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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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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은 쓰여 지는 자에 의해 달라진다. 기록이나 약전을 바탕으로 기술된다 할지라도 시대적 함의나 색깔에 의해 덧씌워질 수밖에 없다. 분명 역사의 진실은 곡해되기도 와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에 드리운 조각들 중 변하지 않는 진실은 세월의 파고를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인식하고 바라보는 세상의 단상들이 모두 일정한 일련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나에게 있어 조선은 영욕과 번민으로 점철된 끝없는 도전의 역사라 본다. 반목과 대립의 지리멸렬한 갈등은 선혈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으로 재생산 되었다. 이 책 <왕을 위한 변명>은 절대왕권을 거머쥔 조선의 왕, 회한의 순간을 회고했다. 왕이 되기 위한 과정과 시대적 상황을 실록을 중심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관점의 시각과 분석을 통해 적절하게 얼버무렸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듯 긴장감을 부추기고 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던 그들의 삶을 연민하게 만든다.

 


책은 조선의 27대 왕들 중 10명만을 추슬러 갈무리했다. 어느 누구도 평탄한 운명을 걷지 못한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열망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야욕은 피로 맺은 천륜마저 짓밟고 공포, 의심, 질투의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살기 위해 광인이 되기도 하며 모자란 척, 어미의 복수를 위해 황음무도의 광기를 보이는 행위들은 보통의 인간의 의지로서는 넘기 힘든 신산한 삶이었을 게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반역의 칼날은 반복되었는지 모르겠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굴복과 권력찬탈을 위해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무참히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러 살육의 역사를 자행한 현장을 아들 태종이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반복의 역사를 잉태하고 재현하는 현재를 들여다보면 삶의 우연이 숙명처럼 퍼진 인과응보를 연상치 않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는 끊임없는 대화가 빈말이 아님을 절감한다.

 


조선의 왕위세습은 적장자우선의 원칙이었다. 원칙은 예외를 낳기 마련이지만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은 정적으로 내모는 악의 축이었다. 앞서 본 태종이 왕자의 난을 2차례나 일으켜 이복동생을 제거한 사실을 보아도, 그렇고 훗날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것을 보아도,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좌를 끌어안은 것을 보아도 그렇다. 결국은 왕권을 향한 열망의 구심점으로 자연스럽게 향하는 인간의 허무한 욕망과 직결된다.

 


왕은 드러난 외양과 다르게 고독이 난무한 자리다. 실존적 관념을 애써 덮씌우더라도 외롭기 이를 때 없다. 강인한 의지와 바른 통찰력을 요구받고 위엄과 카리스마를 생산해 내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조선의 왕들은 갖은 원한과 저주의 구심점이었으며 동시에 판단력과 평정심을 방해받는 유혹에 쉽사리 경도되었다. ‘주초위왕’ 따위의 혹세무민으로 개혁의 기치를 올린 조광조와 사림을 제거한 중종과 훈구파. 어미 윤비의 죽음에 빙의된 연산군의 폭정. 저주를 혹신한 극단의 광해군. 그들을 우리는 무능과 광기 어린 일방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중국의 진나라 황제 진시황의 권력을 빗대어 무소불위(無所不爲) 즉,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통칭하여 무한권력으로 대변된다. 봉건주의사회에서 왕의 권력은 실로 막강하였다. 왕과 대치되는 시각과 의견은 반역으로 몰리기 십상이었고 정적으로 낙인 되었다. 이처럼 왕은 강력한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시도 긴장감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다. 시시각각 위협하는 정적들의 틈바구니에서 견제와 균형의 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공포와 긴장감으로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을 뼈저리게 통감한 왕은 바로 고종이었을 것이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봉건과 개혁의 경계를 외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저자가 길어 올린 깊숙한 인간 내면의 고찰은 현재를 사는 우리, 저주와 같은 무자비한 내몰림에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대통령을 만들어 낸, 오늘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 속 부침과 궤를 같이 한 조선의 왕들의 영욕의 삶은 회고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들을 통해 청산하지 못한 갈등의 골을 청산하고 화합과 단결로 계층의 벽을 뛰어 넘는 것이 남겨진 자의 숙제가 아닐까? 차원이 다른 폭 넓은 시각을 제공한 더불어 생각거리를 남겨 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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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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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통해 왕권의 쟁탈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기 힘들만큼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긴다. 왕권을 향한 도전자의 삶과 수성하기 위한 삶은 항상 교차점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더불어 역사의 무대에 가려지고 왜곡된 그들은 다름 아닌 패배자의 멍울을 온전히 뒤집어쓰게 되며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이렇듯 절대왕정의 욕망과 영욕의 세월에서 사라진 조선왕조 5백년과 운명을 같이 한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의 삶은 실로 신산하기 그지없다. 


