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리커버, 양장)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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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계를 형성하는 기저에는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 무엇이 있다. 느슨하든 밀접하든 관계는 우리를 아우른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칭하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가진다. 나다움으로, 혹은 나라는 인간으로. 그런 관점에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다양성을 가장한 나다움에 눈길을 머물게 한다.


7개의 짧은 호흡으로 써 내려간 단편들은 기존의 생각의 틀을 허문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열린 결말은 익숙한 판단을 유예하게 한다. 선인과 악인의 구분 또한 모호하다. 평범을 가장한 우리의 익숙한 서사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에서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실되어 가는 환상에 열광하는 팬클럽의 모습을, 「혼모노」에서는 약발이 다한 무당의 마지막 발악에 경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기이함과 불편함이 뒤섞인 그 풍경은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았다.


중반으로 치달을수록 이야기는 민감한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주무른다. 「구의 집」을 읽는 내내 뱉어낼 수 없는 불쾌함이 맴돌았던 것도 남영동 고문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잉태기」에서 일제 치하 부역으로 쌓아 올린 자산을 무기로 손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시부와 며느리의 손녀 쟁탈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모든 메타포를 가르는 불편함은 작가가 일으킨 힘이다.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군상들이 감추고 있던 이면을 내밀하게 드러낸다.


혼모노. 진짜인 듯 가짜이고, 가짜인 듯 진짜인 사람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어느 한쪽으로 쉽게 가를 수 없는 회색지대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작가가 바라본 현대인의 모습이며, 우리가 흔히 ‘나다움’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이민 3세대로 분해되어 기술된 「스무드」 속 듀이와 광화문 태극기부대의 어색하지만 불편한 환영은 신선한 충격으로 읽힌다. 분명한 것은 조밀한 관찰의 파장이 불러낸 상상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라면 그 어색함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까.


「우호적 감정」에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자율적 규칙을 만들고, 서로 다른 것들을 한데 섞어보려 하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한다. 의도하지 않은 시선과 말 한마디, 익숙한 관습의 틈 사이로 차별은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 기실 이런 불편함은 우리 안에도 이미 스며들어 있는지 모른다. 「메탈」은 헤비메탈을 사랑하고 관습을 부정하며 노마드적 삶을 꿈꾸지만, 현실의 냉혹함 앞에서 그 꿈은 처절하게 사라지는 신기루가 된다.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조차 결국 관계와 사회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듯 성해나 작가의 글은 방향이 좋다. 읽는 내내 불편함이 한몫하겠거니와, 그 불편함 뒤에 남겨진 몫 또한 온전히 독자의 것이다. 그 속에서 관계 속의 나를 찾고, 나다움이 무엇인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힘이 솟아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우리는 분투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타협하면서 오늘을 살아낸다. 이 또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나는 관계를 만들지만, 그 관계가 다시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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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마이클 크롤리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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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삶을 긍정에너지로 바꾸는 지름길입니다. 타고 난 신체적 특성, 환경 그리고 열정은 달라도 달리기가 그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임을 알려 준 책입니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모인 선수들의 달리기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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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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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되고 보편적 정의가 지배적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비이성적이거나 몰상식적인 일들에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원초적인 아픔의 형태가 아닐지라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자라나는 연대된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봉건제 사회에서든 민주제 사회에서든 보편적 선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때로 잔인하고 더할 나위 없이 추악스럽다. 아픔의 형태가 원초적일수록 더 크게 잔혹함의 형태는 무뎌지고 아픔에 대한 고통척도의 비례가 비정상적으로 재단된다. 더욱이 제도화된 기관의 이면 속에 감춰진 폭력은 때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참혹한 역사의 어두운 사실에 기반한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세운 미혼모를 위한 보호소이며 입양시설이었다. 구휼시설의 타락은 더 철저하게 무너졌고 파장효과는 매우 강력했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인권유린의 실상은 가닿지 못한 현실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화자를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불편했고 차가운 고통은 사뭇 낯설기만 한다. 하루하루 오늘을 버티게 한 노동의 대가에 실로 감사하며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중년의 필부를 통해 바라 본 타인의 고통은 많은 물음을 제시한다. 작가의 의도가 천착한 바가 여과없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은 가벼웠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시나브로 스며들지만 암초에 걸려 소용돌이치는 물결처럼 파문은 오래도록 자리 잡는다. 불의와 타협한 시간을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선을 통해 현실속의 자아를 선의로 이끄는 과정은 매우 감동스럽다. 이미 이야기는 영상화되어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지만 그 전에 활자를 통해 바라 본 감동을 느끼길 권한다.

