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는 책은 수동적으로 읽혔다. 글이 늘어진다든지 마음이 혼란할 때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다 손에 잡히면 다시 시작해서 되돌아 나오는 도돌이표처럼 처음부터 다시 읽곤 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렇질 못하다. 읽은 후가 문제다. 무언가를 토해내야 한다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강박관념이 발목을 잡는다. 써야만 한다는 무언의 욕구,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읽고 쓰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이 빚은 관념에 가깝다. 기록한다, 생각한다, 소통한다는 단계별 매개가 넝쿨감자처럼 엮인다. 따지고 보면 책을 잉태한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을 그 경계, 어디메에 나 또한 가 다다랐을지 모른다. 교감한 흔적을 통해 나는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낸다. 내가 아는 만큼만 담긴다는 사실이다. 안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그러므로 견해에 의한 쓰기는 다양한 상념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곡해할 수도 아니면 일신우일신할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문제는 이러한 것과는 궤를 같이 하지 못한다. 쓴다는 것에 대한 관념은 보이기를 원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아무리 미화시키고 윤색을 가미하여도 표백되지 않은 거친 문장은 허공을 맴돌며 공허하게 만든다. 그러니 내가 이런 생각을 떠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어이없다는 것이다. 문장을 짓고 내러티브을 믹싱하고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작가도 아니고 글로 밥벌이는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숱하게 많은 나날들을 카페인에 중독되고 까맣게 태워냈을 작가들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나는 게으르고 배부른 독자에 불과하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착각의 늪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보아야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내가 그렇다. 책을 읽는 도중은 물론이고 단어에 집착하고 문장이 책을 빠져 나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것도 모자라 걷는 중에도 정리되지 못한 생각의 실체들이 휙휙 정처 없이 떠돈다. 그래, 뭐 좋다. 착각도 삶을 위무하는 좋은 친구가 될 때도 있으니 좋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생각의 밑천이 고갈되었다는 민망함이다. 자꾸 자꾸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면 좋으련만 내가 가진 깜냥의 그릇이 딱 고만고만해서 더 이상 자라나질 못한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리뷰 또는 감상을 쓸라치면 전혀 다른 내용이 한데 엉키고 엇비슷한 문장과 표현이 판을 치다 못해 도배를 한다. 아마 내가 언급한 불편한 사실에 동조하거나 호응하는 리뷰어도 있으리라 믿는다. 없다면 전적으로 나의 모자람이겠지만 있으리라고 재차 믿어 본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지, 괜히 엄한 리뷰어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자존심이 더욱 오그라들지도 모른다. 이러다 한방에 훅 갈 날이 멀지 않았다.
문제는 알았으나 해결책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궁여지책 하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으니 하다 보면 나아가다 보면 나아지리라. 대책 없는 자신감이다. 사실 문제를 가장했지만 쓰다 보면 유익한 점이 많다는 것은 모두들 아시리라. 책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소통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주춧돌이 된다. 갈무리되지 못한 생각들도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필터링의 효과도 있으며 무엇보다 공감의 달콤한 기쁨을 얻는다. 공감, 못 쓰는 글도 춤추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