이 책 <왕이 못 된 세자들>은 권력의 심장부에 섰던 왕들의 일생을 그린 것이 아닌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이용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독과 비운의 운명을 살다 왕이 되지 못한 권력의 2인자인 조선의 한 맺힌 세자들의 삶을 녹아냈다. 실록과 약전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겸비하여 정황적 자료를 토대로 굳어 버린 역사의 흔적을 되살렸다.


조선왕조는 전통적인 유교주의 사대국가이며 전제왕권이 통치하는 절대권력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의 이면에는 비록 혈육이라 할지라도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피륙을 도살하고 비겁한 술수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대권의 승계와 견제를 위해 세자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왕과 세자의 관계가 미묘하고 복잡한 애증의 관계로 밖에 점철될 수 없었던 연유 또한 왕을 위협하는 것으로 막강한 정적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듯 끊임없이 반복되고 되풀이되어 왔던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력의 정점과 알력의 중심에 오롯이 서 있던 세자는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린 나이부터 서연과 학문에 몰두할 것을 강요받아야 했으며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아야 했다. 심지어 하고픈 일조차 맘 놓고 하지 못하는 마치 날개 꺾인 새처럼 항상 감시와 견제 속에 고독의 삶을 감내해야만 했다. 차재에 권력을 승계하여 손아귀에 넣어 권세를 쥐락펴락한들 그 고단함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삶과 맞바꾸어 희생할 만큼 값진 것이었을까? 하물며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린 바람에 진 꽃봉오리라면 어찌 원통하지 않을까.


저자는 조선왕조의 영욕과 오욕의 세월동안 왕이 되지 못하고 져버린 세자 12인의 삶과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문헌에 기록된 성마르고 건조함 일색인 내용을 심리적 정서의 상황관계를 흥미롭게 재정립하였기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왕권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의 이면을 타자의 시선으로 담아 정리하여 놓았기에 그들의 삶이 더 없이 애처롭다. 


실제 사도세자는 영조대왕의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받았으며 스스로도 신동에 가까운 영민함을 보였다. 영조의 권력이양소동의 속내에 매번 알면서도 석고대죄하며 뜻하지 않는 불충의 죄를 묻는 삶을 살았다. 세자를 통해 조정을 견제하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이렇듯 구중궁궐 속에서 펼쳐지는 서민들과는 유리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하기까지 하였을까 못내 안타깝기 까지 하다.


타고난 천성과 품은 원대한 뜻이 왕의 눈에 거슬릴까 광기로 내달렸을 양녕대군의 삶은 차마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그것이었다. 인조를 대신하여 명나라의 인질로 심양에서 오랜 세월을 유배 보낸 소현세자의 고단한 삶과 엉켜버린 이기적인 시선들은 무엇이 이토록 왕권에 집착하게 하는지 되묻게 하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 쳐져 진 삶이 굴욕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지나친 부정으로 아버지 광해군과 함께 폐위되어 버린 폐세자 이질은 누가 그의 시커멓게 타버린 속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이렇듯 조선왕조에 깃든 왕권을 둘러 싼 권력투쟁은 치열하고 비극적이기 짝이 없었다. 어찌 보면 국운이 다 해 쓰러 져 버린 조선의 침몰은 예견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대주의에 젖어 상업을 배척하고 붕당에만 치우쳐 근시안적인 국수주의에 몰두한 채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였다. 조선왕조의 몰락은 자가당착의 결과였다. 그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과 함께 한 고종, 순종에 이어 조선 마지막 왕 영민왕의 기구한 삶은 조선의 명멸과 쇠락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오버랩 됨을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겹쳐진다.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기술되었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짐을 여실히 보여 주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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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우울증 - 역사를 바꾼 유머와 우울
조슈아 울프 솅크 지음, 이종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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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의욕저하로 인한 상실로 인지체계의 불안정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의 불규칙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흔히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생기는 양극 우울증 즉, 무드스윙장애상태가 일반적이나 나이대별 발병 시기에 따라 우울증의 상태도 다르게 발현된다. 이처럼 우울증은 일반적인 정신상태의 원활한 감정조절이 힘든 다분히 침잠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겠다.

 


이러한 우울증이 미국인의 신화적 지도자 애브리엄 링컨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겸손과 강직한 삶으로 강단의 의지를 보여 준 링컨의 일생에 우울증이 끈질기게 괴롭히고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다는 주장이 제대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 책 <링컨의 우울증>의 저자 조슈아 울프 셍크는 전통 현대 심리학의 시선으로 링컨이 남긴 업적을 중심으로 신랄하게 실험의 대상으로 플라즈마의 도마 위에 올렸다.

