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세파에 시달렸다. 읽기만 하고 토해 내질 못했으니 응어리가 단단해 이물감마저 든다. 소통할 수 없는 것과의 불편한 조우, 어색함은 독버섯처럼 자란다. 모르긴 몰라도 괜실히 날씨탓으로 내 몬다.

모든 것이 다 귀찮고 무료할 때가 있다. 힘듦이 없어서도 아니겠고 배 부른 자의 소회라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다. 서걱서걱 밟히는 바람에서도 불안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이겠지만 그것도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

달빛이 부서지듯 곱게 내려 앉은 간 밤, 물끄러미 자는 아이를 한참을 보았다. 창백한 달빛에 아이의 얼굴은 곱디 곱다. 막 피어 난 꽃봉오리처럼 투명하다. 이제 밤이 무섭다는 아이의 투정으로 작디 작은 손으로 목덜미를 꼭 끌어 안고 잠이 들었다. 무엇이 무서운 것인지 아이는 알까? 보이지 않는 헛것이 두렵다고 하지만 사실 보이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까? 지나간 시간의 층위는 살인적인 등록금에, 생존을 위협당하는 불안정한 그 처절한 생존의 현장에 어찌 존재하지 않는 헛것과 비교하겠는가. 

잠 들지 못한 밤, 토해 내지 못한 날 것들에 불편했으며 침잠한 마음에 자조 섞인 위로를 보내 다, 어느 새 나인투파이브를 꿈 꾸는 지루한 안정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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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6-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만 읽고 살고 싶어요......
제가 한동안 그랬었지요. 내 맘을 다독이는 수밖에요.
힘내세요. 님

穀雨(곡우) 2011-06-14 10:43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세실님의 응원에 불끈....^^
감사합니다. 그냥 마음이 그랬나 봅니다.

2011-06-13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6-1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만 읽고 살고 싶어요.2.

근데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전 아무것도 안 하고 온전히 책만 읽을 수 있을까요?
주어진 시간의 귀중함 따위는 모르고...또 그렇게 그렇게 흘려보내게 되진 않을까요?

그냥...내가 책 읽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들도 중요하다는 최면이 필요했고,
그래서 몇 자 끄적거려 봅니다.

穀雨(곡우) 2011-06-15 09:17   좋아요 0 | URL
잘 지내셨어요...^^ 양철댁님...
멍석 깔아주고 모든 환경이 허락해도 그리 되지 않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바쁜 와중에 피어 오르는 바람이 더 절실하듯 그래야 하나 봅니다.
딜레마입니다. 딜레마....^^

blanca 2011-06-14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돌아오셨군요. 이제는 곡우님의 정갈한 리뷰를 고대해 봅니다. 아이도 그간 많이 자랐겠지요.

穀雨(곡우) 2011-06-15 09:19   좋아요 0 | URL
돌아왔다는 기별이 엉성해도 진심으로 환대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여물어 가고 있습니다. 신기하고 또 신기합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