, 꿈이 뻗어 나가는 궤적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다룬다.

 
프로이드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연 꿈의 가치는 미래를 예지하는 데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꿈은 과거를 가르쳐준다고 하는 편이 더 옮은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꿈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p311)

 
 

프로이드에게 꿈은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의미한다. 억압되고 내재된 욕망이 의식의 뒷편에 숨은 또 다른 자아의 분출이고 표현이라는 말이다. 프로이드는 꿈을 성적인 욕망과도 매개했다. 모자를 쓴 중년신사의 중절모자란 특정사물이 남성의 성기를 비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에고(자아), 이드(본능), 슈퍼에고(초자아)를 구별하고 억압당한 본능에 충실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얼토당토 않은 주장으로 매도 당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 책에서 꿈을 소망하고 왜곡된 재료를 바로잡은 성과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본능을 일깨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전제로 한 모든 인간의 본성에 깃든 본능을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꿈의 해석은 본성을 적확하게 드려다 보는 프리즘이었을 것이며 정신세계를 조밀하게 엿보는 확대경에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가 남긴 <꿈의 해석>은 난해하다. 광인의 언변처럼 믿기 힘든 사실을 단순하게 꿈에 나타난 재료를 통해 다듬고 가공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를 의구심을 낳는게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아내의 지난 밤 꿈이 무엇과 관련이 있는지 비추어 보았다. 아내는 현재 임신중이다. 잦은 입덧에 괴로워하고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그로 인해 유발되는 피로감, 신경증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하지만 평소 너그럽고 여유로운 성격으로 인해 조금은 대립각을 세울 상황을 적절히 조절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다소 해괴한 꿈의 의미는? 태몽으로 직결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네이버친구에게 문의한 결과 딱 맞아 떨어지는 즉답은 없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예지로 이어지는 꿈은 모두 소망의 충족 또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관점을 유지한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평소 비늘 덮인 물고기를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눈꺼풀이 없이 빤히 쳐다보는 생기없는 동공을 거부하는 아내의 행동을 보아서는 임신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축적된 상태인 모양이다. 이것은 태몽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상의 상태를 갈망하는 불만의 무의식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물론 네이버친구의 신뢰할 수 없는 말에 의하면 재물운이라고도 하는데. 그럼, 아내에게 로또를 사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

 

p.s) 위 책은 지난 3월 시작해서 지금껏 읽고 있는 책이다. 한 순간에 몰아쳐 읽어 낼 성질의 책이 아니므로 천천히 곰삭혀 읽는 중.


p.s) 이 꿈이 무슨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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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9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권의 마지막 자리에서 놓치는 꿈? 아하하.. 죄송해여.