 


저자는 링컨의 우울증의 유발원인을 통해 삶을 지배당한 멜랑콜리의 근원과 극복과정을 통찰하고 현대인의 우울증 극복방안을 제시하고자 시도하였다. 실제 2007년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차지하였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만큼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정신질환이지만 사회적 요인에 의한 압력 즉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우울증은 단순하게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치부하기에는 파국효과가 대단함은 알 수 있다.

 


링컨은 20대 초반 우울증의 초기증상인 단극우울증에 노출되었다. 그의 우울증의 시발은 생물학적 기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증상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 진 절망적인 우울상태를 지속시켰으며 유년기 시절 받은 트라우마인 정신적 상흔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링컨에게 보인 1차 우울증의 발현은 적절한 대응책과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표출하였다. 그의 친한 지인 조슈아 스피드 또한 링컨과 유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당시 미국사회는 우울증에 대한 경계를 양면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링컨은 현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우울증을 앓은 불안한 정신장애를 앓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저자가 링컨의 우울증이 통상의 환자들과 다른 극복과정을 살핀 것은 링컨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극복방법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상당시간을 침울하고 비통한 멍한 상태로 그만의 동굴을 만들고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하기는 하였으나 그가 가진 유머의 기질이 대중들에게 뿜어져 나오면 아우라는 실로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이런 링컨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으로서의 신화적 삶을 산 링컨의 단면에 다르지 않다.

 


당시 미국사회는 남북으로 갈라진 노예제도의 운영에 휘그당과 민주당의 갈등이 극한에 다 다른 상태에 있었다. 통상 알려진 바와 같이 링컨은 노예제도의 위해성과 인간 존엄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미국 수정헌법과 대치되는 것으로- 상당수 보수주의자들과 대립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지만 링컨 또한 정치인의 전형적인 외양을 갖춘 인물이었기에 노예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링컨의 전기를 집필한 시기가 동시대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아 불리한 것은 은폐하고 유리한 시각으로 몰아갔음을 지적한다.

 

링컨이 사망한지 올해로 200년째를 맞이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미국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하는 애브리엄 링컨의 위대한 삶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흠집 내기라도 하듯 우울증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수면위로 끌어 올린 저자의 담론과 통찰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더불어 전통적인 프로이트의 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기반으로 무의식세계와 의식세계와의 충돌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역사 속에 스며든 링컨의 흔적을 되돌린 것은 신선한 시각적 교류라 하겠다.

 


이렇듯 이 책의 저자가 밟아 간 링컨의 행적은 바쁜 현대인의 현재에 대입하여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급변하는 변화의 중심에 정서적 충격이 심각한 상흔을 남기는 것에는 우울증이라는 요소가 똬리를 틀고 있다. 우울증은 증오나 분노로 내면적 불안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임을 떠올려 볼 때 링컨의 철저한 관리와 통찰을 통해 극단의 삶을 조절할 수 있는 모범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심리학에 기반을 둔 링컨의 이면이 우리에게 다른 링컨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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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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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그윽이 풍기는 고풍스런 고택에 들어 서 나온 기분이 이러할까. 읽는 내내 개운함으로 온몸을 휘감아 돌더니 종내에는 흐릿한 정신을 명징하게 해 준다. 실로 고마운 책이지 싶다. 역사에 분연히 스며든 명문가들의 향기에 취해 어떻게 지나쳐 버렸는지 모르게 홀연 진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아마도 그들의 족적에서 드러난 비범한 기개와 장중한 스케일에 절로 압도당하여 숙연해짐을 느껴서 인지 모르겠다.


저자 조용헌이 생생하게 온몸으로 체득하여 담아 펼쳐 낸 <명문가>는 참으로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첨단산업화 시대에 함몰된 우리네 얼을 되살리고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가 무엇인지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흥망성쇠의 부침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지켜낸 그것은 지조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책은 고택을 중심으로 분연히 살아 버팀목이 되고 있는 명문가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여기에 해박한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명문가가 발원한 지역을 살피고 재미난 일화를 곁들여 놓아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이렇게 저자가 밟아 찾아 간 명문가를 따라가다 보면 볼거리 많은 문화유산답사 기행을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저자는 우리네 민족에 담긴 명문가를 통해 사분오열 갈라진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본보기로 삼고자 하였음을 말한다. 구태의연한 사고의 일환으로 가두어 버리기에는 담긴 가르침의 깊이가 넓고 크다 하겠다. 혈통을 따져 묻기 이전에 명문가에 발현된 가풍, 규율, 원칙은 아무나 흉내 내어 따라 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음은 물론이다.