 

이야기가 추동하는 힘은 간결하지만 빠르게 퍼져 오래도록 여운을 새기는 힘을 가진 책임에 틀림없다. 어느 시대에 살았건 어느 곳에 터를 내렸건 역사의 층위에 기억된 아픔과 야만의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타락하고 오염되며 취약한 구조의 결과물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역사의 시간 곳곳에 나타난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즉 공공의 선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희망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작가의 책은 처음이지만 단숨에 읽혔다. 이야기의 얼개가 단단한 것은 사실에 기반을 해서 그러하겠으나 종교적 위선의 충격이 관념의 거짓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를 통해 공허한 허무성에 실존적 물음까지 다양한 생각의 지평이 펼쳐진다. 연민의 한계와 양심의 명령 사이의 절묘한 대립은 이 책이 보여줄 원초적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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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 하루 이틀일도 아니건만 이번엔 꽤나 심각하다. 마치 메르스 사태처럼...그녀가 한국문단에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무시한 것도 있겠거니와 문제는 권위있는 출판사의 태도가 더 화근이다. 나는 창작과 비평의 계간지를 꾸준히 읽지도 않으면서 구독해 왔다. 계간지가 배달되어 와 책장 한켠에 고스란히 꼽혀 장식을 할지언정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지적 허영감의 표출이었고 현재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그런데 믿었던 창비가 무너졌다. 권력의 카르텔이 담합해 내는 손쉬운 유혹에 경도된 것인지 너무도 가벼이 눙치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별 볼 일 없는 내가 재차를 다시 읽어 봐도 표절인데 그 표절이 인용도 아니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감춘다고 될 일인지 모르겠다.

 

 

문장을 단련하고 제련하는 과정에 필사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롤모델링을 삼고 그 작가의 글을 연장삼아 자기 것으로 화하라는 것이지 그대로 몇 줄 바꿔 가져오라는 뜻이 아님은 무지랑이 나도 안다. 나는 문학으로부터 불확실한 삶을 위로 받는다고 믿는다. 그것이 문학의 본령이고 공감이다. 제 아무리 틀이 든든해도 쏟아 부은 알갱이가 부실하면 부실하기 마련이다. 신경숙 작가가 이렇게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다. 아울러 창비가 가려지질 못할 명분을 가지고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글을 읽고 위안 받는 사람으로써 썩어 빠진 이 시대와 다름을 보여 주길 간절히 바란다. 역병이 창궐하고 민심이 이반된 지금, 용기 있는 커밍아웃만이 살 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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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5-06-1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용기 없이 아무 것도 아니죠..

穀雨(곡우) 2015-06-18 14:36   좋아요 0 | URL
용기내는 게 어려운 세상이죠. 누구든...
 
포구를 걷다 - 나를 지우고, 나를 세우는 힐링 여행 산문집
동길산 지음, 조강제 사진 / 예린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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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하다는 말처럼 포구는 기실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이 크다. 뭍에 살든 바다를 맞대고 살든 세월에 빗겨간 시간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좋은 것만 좋은 것이 된 지금에서 포구는 부동의 실체다. 해서 그 내연이 선연하게 밝혀 주는 속내와는 다르게 뿜어내는 외향은 그저 그렇게 읽혔다. 익숙함이 생산하는 왜곡의 소치고 편견의 민망함이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이 책 [포구를 걷다]는 적확한 문장과 풍미 가득한 시구로 길어 올린 산문집이다. 현대화되고 도시화된 부산의 존재 이전의 가치를 느릿느릿 완만하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또박또박 눌러 낸 글이다. 저자 동길산의 글과 조강제의 사진이 절묘하게 합일하는 소실점은 문장 하나하나에 고뇌를 담고 투영한 겸손의 손놀림이 역력하다. 정 붙이고 터 내리고 사는 곳 어디라도 아니 좋겠냐마는 부산을 소개한 색다른 글이라 반갑다.