저는 꿈에 대한 해석은 프로이트보다 융의 이론이 더 맘에 들어요, 수긍도 가구여~

穀雨(곡우) 2010-08-19 18:00   좋아요 0 | URL
마지막 자리라도 3등인데, 그게 어딥니까...^^
저번에 3등 당첨되었을 때는 모르겠던데, 다시 또 되면 푸하핫^^
융도 한번 살펴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를 위대하다고 흔히 말한다. 그 위대함은 어머니이기에 가능하고 또 가능하리라는 강인한 믿음이다. 어머니는 당신 품으로 내어 준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고 아까워하지 않으며 항상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존재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엇비슷한 이유는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컬러 오브 워터>. 이 책은 저자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어머니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회고록이다. 지옥 같은 유년시절의 공포를 딛고 공포, 폭력, 차별의 사회적 편견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담대하고 용감한 어머니의 삶을 기록했다. 제임스의 어머니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레이철 데보라 실스키)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 이민자의 자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완강하고 가부장적이며 소아 성애자였으며 매우 권위적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왼쪽을 거의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루스는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성폭력과 노예와 같은 무시와 차별을 견뎌내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17살이 되던 해 뉴욕으로 독립하여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며 가시밭길 같은 삶을 걷는다. 두 번의 흑인과의 결혼과 사별을 통해 12명의 물라토(흑백혼혈인)를 낳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키워 냈다.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성공한 인격체로 성장했으며 왕성한 활동을 통해 든든한 가족을 일궈냈다. 실로 신실하고 강단한 삶이었다. 백인 공동체 내에서의 유태인으로서의 차별, 흑인과의 결혼에 의한 혐오에 가까운 편견과 시선은 그녀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녀가 걸어 온 모든 비인간적인 경험과 적대와 무시와 모욕감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의 무자비함과 비이성적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던지는 차별은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공존한다. 집단 내에서 펼쳐지는 차별의 양상은 서늘하고도 무겁다.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에 대한 차별. 머리로는 이해하나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막과 같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사회에서만 펼쳐지는 모습은 아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할레의식, 신분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제도적 계급, 급기야는 부에 따른 차별까지 가르고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나뉜다. 이렇게 차별은 특권의식을 만들고 특권의식은 차별에 따라붙는 모순된 현실을 되풀이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통해 혹독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한 훌륭한 롤 모델로 제시하고자 하였음은 이내 알 수 있다. 굳이 구구절절 풀어 쓰지 않아도 12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돌보는 동안 수없이 많았을 충돌과 갈등의 우여곡절이 넘나들었음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한명도 힘들어서 키우기 힘든 요즘의 잣대로 들여다본다면 시도는 물론이고 생각조차 하기도 힘든 일이다. 자신을 믿고 두려움을 극복한 사랑의 힘이 없었다면 그녀 또한 이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로를 연대하고 의지하며 충만한 에너지가 가득한 삶을 지탱한 신실한 믿음이 그녀를 위대함 속의 위대함을 낳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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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출간되지 않은 가제본 <컬러 오브 워터>에 대한 서평이다. 아들 제임스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어머니와 어머니 루스의 서간체의 형태가 주거니 받거니로 이루어진다. 제임스의 감정변화와 어머니를 바라 본 심경, 그리고 어머니의 회고에 의한 감정선이 협주곡처럼 매우 잘 어울려진 작품이다. 물론 실화다. 10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미국 전역의 고등학교의 교재로 채택될 만큼 반향이 컸던 책이다. 인상적인 내용이 호소력있게 다가 서는 근래에 보기드문 휴먼스토리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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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8-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따끈따끈한 신간 리뷰네요. 어머니의 힘은 위대하죠. 12명의 자식이라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기사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요. 어쩜 그럴수가 있을까 하고...

穀雨(곡우) 2010-08-16 09:55   좋아요 0 | URL
어머니의 힘에 대해 읽으면서도 전 세실님처럼 성폭력에 눈이 멈췄어요. 성폭력은 아주 친밀한 곳에서 정신병처럼 퍼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함께 말이지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는 책은 수동적으로 읽혔다. 글이 늘어진다든지 마음이 혼란할 때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다 손에 잡히면 다시 시작해서 되돌아 나오는 도돌이표처럼 처음부터 다시 읽곤 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렇질 못하다. 읽은 후가 문제다. 무언가를 토해내야 한다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강박관념이 발목을 잡는다. 써야만 한다는 무언의 욕구,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읽고 쓰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이 빚은 관념에 가깝다. 기록한다, 생각한다, 소통한다는 단계별 매개가 넝쿨감자처럼 엮인다. 따지고 보면 책을 잉태한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을 그 경계, 어디메에 나 또한 가 다다랐을지 모른다. 교감한 흔적을 통해 나는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낸다. 내가 아는 만큼만 담긴다는 사실이다. 안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그러므로 견해에 의한 쓰기는 다양한 상념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곡해할 수도 아니면 일신우일신할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문제는 이러한 것과는 궤를 같이 하지 못한다. 쓴다는 것에 대한 관념은 보이기를 원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아무리 미화시키고 윤색을 가미하여도 표백되지 않은 거친 문장은 허공을 맴돌며 공허하게 만든다. 그러니 내가 이런 생각을 떠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어이없다는 것이다. 문장을 짓고 내러티브을 믹싱하고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작가도 아니고 글로 밥벌이는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숱하게 많은 나날들을 카페인에 중독되고 까맣게 태워냈을 작가들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나는 게으르고 배부른 독자에 불과하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착각의 늪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보아야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내가 그렇다. 책을 읽는 도중은 물론이고 단어에 집착하고 문장이 책을 빠져 나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것도 모자라 걷는 중에도 정리되지 못한 생각의 실체들이 휙휙 정처 없이 떠돈다. 그래, 뭐 좋다. 착각도 삶을 위무하는 좋은 친구가 될 때도 있으니 좋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생각의 밑천이 고갈되었다는 민망함이다. 자꾸 자꾸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면 좋으련만 내가 가진 깜냥의 그릇이 딱 고만고만해서 더 이상 자라나질 못한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리뷰 또는 감상을 쓸라치면 전혀 다른 내용이 한데 엉키고 엇비슷한 문장과 표현이 판을 치다 못해 도배를 한다. 아마 내가 언급한 불편한 사실에 동조하거나 호응하는 리뷰어도 있으리라 믿는다. 없다면 전적으로 나의 모자람이겠지만 있으리라고 재차 믿어 본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지, 괜히 엄한 리뷰어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자존심이 더욱 오그라들지도 모른다. 이러다 한방에 훅 갈 날이 멀지 않았다.