나라가 위태로움에 빠져 풍전등화의 시국에 이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연히 일어나 큰일을 도모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당 집안과 창평 고씨 집안에게서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저자의 말에 뼈저리게 통감하게 한다.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제 몸 건사하기에 바쁜 현재의 우리와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명문가의 가풍은 반듯한 기운에서 비롯되어서 그런지 남달리 출중한 인재를 배출한 모양이다. 대개는 한 가문에 두서너 명의 수재만 나와도 바라보는 모양새가 달라지는 법인데 인동 장씨의 계보에서 드러난 탁월한 수재의 면면은 분명 명문가의 DNA와 평범한 필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을 다른 모양이다.


경물중생(輕物重生). '외물(名利)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을 중시한다.'는 인본중심의 사상을 몸소 실천한 평산 리의 강진 김씨, 일제의 억압에 굴복당하지 않고 분개한 안동 고성 이씨의 행적에서 외경심마저 샘솟게 한다.


분명 지켜낸 외양은 달라도 그들에게서 고유한 정취와 기풍을 흠뻑 젖게 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신산한 삶을 걸어 온 명문가의 고단한 삶이 교활한 수단과 재력을 통해 일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겠다.


조선의 얼은 우리 것에 깃들여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펼쳐 보인 간송 전형필의 대범한 행적은 오늘날 재력가의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네 문화를 지켜 내기 위해 조선왕조의 진정한 로열패밀리의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전주 이 씨의 행적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옛것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되살리고 매몰된 민족정기를 이어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몫임은 자명한 이치이다. 세계화되고 평준화된 이때 혈통을 중심으로 가문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자칫 하릴없는 일로 여겨질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속에 담긴 역사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다 하겠다. 흔적에 담긴 명문가의 정신은 동천경지(動天驚地)함 그 이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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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읽는 중국 역사이야기 2 - 전국시대
박덕규 지음 / 일송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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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곳곳에 스며들어 함께 호흡하며 숨 쉰다. 어디서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는 보편적 인습처럼 윤리적 기준과 범주를 제시하는 지침으로 길잡이 역할을 하곤 한다. 장대하게 펼쳐 진 역사의 이면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꿋꿋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그 광활함에 새삼 놀라움을 감출길이 없다.

 


이 책 <중국 역사이야기>는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소신 있는 문학가들에 집필되어 중국 정부로부터 온갖 박해와 고난을 겪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이야기를 저자 박덕규씨가 옮겨 총 14권으로 편집하였다. 방대한 양의 사료와 약전을 참고하여 기술한 관계로 그 양 또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나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 <중국 역사이야기: 전국시대 2>은 혼란의 시기의 연속이었던 춘추전국시대를 무대로 한다. 진나라로부터 분리 독립한 소수국가들은 첨예한 대립과 갈등관계를 반복하며 황제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영웅과 지략가인 모사를 배출해 내었다. 아마도 그 시대가 선택한 불가피한 영웅난립시대의 한 단면으로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인지 모르겠다.

 


명멸할 듯 사라져 간 군웅들의 일화는 오롯이 바른 정신으로 이어 져 왔다. 우리가 역사를 되새겨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특히 중국사는 유교문화의 지배적 덕목인 공자의 극기복례의 사상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이라 하겠다. 중국문화가 유교적 사회규범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이 책을 읽어 간다면 보다 더 쉽게 한 눈에 그려질 것이며 우리나라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할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진나라가 분할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의 근저에는 인재의 등용에 흥망성쇠가 달려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이 처럼 역사 속의 깊이 숨은 행간의 의미는 처세서의 다름 아니라 하겠다.

 


인재기용의 효율성은 전국 칠웅 중 진나라가 유독 눈에 띤다. 위앙의 능력을 중시하여 믿고 기용하였기에 부강의 초석을 까는 계기가 되었던 사실을 보면 의심하지 않고 상호신뢰를 준 결과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반면 위나라의 손빈의 일생은 재주를 시기하여 권모술수가 난립하고 파렴치한에 의해 희생당한 비운의 영웅으로 점철된다. 결국 제나라로 피신가서야 제 주인을 만나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인재중시의 중요성을 재차 인식하게 됨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뜻 한 바를 이루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뎌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로새긴 조나라의 재상 소진의 일화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자기수양과 단련 없이는 성취할 수 없음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 밖에도 스스로 자기의 능력을 추천한 모수의 결단력과 화씨벽을 무사히 다시 조나라로 가져왔다는 일화에서 탄생한 완벽귀조의 고사의 인상여의 행적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인간관계의 본질은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은 불변의 진리이지 싶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역사 속 인물들의 관계에 버젓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과거는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역설한 에드워드 카의 말을 다시금 동조하게 한다. 이렇듯 이 책 <중국역사이야기>는 역사를 통해 통찰력을 키우고 현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되짚어 주게 하는 좋은 지침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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