   

책은 부산의 서쪽에 위치한 강서 명지포구를 기점으로 동해의 끝단 월내로 흐른다. 저자는 포구를 통해 지나 온 삶을 반추하고 지천명에 이른 소회를 등대에 빗대기도 포말에 부서진 파도에 실어 낸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부산 토박이 시인의 글맛이 제대로 베여 있어 시나브로 읽힌다. 비린내가 주는 거리감도 시인은 경험의 거름망을 통해 고스란히 녹여 냈다. 때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온 양치기 산티아고처럼, 때론 자유를 갈망하는 히치하이커처럼 읽는 이를 위무한다. 훌쩍 찾은 여행지의 도타운 풍광에 놀란 초심자의 행운이랄까?

 

   “할퀴고 싶도록 내가 미울 땐 되도록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게 상책,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뜬 달 보듯 나를 바라보는 건 상책중의 상책이다.” p-257

 

 

시인은 포구를 곧 뭍과 물의 경계이며 세상의 중심이라고 했다. 변방과 중심의 경계에서 시인은 포구를 딛고 맞닿은 등대를 길라잡이삼아 마음을 여몄다. 변변한 글재주 한 자락 없어도 절로 심상이 포개지고 울림에 공명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누구랄 것 없이 고즈넉한 손길 하나에 아득해진다. 그 속에 포구가 존재했고 함께 힘겨운 시대를 살아 간 해풍의 주름에 깊게 팬 부산 토박이가 공생한다. 비록 변모하는 포구의 운명처럼 소멸될지라도.

 

“ 항상 곁에 있고 싶은 사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 그런 시절은 물같이 흘러가고 기억의 등대만 오롯하다. 항상 곁에 있고 싶은 사람 그대는 누구인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p-126

 

더불어 시인의 맛깔난 지명에 담긴 부산의 포구풀이는 의외의 재미가 있다. 지명은 자연에 순응한 인간이 만든 존재의 기록이다. 지명을 통해 그 땅의 쓰임이나 생김을 담아 내 듯 부산의 포구는 각기 다른 존재를 각인했다. 포구의 꼬리와 같다 해 미포라고 쓰이지만 시인은 돌아보면 새로운 출발점이라 읽어 냈다. 모래톱이 움푹 패여 오목하게 들어간 홍티 포구, 달을 품에 안을 듯 잔잔하게 떠오르는 월내 포구.

 

“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2곳을 한데 놓고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여행이 가능하다.”라고 한 작가 김연수의 글처럼 여행은 상대적이다. 해서 이 책을 통해 시인은 부산의 포구를 재조명하고 도식화된 특정 행로를 뒤틀었다. 이전에 읽히던 자갈치가 색다르고 해운대가 달리 보이는 이유, 상대성이다. 포구는 차례차례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흘러가듯 존재를 거듭하는 이유가 그런지 모른다. 그저 묵묵히 붉음과 초록의 빛을 생산해 내고 그곳에 곧 순응해 나가는 등대의 숙명처럼 사람의 인생과 매한가지다.

 

이렇듯 동길산 시인의 글과 더불어 조강제 사진가의 순간을 담아 낸 찰나는 공허한 마음을 메꾼다. 부산을 찾은 여행자든 부산에 뿌리 내린 토박이든 읽히는 순간 너르게 뻗어 내린 포구 위를 함께 유영한다. 현장의 기록을 통해 시대를 아우르는 포구의 생명력은 연민이 샘솟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게 한다. 매몰되고 억압된 감정의 틀 속에 메여 사는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고 그래그래 다독여 주는 둥그스름한 손길이 정답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은 부산을 중심에 놓았다. 숱해 봐 온 부산이 가진 다이내믹한 매력과 달리 포구를 통해 본 여행은 관조적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의 삶을 희석시키고 중화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포구는 존재를 거듭했다. 여기가 저기로 스며들고 사람이 사람에게로 스며들길 바란 작가의 마음은 누군가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

 

“공수 포구는 겉을 보고 속을 비웃은 나를 나무라는 포구고 겉과 속이 같지 않다고 빈정댄 나를 나무라는 포구다, 포구에 부는 바람 소리가 공수레공수거공수레공수거 무슨 염불 같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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