 

        문제는 알았으나 해결책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궁여지책 하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으니 하다 보면 나아가다 보면 나아지리라. 대책 없는 자신감이다. 사실 문제를 가장했지만 쓰다 보면 유익한 점이 많다는 것은 모두들 아시리라. 책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소통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주춧돌이 된다. 갈무리되지 못한 생각들도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필터링의 효과도 있으며 무엇보다 공감의 달콤한 기쁨을 얻는다.  공감, 못 쓰는 글도 춤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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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1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이기때문에 겪는 고통이군요.
그래서 전 리뷰를 쓰지 못해요.
소통의 한 루트 중에 책이 있다고 생각하고...저자의 의도와 말하려는 바가 무언지 알아낼 수 있다면...거기에 발전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다면, 더이상의 독자의 태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입장에서 리뷰를 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그러한 소통의 자세를 늘 옆에 붙이고 사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분석엔 재주가 없고, 더군다나 글쓰는 데 잼병인 저로서는 곡우님의 이런 고민이 부럽기만 합니다.
부러워도 공감은 합니다, 곡우님~~~
건필!...아자아자!!!

穀雨(곡우) 2010-08-12 17:44   좋아요 0 | URL
소통의 자세, 맞아요. 그러고 싶은데 항상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마기님처럼 글을 재미나게 쓰시 분께서 재주 없다고 하면 아니되옵니다...^^

blanca 2010-08-1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제가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엄청 활자를 막 읽어내긴 하는데 정리도 안되고 내가 뭔가를 읽었는지 기억도 못해 심지어 같은 책을 두 번 읽기게 이르자 결심한 거였어요. 기록하자! 그런데 지금은 진짜 곡우님 의견에 동감해요. 꼭 뭔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 제대로 소화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리저리 짜집기 한 것 같은 찝찝함도 느낀답니다. 그런데 조정래샘은 읽은 시간 만큼 소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그러니까 제대로 독서하는 게 아니라 활자중독 정도인 것 같아요. 씁쓸합니다.

穀雨(곡우) 2010-08-12 17:47   좋아요 0 | URL
전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정도고 블랑카님은 활자를 지배하고 부리는 정도가 아닐까요..^^
그나마 활자중독은 동병상련이네요..ㅋㅋ 전 블랑카님 글을 흠모하는 일인이랍니다.ㅎㅎㅎ

글샘 2010-08-1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활자 중독증이긴 하지만, 항상 읽고 싶은 책을 옆에 두고 다른 책을 읽고 있는 비극...ㅠㅜ 근데, 뭐, 너무 무서워할 거 없이 막 쓰세요. 그러다보면, 좋은 글도 나쁜 글도 나오겠죠.
반갑습니다. 저도 부산에 살거든요. ^^

穀雨(곡우) 2010-08-13 08:39   좋아요 0 | URL
오웃, 글샘님 부산사시는군요. 동향분들이 많으시네....^^
음, 무서울 것까지는 없는데, 너무 대책없이 써 내려가서 문제랍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진짜 글 쓰는 재주가 무재주입니다만... 알라딘에서 쓰다보니
쓴다는 자체가 즐거워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책임감이라는게 책을 더 충실하게 읽게하는 맛도 있더군요.

곡우님의 글 첨 읽는듯 합니다만,, 좋은 글이셔염.
그리고 공감에 대한 의견...... 절대 공감합니다!!

穀雨(곡우) 2010-08-14 13:35   좋아요 0 | URL
뭐든 즐기는 자 못당한다고 저두 그렇게 되어야 할텐데, 말이지요..^^
 

잠시 은행업무로 나 섰다 흠뻑 젖었다. 훅훅 턱밑까지 차오르는 열기에 이런 날은 지중해 인근 나라의 시에스타(낮잠)가 부럽다. 시원한 그늘 밑에서 머리 끝까지 짜릿하게 식혀주는 개울가에 발 담금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런 폭염 속에서도 아스팔트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먼 발치에서도 사우나의 아찔한 열기처럼 연신 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겪어 보지 않아도 숨이 막힌다.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사람은 달라진다. 그네들이 굵은 땀방울로 더위와 맞서 싸우는 동안 난 겨우 성가신 벌레에 물린 마냥 역겨워 했으니 민망스럽다. 타인의 수고스러움을 더 나아가 고통을 무덤덤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 문제다. 편안한 것에만 길들여져 나부터 살자는 식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네들의 지금 심정은 오죽할까? 오아시스라도 떠 올려야 헤치고 나갈 힘이 될려나... 이놈에 오지랖은...^^

 

어쨋든 휴가가 절정이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모처럼 해운대 나들이를 했다. 부산 토박이들에게는 해운대가 단순한 지명이나 바다가 펼쳐진 모래사장정도의 감흥이랄까? 오메가메 들르는 곳이다 보니 휴가철 마다 넘쳐나는 인파에 오히려 던적스럽다. 하지만 사람 보는 재미도 그렇고 파도에 몸을 내맡기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흥겨움도 그렇고 해서 늦으막에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넘쳐난다. 급하게 나오느라 카메라를 챙겨 놓지 못 해 이미지를 올릴수는 없지만 물반 사람반이다. 딱 미아되기 십상이겠더라.

 

예전에는 해운대가 이렇게까지 붐비지는 않았다. 개발이 정체되었던 시절에는 고만고만한 낮은 호텔과 해송(海松) 우듬지가 쭉 이어진 배경이 나름 잘 보존되던 곳이었으나, 몇 해전부터 버섯 웃자라듯 쑥쑥 올라 선 고층 빌딩에 가려 정겨움은 실종되고 현기증만 인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해안의 경계를 높이고 제방을 쌓아 올리더니 데크로 된 방부목을 덧대어 인위적인 색깔과 모습으로 덧칠해 놓았다. 나는 자연에 보태진 그 길을 볼 때마다 썩지 않는 부패된 냄새가 떠도는 착각을 한다.  

 

4대강도 파뒤집고 입맛에 맞게 맞추는 판에 해수욕장 하나 손질하는게 뭐 대수겠는가. 그래도 아쉬운 건 여전하다. 어디든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해운대는 나름의 포스트가 있다. 그 자리 그대로 다독거려 주며 사랑도 원망도 모두 함께 해 주었으니 말이다. 줄어 드는 모래사장만큼 정서적 진폭도 주는 모양이다. 조만간 다 사라져 버리면 난 어디다 속풀이를 하지?

 

그래서 이날은 해운대는 과감히 포기하고 달맞이 고개를 지나 청사포를 넘어 송정해수욕장에 안착 신나게 놀다 왔다는 짧은 휴가의 되돌림이다. 여기서 팁은 송정은 해수욕장이 곱고 물이 차지 않으며 한참을 나아가도 어른 무릎께 밖에 물이 오지 않아 아이가 있는 집은 놀기에 딱이다. 아쉬운 것은 해수욕 후 샤워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온수가 제공되지 않아 샤워 도중 울부짖음에 시달린다는 사실. 뭐 그래도 해가 뉘엿뉘엇 폐장 직전이 아니라면 참을만 하다. 샤워장에 공급되는 물이 민박집 주인장 왈, 천연 자연 암반수를 뚫고 올라온 지하수입니데이. 조금 찹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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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0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 사는 분들은 해운대보단 다들 송정이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조금 찹습니더~~~ ㅋㅋㅋ

穀雨(곡우) 2010-08-06 19:40   좋아요 0 | URL
붐비는 것 보담 훨씬 낫거든요. 정감있고...^^

비로그인 2010-08-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부산에 계신가요?
글쿠나아~~~

穀雨(곡우) 2010-08-06 22:11   좋아요 0 | URL
넵, 나고 자라고 먹고 사는 곳도 부산입니다. ^^

라로 2010-08-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는 이번에도 휴가를 해운대로 가려고 해요. 저희 가족은 다 파도 타기를 좋아하거든요,,,저 같은면 막내아이 데리고 송정으로 가고 싶네요~.^^;;
그런데 이번 휴가엔 아직 숙박할 곳을 못구했어요,ㅠㅠ
저희가 가고 싶은 날짜엔 다 찼더라구요,,ㅠㅠ
아무래도 16일이 지나서 가야할지,,ㅠㅠ
제 남편은 한국에서 가장 살 고 싶은 곳이 부산이라는데,,,정말 좋은곳에 사시는군요!!^^

穀雨(곡우) 2010-08-08 2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파도타기 너므 재미나죠....^^ 제가 여태껏 살면서 해운대를 숙박의 장소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미쳐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제 집이 스테이할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기꺼이 모시고프나
사정이 여의치를 못 하네요...쩝
조금 더 지나면 비수기에 접어드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이 부산이라는 남편님의 생각은 맞습니다...^^

미지 2010-08-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부산에 사시는군요? 제가 부산이 고향이라.. 글 반갑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해운대에는 저도 이따금 갈 때마다 상실감을 느낍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끝나면 주로 해운대로 귀가하여^^ 밤이 되도록 파도소리 듣고 했는데.. 그땐 몰랐는데 해운대가 망가지니 그 때의 해운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하는 회환이 듭니다. 수영만 매립하며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작년에 한번 갔었는데, 좀 놀란 건 해수욕 인파의 한 30퍼센트 정도가 외국인이었다는... 아마 한류? 때문인지, 해운대 관광 패키지 상품이 잘팔리나보더군요.. 이래저래 낯설어 그 이후 못 내려갔네요.
이제 사대강까지 망가뜨리고 나면 얼마나 모진 마음 먹으며 살아가야 하나.. 울적해지네요. 어쨌거나 해운대 이야기 재미있게읽었습니다.^^

穀雨(곡우) 2010-08-10 11:26   좋아요 0 | URL
은근 부산분들이 많으시네요. 수영만은 이제 괴물이 되었습니다. 콘크리트 덩어리로 둘러싸인 괴물. 한 번씩 괴물근처로 갈일이 있어 들르지만 도회적인 이미지는 강하고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어색함이 지배적이지요. 그런데도 좋아하는 분들은 또 좋아하더군요, 그 땅을 자연을 닮은 공원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쉽습니다.

세실 2010-08-1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해운대가서 달맞이고개 산책길 따라 걸으며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 했는데,
님도 그중 한분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청주는 바다 보려면 2시간은 가야 해요. 아이들은 댐이 바다인줄 알며 컸다는. ㅎㅎ

穀雨(곡우) 2010-08-11 15:29   좋아요 0 | URL
댐이 바다라...^^ 천혜의 자연환경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으나 가까이 있으니
소원해지는 것은 사실이더군요. 그래도 달맞이 고개는 좋은 곳은 분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